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도 줄을 선다 2

저를 개 콧구녕으로 여기지 말아 주세요

by 예농

나는 현재 두 개의 공동체에 몸담고 있다. 자녀를 잘 키우기 위해 선택한 공동육아 협동조합과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00 공립 초등학교. 올해 교사로 15년 차, 공동육아 협동조합 조합원으로서 4년 차이다. 오로지 교사로 살았던 때는 잘 보이지 않던 학교 안의 불합리한 요소들이 조합원의 눈으로 바라보니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내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겼다.

'학교는 왜 협동조합처럼 운영될 수 없는 걸까?'


올 것이 왔다

금요일인 오늘은 정시에 퇴근하고 싶어 반 아이들을 보내고, 밀린 일들을 서둘러 해치웠다. 담임 업무, 부장 업무, 수업 연구. 하나하나 끝낼 때마다, 스케쥴러에 적힌 메모 한 줄 한 줄 지워나갔다.

'오늘은 일찍 집에 갈 수 있겠군.'

퇴근 시간 20분 전. 교감 선생님의 장문의 메신저가 세 개의 첨부파일을 달고 날아왔다. 다면평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다면평가란?

다. 면. 평. 가.
관리자 위주의 근무성적 평정을 보완하기 위해 동료 교사끼리 평가를 실시해
그 결과를 근무성적 평정 결과와 합산하여 승진에 반영하는 제도.


취지는 좋다. 교장의 근무성적 평정을 보완하기 위한 제도. 그러나 12월이 되면, 교사들을 서로 분열시키고, 학교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더 끼치는 제도.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다면평가 결과는 성과급과 바로 연결이 된다.

다면평가에 따라 교사들을 S, A, B 등급으로 나누어 성과급을 준다. 그래서 공정한 다면평가가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단위 학교에서는 해마다 다면평가에 대한 교사 연수를 실시해야 하고, 다면평가 관리위원회를 조직해, 관리위원회에서 다면 평가자를 선정한다.

그런데, 교육의 성과라... 학교 교육에서 성과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학교 업무를 잘 해내는 교사? 수업을 잘하는 교사? 학생 생활지도를 잘하는 교사? '교육'의 성과가 지표로 책정될 수 있을까? 성과급을 균등 지급하고, 대신 부장 수당을 현재 7만 원에서 현실적인 금액으로 상향해달라 주장하는 교사들이 많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둘째, 다면평가 과정이 민주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다면평가의 평가지표는 전체 교사의 의견을 수렴해, 다면평가 관리위원회에서 조정해야 한다. 그러나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가 활성화된 학교에서는 이 과정을 축소하고 바로 전체 교직원회의에서 조정한다. 당사자인 교사들이 테이블에 앉기를 원하는 거다. 그러나 현재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가 활성화된 학교의 수는 아주 적다. 학교 관리자들이 비공개적으로 부장들에게 다면평가 관리위원을 부탁하고, 다면평가 관리위원이 다면 평가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평가지표를 조정하기 위해, 전체 교사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도 허술한 경우가 많다. 이 경우는 학교 관리자들만 탓할 게 아니다. 폐쇄적인 교직 사회, 무관심한 교사들도 한 몫한다.


오늘도 칼퇴는 글렀다

교감 선생님이 보낸 메신저 내용을 읽고 또 읽었다. 내가 잘못 이해한 건가 싶어서, 몇몇 선생님들께 전화를 걸어 메신저 내용을 함께 읽고 서로가 이해한 바를 확인했다. 첨부파일을 열어 13쪽이 되는 한글파일, '2021 교사 다면평가 운영 계획'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런데 다르다. 운영 계획 파일의 내용과 교감님이 보낸 메신저 내용이 맞지 않는다.

