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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인 Aug 22. 2024

개복숭아 맛

  해마다 유월 첫 째 주말이 되면 개복숭아를 따는 날이다. 그날이 되자 올해도 어김없이 마을방송에서 개복숭아를 수확하는 날이니 저수지 아래 동네 밭으로 오란다. 참가한 주민은 개복숭아를 한 자루씩 가져가고, 나머지 열매는 발효액을 만들어 마을공동으로 판매한다고 한다. 


  어릴 적 봄날이 되면 두릅 순을 꺾던 산비탈에 먼발치에서 보아도 금방 눈에 띄는 꽃나무가 보였다. 황홀한 분홍 꽃이 흐드러지게 핀 것을 보고 어머니는 저게 바로 개복숭아 꽃이라며 유난히 그 꽃을 좋아하셨다. 하늘거리는 가지 끝에 매달려 바람에 살랑거리는 개복숭아 꽃은 아주 매혹적이었다. 가만히 쳐다보면 분홍색 꽃잎이 수줍은 듯 무언가 말을 건네는 듯했다. 지금까지도 그 이야기를 다 듣지 못했으니 못내 궁금하고 그립다. 그래 내가 꽃을 좋아하시던 어머니 생각에 텃밭 정원 입구에 가장 먼저 심은 나무가 바로 개복숭아다. 


  ‘개’ 자가 붙은 것들은 모두 생명력이 강한 모양이다. 밭에 나는 개비름이 그렇고 개옻나무도 그렇다. 아무리 뽑아내고 잘라주어도 막무가내로 자라는 것이 참으로 끈질기다. 개복숭아도 마찬가지다, 같은 해에 심은 다른 나무는 아직도 자리를 잡느라 몸살을 하고 있는 데 개복숭아는 내버려 두었어도 잘도 자란다. 이제는 아예 나무를 타고 올라가 잔가지를 잘라 주어야 할 정도다. 꽃으로만 보면 개복숭아 꽃은 다른 복사꽃에 비길 바가 아닐 정도로 아찔하게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퇴직을 앞둔 직장 선배가 몸져누웠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 적이 있다.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고 목에 혹까지 났다고 한다. 빈손으로 갈 수 없어 우리 마을에서 담근 개복숭아 발효액을 잔뜩 들고 갔다. 개복숭아가 생명력이 강하고 기관지에 좋다니 물대신 먹어보라고 한 것이다. 개복숭아 효험을 본 것일까. 얼마 후에 그 양반이 우리 집 텃밭에 찾아왔는데 목에 난 혹도 거의 없어지고 쉰 소리가 나던 목소리까지 정상이다. 텃밭을 둘러보더니 나더러 농사짓느라 애먼 고생하지 말고 개복숭아 나무나 잔뜩 심어보라고 한다. 


  꽃이나 보려고 심은 개복숭아 나무에 금년에도 통통한 열매가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열렸다. 살이 잘 오른 개복숭아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땅에 떨어진다. 이것을 그냥 내버려 두기에는 아깝다. 지난주에 아내와 함께 개복숭아를 수확하여 처음으로 발효액을 담가 보았다. 개복숭아를 잘 씻어 솜털을 제거하고 물기를 뺀 뒤에 설탕과 일대 일로 잘 섞어 단지에 넣은 것이다. 가을이 오면 열매를 건져내고 단지를 서늘한 곳에 두어 숙성시키면 될 것이다. 이제부터 개복숭아 발효액의 성패는 세월에 맡기면 된다. 


  아직은 설익었지만 개복숭아 단지만 바라봐도 벌써 부자가 다 된 느낌이다. 내년 봄쯤이면 우리 집 텃밭에 오는 사람한테 대접할 메뉴가 하나 더 생길 것이다. 이것이 뭐냐고 물어보면 직접 담근 개복숭아 발효액이니 생명의 기운을 맛보라고 해봐야겠다. 아마 요즘세대 말마따나 ‘개 쩐다’며 좋아라 할지, 시고 떫어 너나 먹으라고 할지는 그때 가봐야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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