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자락이다. 아직 들판은 무채색이지만 머지않아 금세 초록으로 물들 것이다. 벌써부터 남해 통영에서부터 개시될 도다리 쑥국이 기다려진다.
대전에서 통영 간 고속도로가 뚫리고부터 통영은 하루 만에도 넉넉하게 다녀올만한 곳이 되었다. 그즈음에 주말이면 통영 강구안의 전통시장에는 대전 사람들 천지였다. 고기보다 생선을 좋아하는 나한테도 통영은 맛의 보물창고나 진배없는 곳이었다. 큰 아들 결혼식을 앞두고 예비 며느리와 함께 첫 여행을 간 곳도 역시 통영이었다.
통영은 갈 때마다 설레는 곳이다. ‘사랑한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는 유치환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가 있고 전혁림 화가의 코발트 빛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시뿐 아니라 윤이상의 음악과 박경리 소설은 통영 가는 길을 설레게 한다. 특히 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 봄의 문턱에 다다르면 통영으로 떠나지 않고는 견디기 어렵다. 그곳에 도다리 쑥국이 있기 때문이다.
도다리는 가자미과에 속하는 생선으로 한 겨울이 지나고 수온이 조금씩 올라가면 산란을 위해 남해부터 서해까지 올라온다. 이런 연유로 남해 통영과 서해 보령의 제철이 살짝 다르다. 바다 밑에서 해초를 먹고사는 도다리는 양식을 해보았자 자라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경제성이 없단다. 그래 도다리는 잘 낫 못 낫건 모두 자연산이다. 이런 도다리는 많이 잡히지 않고 대부분 강도다리나 문치가자미인데 이를 통칭 도다리라고 한다. 도다리는 다른 넙칫과 생선처럼 넓적하고 평평한 데다 몸통 색까지 모래바닥과 비슷하여 광어와 구분하기 어렵다. 눈이 오른쪽으로 쏠리면 도다리요 왼쪽으로 쏠리면 광어라고 하는 데 강도다리도 광어처럼 왼쪽으로 눈이 쏠려 이렇게 구분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오히려 풀만 먹고 자라는 도다리는 이빨이 없어 이것으로 광어와 구별하는 것이 더 낫단다.
지금은 한 겨울에도 수박이 나는 세상이니 굳이 통영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지 도다리 쑥국을 맛볼 수 있다. 오히려 세련된 도다리 쑥국 맛은 서울이나 부산에 있는 근사한 횟집이 더 낫다. 하지만 도다리 쑥국의 참 맛은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쑥이 결정한다. 남해 통영 앞을 지키고 있는 한산도나 욕지도 아니면 더 멀리 매물도에서 나온 봄 쑥이라야만 제대로 된 봄맛을 전한다. 도다리는 대체할 수 있지만 쑥만큼은 대체 불가능한 것이니 도다리 쑥국의 진정한 주인공은 도다리가 아니라 쑥인 것이다.
남해에서부터 시작되는 도다리 쑥국은 동백꽃이 피고 바다의 꽃이라는 멍게 가 꽃을 피우듯 벌어지면 비로소 개시된다. 금년에도 운 좋게 통영 서호시장의 노포에서 첫 개시하는 도다리 쑥국을 맛보게 되었다. 무나 대파는 물론 고추도 넣지 않고 끓여 낸 맑은 국물이 역시 기대이상으로 시원하다. 검은 껍질 안쪽으로 보이는 하얀 도다리 살도 유난히 찰지다. 역시 기다리던 맛 그대로다. 내가 아직도 도다리와 가자미를 제대로 구분할 줄은 모르지만 쑥 향기만큼은 눈을 감고도 알 수 있다. 여기 넣은 쑥은 어디서 온 것이냐고 주인 할머니한테 물으니 저 앞에 섬에서 왔다면서 육지 쑥은 “영~ 파이”라고 한다.
통영을 떠나려니 서운하다. 눌러앉아 도다리 쑥국 한 그릇을 더 먹어야 하는 데 함께 간 일행이 있으니 그것은 마음뿐이다. 가게를 나오며 예전보다 허리가 더 굽은 주인 할머니한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한다고 했다. 잘 가라며 굽은 손마디를 흔드는 할머니한테 내년 봄에도 제일 먼저 찾아오겠다고 했다.
통영은 내게 설렘과 놀라움을 동시에 선사하는 곳이다. 이제 기다림까지 추가한다. 해마다 봄이 되면 내 미각을 깨우는 봄맛 도다리 쑥국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