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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삼 Dec 23. 2020

오늘 우리집는 초복인걸로

파나마 우기와 건기 사이의 저녁 메뉴는



아으 뜨거워. 등줄기에 땀 난다.

창을 등지고 아침밥을 먹는 두두가 말을 흘렸다. 참다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인 것 같았다. 그 자신도 그렇게 자기 등이 데워지고 있었는지 깨닫지 못하다가 임계점을 넘어버렸다. 두두의 체온계가 펑 하고 터졌다. 그러고 보니 동쪽 창으로 아침해가 길게 햇살을 드리우고 있었다. 몇 주 전만해도 일출은 우리집 건너 아파트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해가 바뀐 시점과 같이 하늘도 달라졌다.  달동안 구름은 하늘과 대지의 사이의 공간을 메웠다. 하늘이 보이지 않으니 구름 속에 갇혀있는 기분이 들었고, 저기압에 두통이 왔다. 올해는 유별나게도 우기가 끝나갈 무렵 대형 허리케인이 아메리카 대륙의 허리를 쳐서 마을에 피해를 입혔다. 우기의 끝무렵 매일 아침 파란 하늘을 기대하며 창 밖을 봤다. 이제 우기가 지났나보다! 라고 착각이 드는 하늘의 파란 구석이 보이면, 정오께엔 속았지? 라는 듯 비구름이 몰려왔다.

 



뜨거운 아침 식사를 불평하게 된 지난 주, 오랜만에 친구 커플을 만났다. 꼽아보니 딱 1년만의 재회였다. 까를로스는 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더 수염이 길어있고, 그 위에 마스크를 걸쳐 쓴 모습이 어설퍼 보였다. 그리고 그의 여자친구, 밀라그로스는 길고 곱슬거리는 머리가 더욱 길어 있었다. 반가운 마음이 미소로 터졌지만, 마스크를 끼고 있는 표정은 전해지지 않았다. 진한 포옹도 팔꿈치 치기로 대신해야 했다.







4시가 지난 공원에는 멋진 나무 그늘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큰 나무 덕에 돗자리 펼칠 그늘 자리가 넉넉하게 생겨났다. 나는 냉큼 자리부터 펼치고 신발을 벗고 퍼질러 앉았다. 두는 까를로스의 새 드론에 모든 관심과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고, 자리를 걷을 때까지 한 발도 딛지 않았다. 밀라그로스는 신을 신은 채 엉덩이를 자리에 붙였다. 그리고 행을 하는 작은 드론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하늘에는 벌쳐 무리가 모처럼 건조한 바람을 맞으며 시원하게 날고 있었다.

  






나쁜 새들이야.

밀라그로스는 동물 곤충 가리지 않고 좋아하지만, 벌쳐는 별개인가보다. 그녀작년에도 똑같은 말을 했던 게 떠올랐다. 닭을 잡아먹고, 가축을 공격해서 아주 나쁜 새라고 하던 그 이들 커플은 이제 그 새들이 자신들의 작고 소중한 드론을 공격할까봐 우려했다.



아이스팩에서 꺼낸 시원한 음료를 나눠먹었다. 소다를 마시던 두두는 환상적인 날씨야 밀라그로스 네 덕이야 라며 그녀에게 찬사를 돌렸다. 기적이라는 단어에서 따온 그녀의 이름 덕에 이렇게 아름다운 날 우리가 재회한 거 아니겠냐는 그 나름의 해석이다. 논리는  안 지만 다들 그의 말에 미소를 지었으니  동의한 셈이다. 옳은 말이 뭐가 중요한가 지금같이 소중한 시간에.

우린 이전평범한 소풍을 즐겼다. 어른의 장난감인 드론도 배터리가 다 닳을 때까지 날리고, 크리스마스 장식이나 집에 있는 강아지 고양이에 대해 얘기했다. 두두가 별안갘 잔디밭을 막 뛰었다. 나도 덩달아 그 뒤를 쫓아 달렸다. 너른 들판을 보면 달리고 싶고, 친구가 뛰면 뒤 따라 뛰게 되는 법이었다.







우리집 오늘, 초복이야.

오랜간만에 재회가 있은 뒤, 파란 하늘이 구름과 영역 다툼을 하고, 매일 아침 등짝이 데워지는 이 시기의 하루를 초복으로 명명했다. 한국의 초복도 봄이 지나고 여름을 맞이하는 즈음에 오지 않나. 파나마는 북반구에 있지만 건기만은 여름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지금같은 시기는 파나마에 사는 꼬레아노에겐 초복이라고 부를 만한 이유가 된다. 그러니 마땅히 삼계탕을 먹어야 한다. 이로써 저녁 메뉴를 고민도 덜었으며, 해야 할 일을 이룬 듯한 성취감도 누릴 수 있다. 또 마무리되어가는 2020년 중 의미있는 한끼가 더해졌다. 논리에 맞든 안맞든 삼계탕은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 오늘은 초복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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