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회인 Aug 27. 2024

텃밭 바비큐와 반딧불이

   텃밭에 장미가 만발하였다. 초록집 계단 앞 아치에 올린 두 종류의 넝쿨 장미가 서로 시샘하듯 앞을 다투어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린 것이다. 붉게 타오르는 스칼렛과 첫사랑의 설렘 같은 분홍색 안젤라가 아예 장미꽃 축제를 벌이고 있다. 잔디밭은 벌써 장미 꽃잎이 수북하게 쏟아져 장미카펫이다. 이 황홀한 순간을 혼자 보는 것은 아깝다. 꽃이 다 지기 전에 누구라도 불러야 한다. 


  평일 오후에 직장 동료들을 초대했다. 주말 농장이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 무엇을 가져가면 되냐고 한다. 준비할 것은 없고 장미꽃 향기와 술에 취할 결심만 가져오면 좋겠다고 했다. 여럿이 야외에서 모일 때는 역시 바비큐가 최고다. 반찬이 따로 없어도 되고 디저트는 샘 옆에서 익어가는 앵두나 보리수를 따 먹으면 된다. 하지만 막상 사람들을 오라 하고 보니 걱정이 앞선다. 텃밭에서 난 오이로 만든 김치와 무말랭이 무침을 준비했는데 입에 맞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일을 벌였으니 뒷감당은 내가 해야 한다. 모자란 반찬은 텃밭에서 상추를 뜯어다 놓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훈제 바비큐 통 바닥에 물을 채우고 참숯을 피워 넣었다. 두툼하게 썬 고기에 굵은소금을 치고 아들이 가져다 놓은 바비큐 소스를 뿌렸다. 평소에는 손자 손녀들이 맵다고 할까 봐 쓰지 않는 소스다. 소스 통을 보니 미국 것이다. 바비큐의 본 고장은 미국이 아니던가. 국산 삼겹살이 미국 소스를 만나 어떤 맛을 낼지 기대된다.


  도착한다는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모두 모였다. 나한테는 가까웠어도 처음 오는 분들한테는 멀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유월이 익어가는 날 저녁 햇살은 아주 여유롭다. 나는 무슨 셰프라도 된 것처럼 흰 장갑을 끼고 맛있는 냄새가 퍼져 나오는 바비큐 통을 열었다. 노릇하고 바삭하게 익은 바비큐 한 덩이를 꺼내 썰어보니 마침맞다. 촉촉한 육즙이 배어 나오면서 입맛을 다시게 한다, 기름이 쏙 빠진 껍데기는 아예 칼로 자르기 어려울 정도로 딱딱하다. 마치 학생들과 필리핀에 어학연수 갔을 때 처음 먹어본 세부의 레촌(lechon) 같다. 겉은 과자처럼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게 이만하면 대성공이지 싶다. 


  자리를 함께한 동료들은 생애 최고의 맛이란다. 아예 이것을 특허라도 내면 어떻겠냐고 한다. 나는 야외 잔디밭 경치와 시장기가 겹쳐서 그런 거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고기를 썰어놓기가 무섭게 동이 나는 것을 보니 빈말은 아닌 듯하다. 모두 맛있게 먹어주니 나는 먹지 않아도 벌써 배가 부르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몰랐는데 벌써 오밤중이다. 그 사이 소주, 맥주는 벌써 동나고 일전에 남겨둔 몰트위스키 두병도 모두 바닥을 보인다. 이러다 아예 밤이라도 새울 분위기다. 초록집에서 자고 가도 된다고 했더니 일행 중 두 분이 내일 아침 아이들 등교 때문에 꼭 가야 된다고 한다. 집이 서울이고 인천이다. 이곳 공주에서 그 멀리까지 가야 한다니 괜히 여기까지 오라고 한 것 같아 미안하기 그지없다. 취한 사람들의 등을 떠밀다 시피해서 파티를 끝냈다. 서두르다 보니 모두 빈손으로 보냈다. 맛있게 먹던 텃밭 상추라도 듬뿍 뜯어 보냈어야 하는 데 미안함과 속상함이 두 배다. 


  손님이 가고 난 빈 마당에 별빛이 쏟아지는 데 어디선가 개구리 울름소리가 가득 들려온다. 어디서 이렇게 떼 창을 하는지 궁금하여 개울 쪽을 향해 걸어보았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신기한 불빛이 날아다닌다. 두 마리가 한 쌍이 되어 황홀한 유영을 하는 데 가만히 보니 어릴 적 보았던 반딧불이다. 나도 여기 와서 처음 보는 귀한 녀석이다. 


  그래 밤길이 어두우니 너희가 길을 밝히는구나, 가시는 분이 잘 돌아가시도록 살펴드려라. 다음에 우리가 다시 모이거든 바비큐 파티는 핑계고 너를 만나러 온 것이다. 텃밭에 바비큐 잔치를 하려다 반가운 반딧불이 잔치까지 만났으니 오늘이야말로 운수대통한 날이다. 


이전 11화 장모님이 주신 텃밭 수박과 참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