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물하고 콩나물 그리고 소금 한 꼬집만 있으면 된다. 세상천지에 이보다 쉬운 음식이 어디 있으며 이보다 시원한 국물이 어디 있으랴. 내가 콩나물국을 찬양하는 이유다.
내가 만드는 콩나물국은 그야말로 단순 무식하다. 여기에 소고기를 썰어 넣었다고 소고깃국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고, 갖은양념을 더하거나 새우젓을 넣어봤자 본연의 맑은 맛을 흐려놓을 뿐이다. 콩나물국은 콩나물이 주인공이니 다른 것은 일체 삼가야 하리. 그래 콩나물을 너무 푹신 삶지 말고 소금조차 그 맛이 드러나지 않게 조심하면 된다. 그게 전부다. 먹다 남은 콩나물국은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텃밭에서 따온 오이를 채 썰어 넣고 시원한 냉국으로 먹으면 그만이다. 여기까지가 주말 부부인 내가 혼자 끓여 먹는 콩나물국 레시피요, 자기 합리화다.
콩나물처럼 우리나라 사람이 흔히 먹는 것도 없다. 콩은 전 세계적으로 재배되지만 이것을 싹까지 틔워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할 것이다. 심지어 우리와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콩나물을 먹는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고 숙주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러고 보니 콩나물은 우리나라 사람만의 참 독특하고 재미있는 먹거리다.
어릴 적 방안 윗목에는 늘 콩나물시루가 검은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시루 안에 있는 콩나물처럼 고물고물 한 대식구가 국도 끓이고 반찬으로 먹기에는 집에서 직접 기른 콩나물이 가장 큰 효자노릇을 했다. 한겨울에도 물만 주면 쑥쑥 크는 콩나물은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콩나물국은 넣는 재료에 따라 황태콩나물국도 되고 오징어콩나물국도 된다. 한 여름에는 콩나물냉국이 되고 겨울에 감기라도 걸리면 고춧가루를 듬뿍 친 매운 콩나물탕이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 콩나물이 식당 메뉴에 까지 이름을 올린 것은 전주식 콩나물국밥이다. 아마 전주는 비빔밥과 콩나물국밥 이 두 가지로 맛의 고향이라는 명성을 얻었지 않았나 싶다. 그중에서도 나는 콩나물국밥을 유난히 좋아한다. 직장 때문에 이 년 동안 전주에서 주말부부를 하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콩나물국밥을 원도 없이 먹었다. 남부시장의 현대옥이나 왱이집, 삼백집 같은 노포에 가면 약속을 하지 않았어도 아는 사람까지 만나게 되고 반가운 마음에 모주로 건배까지 한다. 그래서 내게 전주는 지금도 그리운 콩나물국밥의 고향이다.
대학에서 평생을 근무하다 보니 외국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외국 대학의 교수나 직원도 있고 유학 온 학생도 있다, 교수나 직원은 K푸드로 불고기나 비빔밥을 좋아하고, 학생들은 라면이나 치맥에 환호한다. 다음에 그네들을 만나면 콩나물국밥집이나 한 번 데리고 가봐야겠다. 펄펄 끓는 콩나물국밥을 먹으면서 시원하다는 나의 탄성을 그들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