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해 텃밭 농사를 지을 때였다.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는 내가 처음 얻어 온 것이 아주까리 열매였다. 매끄럽게 윤기 나는 녀석들이 알록달록한 무늬까지 있어 마치 보석 같다. 가까이 사는 이모가 시댁의 시골집에서 얻어온 귀한 열매다.
그해 봄에 내가 텃밭 가에 맨 처음 심어본 것이 아주까리였다. 그걸 심어서 어떻게 할 것인지는 둘째 문제였다. 어릴 적 고향집 앞에 줄지어 서 있던 아주까리를 하루빨리 만나보고 싶었다. 아주까리는 넓은 잎을 손바닥처럼 펼치고 있었고 가을이면 도깨비방망이 같은 열매를 가득 매단다. 할머니는 봄부터 어린잎을 잘 말려 정월 대보름 나물로 무쳐주었고 열매는 기름을 짜서 쓴다고 했다.
첫 파종에 싹이나 날까 내심 걱정했더니 그것은 기우였다. 혹시 몰라서 한 구멍에 두세 개씩 넣었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싹을 틔웠다. 그 딱딱한 껍질을 깨고 두 쪽으로 갈라진 머리에서 싹이 돋더니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옆집 아저씨는 한 구멍에 한 개만 남기고 다 뽑아줘야 실하게 클 거라고 귀띔한다. 하지만 저리도 어리고 예쁜 싹을 어떻게 뽑아낸단 말인가. 지금도 내가 가장 어려운 일이 어린싹을 솎아내는 일이다. 상추며 당근 같은 채소도 마찬가지다. 차마 손을 대지 못하였다.
한 구멍에서 아주까리가 두세 포기씩 났지만 그 해 나의 아주까리 농사는 아주 대성공이었다. 남들이 보면 별거 아니었겠지만 나한테는 아주까리 한 포기 한 포기가 자식처럼 소중했다. 텃밭에 갈 때마다 거름과 물을 흠뻑 주고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지켜보았다. 아주까리는 내 정성에 화답이라도 하듯 금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키가 자랐다. 가을로 접어드니 그 놈들은 아예 키 큰 나무가 되어있었다. 이제 가지 끝 새순을 따려면 사다리라도 놓아야 할 판이다. 나한테는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아주까리 잎들이 봄부터 여름 내내 채반마다 가득 쌓였다.
그해 정월 대보름에는 아예 아주까리나물 잔치를 벌였다. 아내가 처음 무친 아주까리나물에서는 어린 시절 할머니 냄새가 난다. 가죽나무순과 뽕잎 나물 맛이 겹쳐서 나는 쌉싸름한 특유의 향기다. 그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할 맛에 끌리고 할머니에 대한 추억까지 더하니 아주까리나물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주말에 내 텃밭을 방문한 친구가 ‘누가 씨를 뿌리지도 않은 것 같은데 여기에 아주까리 싹이 나냐’며 신기하단다. 가만히 보니 금년에도 텃밭 여기저기에 아주까리 새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반가운 녀석들이다. 지난번 꿈속에 할머니가 무쳐준 아주까리 나물을 맛있게 먹었는데 밭에 와보니 이렇게 싹이 돋는다고 둘러댔다. 옥수수 고랑에 난 새순을 이번에도 차마 뽑아내지 못하고 밭 가로 옮겨 주었다.
이 세상에 거저 나는 것이 무엇이 있으랴. 그 해 심었던 아주까리 열매가 겨울을 나고 금년에도 대를 이어 싹을 틔우니 대견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뿌린 대로 거두고 심은 대로 나는 것이 바로 인생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