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텃밭을 찾아온다는 친구한테 한 참을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다. 면사무소에서 세종시 방향으로 올라오면 오른쪽 천변에 보신탕집이 있고 거기서 인력개발원 쪽으로 직진하면 된다고 하니 귀가 번쩍 뜨이는가 보다. 다른 곳을 몰라도 그 유명한 보신탕집은 잘 안단다.
충청도 촌놈으로 태어난 내가 보신탕을 못 먹을 리 없다. 그것은 아주 어릴 적부터 그랬다. 특히 삼복더위가 오면 동네 어른들은 개를 잡아 동네잔치를 벌이기 일쑤였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보신탕은 여름철 단골 회식 메뉴이자 보양식이었다. 더구나 서천이 고향인 장모께서는 생전에 정작 당신은 입에 대지도 않으면서 큰사위가 왔다고 보신탕을 직접 끓여 주기도 했다. 서천에서는 전라도에서 홍어를 대접하듯 보신탕을 대접하는 게 전통으로 남아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개고기를 먹는 문화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아마 조선시대 또는 그 이전부터 자연스럽게 개를 식용으로 삼았을 것이다. 다만 조선 말엽에 개장국을 처음으로 시장에서 판 것이 서천 판교의 백중장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의 개고기 식용 문화는 구한말에 천주교 선교사를 통해 유럽의 프랑스까지 알려졌다고 한다.
보신탕은 개장국을 완곡하게 부르는 말이다. 사철탕이나 영양탕으로 부르기도 하는 데 다른 음식들이 그렇듯 보신탕 역시 지역별로 요리법은 각양각색이다. 어릴 적부터 내가 좋아하는 보신탕은 기름이 뜨지 않은 맑은 국물에 정구지를 듬뿍 넣은 것이었다, 물론 마늘과 들깨가루를 넣는 것은 필수였고 고기는 손으로 찢어 맨 소금을 찍어 먹었다. 지역에 따라 개장국에 선지를 넣는 집도 있고 고추장이나 된장을 넣거나 새우젓으로 맛을 내는 집도 있다. 물론 그 당시 먹던 개는 요즘처럼 집집마다 기르는 애완견이나 반려견은 분명 아니었다.
최근 여러 해 동안 개고기 식용문화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였다. 결국 금년 초에 개식용을 금지하는 법이 공포되었다. 사람 입에 들어가는 것을 국가가 통제한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하여 확인해 보니 누구든지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사육하거나 개를 조리한 식품을 판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골자다. 개식용 종식법 어디를 보아도 개를 먹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은 없다. 참 알다가도 모를 법이다. 그렇다고 집에서 개를 잡아먹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제 아무도 대놓고 보신탕을 판매할 수 없으니 개고기를 먹는 문화는 아예 사라질 것이요 나 역시 살아생전에 더 이상 개고기 맛을 보긴 글렀다.
친구가 보신탕집에 다 왔다고 다시 전화를 했다. “개 혀?”라고 묻는다. 우리 충청도식으로 “개고기를 먹을 줄 아냐”는 말이다. 우리들만의 암호다. 순간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보신탕을 먹자고 할까 걱정이 되었다. 더구나 그 집에 들러 보신탕이라도 먹으면 앞으로 우리 집 텃밭 이정표가 보신탕집이 될 것이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개? 안혀”다. 그 친구한테 우리 집 텃밭에 바비큐를 준비하고 있으니 어서 오라고 했다. “개 혀?”소리도 이제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