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봄이 익으면 어머니가 특별히 해주는 음식이 있었다. 장날에 사 온 박대와 간재미로 별미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평생을 부여에서 사신 어머니가 가장 자신 있게 하는 요리다. 박대를 굽고 간재미로 무침과 찜을 했는데 그중에서 간재미 찜은 나를 아주 황홀하게 했다. 결대로 찢어지는 통통한 살의 알싸한 맛도 일품이지만 오독오독 씹히는 묘한 식감은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였다.
그 간재미가 우리가 아는 홍어의 사투리요, 전라도에서는 강개미 또는 홍에라고도 한다. 사실 우리가 아는 몸집이 크고 삭혀서도 먹는 홍어는 참홍어다. 참홍어조차 새끼 때는 모두 간재미라고 불렀고 남해나 서해에서 많이 잡혔기 때문에 홍어는 원래 막걸리를 곁들여 먹는 서민들 음식이었다.
홍어는 바다에서 꽃게나 광어, 우럭새끼는 물론 멸치 등 몸에 좋은 것을 잡아먹고 크는 별난 놈이다. 기후가 변하면서 이제 어획량이 줄어들어 국내산 참홍어는 귀하신 몸이 되었다. 가장 맛있다는 홍어 코라도 두어 점 맛보려면 하루치 일당과 맞바꾸어야 할 정도다. 그 귀하신 자리를 여지없이 칠레나 아르헨티나 같은 외국산이 차지하고 있다. 이래저래 제대로 된 홍어 맛을 보기는 더 어려워진 셈이다.
홍어 맛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린다. 삭힌 홍어 냄새가 지독하다고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도 있고, 누가 뭐래도 홍어는 삭힌 맛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나야 어릴 적부터 뭐든 가리지 않고 먹었으니 홍어도 날것이든 삭힌 것이든 가리지 않는다. 내가 자주 가는 목포에서 들어보니 원래 그곳 토박이들은 홍어를 삭히지 않고 먹는다고 한다. 지금 홍어회라면 삭힌 홍어를 뜻하는 데 홍어의 본고장에서조차 홍어회를 홍어회라고 부르지 못하고 생홍어회라고 해야 뜻이 통하니 그것도 아이러니다.
생홍어회를 먹어보면 찰지면서도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끝맛이 그 어디에도 견줄 수 없다. 더욱이 홍어애는 간인데 날로 먹을 때의 고소하고 기름진 맛이 일품이요 돌미나리나 콩나물을 넣고 끌인 홍어애국도 별미 중의 별미다. 이런 홍어탕은 흑산도 현지에서는 바다에서 나는 톳이나 파래를 넣고 끓이는데 목포나 해남 쪽에서는 제철에 나는 보리싹을 넣고 끓여야 제 맛이라고 한다. 삭힌 홍어의 특유한 냄새는 세상천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독특한 맛이다. 묵은지 위에 돼지고기 수육과 잘 삭힌 홍어 한 점을 올려놓고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는 삼합 홍탁의 맛은 그야말로 홍어 맛의 정점이다.
목포에서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동료 교수가 홍어 한 박스를 보내왔다. 흑산도에 사는 학부모가 잡은 것이라니 틀림없이 진짜배기다. 혼자 다 먹기에 아깝기도 하도 홍어 자랑도 할 겸 고향 친구들을 텃밭으로 불러 모았다. 막걸리에 묵은 김치까지 준비해놓고 빙 둘러앉아 박스를 열었다. 모두 코를 막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웬 걸 홍어가 싱싱해도 너무 싱싱하다. 반응은 두 패로 갈린다. 냄새도 없고 찰진 맛이 아주 인절미 같이 맛있다는 친구도 있고 이런 날 것이 무슨 홍어회냐고 구시렁거리는 친구도 있다.
야, 이놈들아. 삭힌 맛이 안 나면 생선회로 알고 먹고, 홍어 맛이 안 나면 간재미 맛으로 그냥 먹어. 날로 먹던 삭혀 먹던 원래부터 다 한패여. 잔소리는 그만하고 이거 한 박스 다 해치우기 전에는 집에 돌아갈 생각을 아예 허덜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