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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인 Aug 16. 2023

초록집 이야기

   아파트를 떠나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시골에서 자란 추억도 그립고 아들 둘이 모두 가정을 꾸려 떠난 뒤라 아내도 반대하지 않았다. 푸른 잔디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상상은 자다가도 실실 웃음이 새 나오게 했다.


 막상 전원주택으로 가겠다고 결심한 뒤로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우선 어디로 갈 것인지, 어떤 집을 지을 것인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 돈은 얼마나 들여야 할지부터 시작하여 온갖 걱정거리가 뒤섞여 마음이 복잡하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들의 경험담도 들어보고 책을 사서 보거나 관련 강의에도 참석해 보았지만 딱 부러진 정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어디로 갈 것 인지부터 해결해야 했다. 이후 몇 년을 근교의 전원주택단지나 집 지을 만한 곳을 수없이 찾아다녔지만 허사였다. 내 상상과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내 팔자에 무슨 전원주택이냐고 지쳐서 포기할 무렵이었다. 한 번 더 속는 셈 치고 토요일 저녁에 가본 곳이 공주 봉황산이 멀리 보이는 산 아래였다. 세종시가 끝나는 곳이고 공주에서도 가장 먼 곳이니 다들 관심이 없던 곳인데 거기에서 지금의 집터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 마주한 집터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내가 꿈꾸던 그림 같은 전원주택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진입로는 진흙에 발이 푹푹 빠지고 입구에는 미친년 산발한 것 같은 밤나무 가지가 눈을 찌르며 들어가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었다. 게다가 맨 안쪽에는 다 쓰러진 기와집이 폐가처럼 주저앉아 있고 마당의 풀 섶은 내 키만큼 자라 심란하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흘깃 보니 중개하러 온 똠방까지도 마당가 재래식 변소 옆에서 코를 막고 고개를 젓는 게 보였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저녁노을 풍광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비탈진 마당에 서서 보니 발아래로 펼쳐진 탁 트인 경치가 모든 허물을 덮고도 남았다. 집터나 땅은 다 임자가 따로 있다고 한다.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내가 망설일 것도 없이 후딱 계약하자고 하니 다들 내가 이상해 보였나 보다. 집주인아주머니까지 정말이냐고 되물었지만 십 원도 깎지 않을 테니 약속이나 잘 지키라고 부탁하면서 그렇게 집터를 잡았다.


  집 자리를 정했으니 이제 집을 지을 차례였다. 그런데 만나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거들었다. 결론은 집부터 덥석 짓지 말고 우선 한두 해 지내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도시를 떠나 불쑥 시골로 이사했다 낭패를 보는 경우를 많이 봤다. 불편한 게 한두 가지 아니고 시골 인심이 좋을 것 같아도 텃세가 심하다는 것이다. 온갖 벌레와 냄새나는 것은 오히려 둘째 문제란다. 


  하지만 그럴수록 하루라도 빨리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싶은 욕심은 더 커져만 갔다. 퇴직 날짜에 맞추어 근사한 집들이를 하면서 아내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색낼 생각을 하며 마냥 들떠 있었다. 건물 배치며 평면도를 스케치도 해보고 건축사한테 설계도 부탁했다. 그러던 차에 토목공학 일을 하다 퇴직 후에 풍수와 명리학에 일가를 이룬 지인 한 분이 좌향을 봐준다고 찾아왔다. 


  이곳이 집터로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분은 대답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내가 어떻게 해서 이런 명당을 얻었냐고 반문한다. 그날 저녁은 좋은 집터의 주인이 되었다는 구실로 아주 근사하게 밥을 샀다. 이제 평생의 소원이 다 이루어진 것만 같아 그날 밤은 행복한 꿈을 꾸면서 잘도 잤다.


  인생이 꼭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닌 듯싶다. 집터도 더없이 좋다고 하고 설계도 초안까지 나왔으니 바로 다음 날이라도 공사를 개시할 기세였지만 일이 틀어지고 말았다. 퇴직 무렵에 평생 하던 일에 발목을 잡혀 재취업이란 명목으로 주말부부를 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내 혼자 외딴 산밑에서 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집 짓는 일을 접어야 했다. 재취업 임기를 마칠 때까지라도 바람 부는 대로 살기로 하고 집터 주변에 나무도 심고 주말에는 채소를 가꾸면서 두어 해를 보냈다.


  그래도 전원주택에 대한 상상은 꿈속까지 찾아와 나를 유혹했다. 꿈속에서 고향의 감나무며 돌담이 보이고 넓은 잔디밭 위에 수영장이 딸린 그림 같은 집이 자꾸 나타났다. 그러던 차에 동창회에서 우연히 평생 목수를 했다는 친구를 만나면서 전원주택에 대한 꿈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 친구는 미군 부대에서 목수 일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내가 만났을 때는 허리춤에 체액 주머니를 차고 있었는데 수술 후에 서울로 통원 치료를 다닌단다. 그래 목수로서 손을 놓은 지도 한참 되었다고 한다. 그 친구한테 집에만 갇혀 있느니 운동 삼아 나와 함께 조그만 나무집이나 지어보자고 했더니 두말없이 그러자고 했다. 이렇게 해서 나무로 집을 짓는 일이 시작되었다. 


  나무집의 용도는 주말에 사용할 놀이터 겸 쉼터다. 크게 지을 이유가 없어 바닥은 열 평 남짓이었다. 설계도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고, 쓰다 남은 노트에 내부구조며 창문을 어디에 낼지만 그리면 그만이었다. 바닥이 좁으니 자연히 위로 뾰족하게 올릴 수밖에 없었다. 1층에는 작은 찜질방을 만들고 2층에는 지붕으로 하늘이 보이도록 창을 냈다. 3층 다락방에는 책꽂이를 짜 넣고 계단은 미끄럼틀로 만들었다. 봉황산이 잘 보이는 계단 위에는 반 평짜리 기도실도 만들었다. 이럭저럭 만들다 보니 그야말로 점차 그럴듯한 모양을 갖추어 갔다. 


  아무리 작은 곤충도 오장육부는 다 있다는 말처럼 집이 작아도 이것저것 있을 것은 다 갖춰야 했다. 주중에는 친구 혼자 놀이처럼 일하고 내가 주말마다 오밤중까지 일을 거들었다. 사서 고생하느라 힘들었어도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서너 달이 후딱 지나고 보니 드디어 외벽만 칠하면 완성할 단계까지 왔다. 마지막 선택은 나의 몫이었다. 다들 언덕 위에 하얀 집을 만들라고 흰색을 추천했지만 결국 초록색을 골랐다. 작은 오두막이 너무 눈에 튀는 것도 보기 좋지 않을 듯하고 초록색이 주변에 우거진 신록과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나는 작은 정자 같은 이 나무집을 나와 아내 이름에서 한자씩 따서 회명정(會明亭)으로 이름 짓고 친구한테 현판까지 써달라고 했다. 하지만 아내와 손자 손녀들은 이 작은 오두막을 보자마자 동화 속에 나오는 장난감 집 같다며 초록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전원주택에 대한 나의 환상은 결국 이렇게 작은 초록집으로 끝났다. 초록집은 내가 상상하던 그림 같은 전원주택과는 거리가 멀고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도 다행히 손자 손녀는 나를 볼 때 마다 초록집에 가서 놀자고 조른다. 


  그래, 나머지 반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채워나가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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