2쪽에 교무회의(교직원회의)를 거쳐 다면평가 관리위원을 뽑으라 나와 있다. 그런데 교감님 메신저에는 이미 뽑혔다고 나와있다. 나는 기억도 없는데, 언제 뽑았다는 걸까? 3월 23일 회의에서 뽑혔다고 하는데, 3월 23일은 화요일이다. 우리 교직원회의는 월요일이다. 슬슬 화가 난다.

같은 2쪽 다면 평가자 선정과 평가 지표를 전체 교원의 의견수렴 후 심의하라고 나와있다. 그런데 월요일 2시 10분에 다면평가위원회를 열고, 3시에 전체 교사 연수를 한다고 메신저에 적혀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순서가 바뀐 듯 하다. 전체 교사 회의를 열고, 다면평가위원회를 열어야 순서가 맞다.

그런데 나를 정말 화나게 한 것은...

금요일 퇴근 시간 20분 전에 메신저를 보내고, 수업을 해야 하는 우리 교사에게, 월요일 오후 2시 10분까지 학년별 의견을 내란다. 가장 일찍 수업이 끝나는 1~2학년 하교 시간이 1시 20분이다. 게다가 1학년 교사 수렴 의견을 누구에게 보고하라는 걸까? 알아서 뽑은 다면평가관리위원에 1학년 교사는 없다.

교사 다면평가 운영 계획


중요한 메신저는 꼭 퇴근 전에 온다. 가장 바쁠 때

우리를 더욱 무관심하게 만드는 방법. 바쁠 때, 더 바쁘게 만드는 것.

그냥 퇴근해버릴까 생각하다, 남편 튼튼이에게 늦는다고 전화를 했다. 남은 업무들을 마저 끝내고, 교육부 사이트를 뒤져 담당자에게 전화 문의를 하고, 전교조 서울지부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교감 선생님께 보낼 메신저를 켰다. 쓰고 지웠다, 쓰고 지웠다를 반복했다. 예의 바른 문구. 그러나 내용은 단호하게.


우리를 개 콧구녕으로 생각하는 게 틀림없어. 그러지 않고서야

학교를 나섰다. 바람이 차다. 오늘따라 유난히 차다. 몇 걸음 내디뎠다 생각했는데, 다시 뒷걸음이다.

난 항상 왜 이 모양인 걸까? 그런 메신저를 봐도, 그냥 컴퓨터를 끄고, 퇴근을 해야 하는 건데...

지난봄, 동료 교사가 말했다.

"학교 봄꽃을 보며,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하고 싶은데, 왜 자꾸 선생님은 학교에 일을 일으키세요?"

아까 교감님 메신저 내용을 확인하려 전화한 다른 동료 교사가 말했다.

"역시 우리 학교 정의를 생각하는 분은 부장님 밖에 없어요."

서로 다른 마음을 전한 그 말들이 모두,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내가 명예욕이 있는 걸까? 아님 내가 정의 추구형 인간?'

그런 건 모르겠다. 그냥 화가 난다.

'우리를 개 콧구녕으로 생각하지 않고서야... 난 개 콧구녕이 아니란 말이야.'


집에 와 아이들을 다 챙기고, 유튜브를 보고 있는 남편 튼튼이에게 다가가 일어난 일들을 얘기했다.

"이게 말이 돼? 내가 개 콧구녕이야?"

튼튼이가 웃으며 말했다.

"아, 피곤해. 나 쉬고 싶다고. 너도 나를 개 콧구녕으로 지금 생각하고 있잖아."


나의 하루를 위로해 줄 문장이 필요했다. 거실로 나와 책장에 있는 '분노하라' 책을 꺼내 들었다. 지금 읽기에 딱.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이건 소중한 일이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 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이 강물은 더 큰 정의, 더 큰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돌베개, 15P>


마음이 땅땅해졌다. 그리고 평온해졌다.

이 평온을 선물해주고 싶은 동료 교사 얼굴들이 떠올랐다. 책 10권을 알라딘에서 구입했다.

한 권에 5400원.

다행이다, 비싸지 않아.


* 교사 다면평가 운영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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