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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인 Aug 18. 2023

아내의 결혼반지

  오월이면 잔디밭 한쪽에 클로버가 먼저 자리를 잡고 기다란 꽃대를 밀어 올린다. 하얀 꽃송이가 달린 줄기를 뽑아 가운데를 가르고 다른 꽃송이를 엇걸어 잡아당기면 예쁜 꽃반지가 된다. 어린 시절에는 이렇게 지천에 피던 클로버꽃을 따서 반지 만들어 손가락에 끼고 놀았다. 그러다 네 잎 클로버라도 발견하면 책갈피에 넣어 간직하곤 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반지는 행운의 상징이요 언약의 정표로 기억되어 왔다. 


  반지를 생각하면 결혼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때 결혼식에서는 성혼 선언 후 신랑 신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는 순서가 있었다. 그렇지만 어리고 가난했던 우리 부부는 남들처럼 값비싼 반지를 준비할 여력이 없었다. 지금 같았으면 차라리 로맨틱하게 꽃반지라도 해주었을 텐데 참으로 미안하다. 


  사실 아내의 매력 포인트는 대리석같이 하얗고 윤기 흐르던 손가락이었다. 그 집 자매들이 다 그랬지만 큰 딸이던 아내의 손이 유난히 고왔다. 아내는 공무원으로 평생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 둘을 키우느라 고생만 했다. 퇴직 무렵까지도 누가 아내의 손을 보면 그렇게 고운 손으로 정말 집에서 직접 밥도 하고 설거지 같은 것도 하냐고 정색하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런 아내 손가락에 제대로 된 결혼반지 하나 끼워주지 못했으니 해마다 찾아오는 결혼기념일마다 미안한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더구나 시동생들 결혼식 때 혼수에 보태려고 오죽잖은 패물까지 모두 처분한 적도 있으니 아내에게 진 마음의 빚은 더욱 늘어만 갔다. 이후 형편 닿는 대로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또는 어디 여행이라도 갔다 오면 그것을 핑계 삼아 비싼 것은 아니더라도 반지며 목걸이 같은 것을 하나둘씩 선물했다. 


  다른 여자는 몰라도 아내만큼은 평소 치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믿었다. 반지며 목걸이 등 번쩍거리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욕심도 내지 않는 사람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새로 이사 간 집에서 그동안 다시 사준 패물을 몽땅 도둑맞고서야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착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아내가 그렇게 속상해하는 모습을 생전 처음 보았다. 역시 여자의 마음은 똑같았다. 도둑 사건 후 아들만 낳으면 이만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해준다고 약속해 놓고 아들 둘이 다 커서 장가까지 가게 생겼는데 해준 게 뭐 있냐고 쏘아붙인다. 할 말이 없었다. 사실 내가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없는 말을 지어낼 사람은 아니니 사실이었을 것이다.


  큰아들 결혼식이 다가왔을 때였다. 요즘 젊은이들답게 패물이며 혼수는 과감하게 생략하자는 며느리를 설득하여 예물 가게부터 들렀다. 삼십 년 전 내 결혼식에는 해주지를 못하였어도 명색이 큰아들 장가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다른 것은 몰라도 며느리한테 반지 하나만은 꼭 해주고 싶었다. 


 “여보, 며느리 반지 고르는 김에 당신 것도 한 번 골라 봐요”


  평생 반지에 대한 미안함을 훌훌 털어버리는 순간이었다. 곁눈으로 보니 아내는 나이에 맞는 클러스터 디자인을 며느리는 심플한 티파니 스타일을 골랐다. 맞춘 반지를 찾으러 갈 때까지 아내는 새색시보다 더 들떠있는 듯했다. 


  지금 아내는 그때 사준 반지를 꽁꽁 감춰두고 있다. 오늘도 그랬다. 왜 요새 반지를 안 끼냐고 물어보면 대답 없이 그냥 웃기만 한다. 아내의 손가락에는 삼십 년 만에 해준 결혼반지 대신 조그만 부엉이 반지 하나가 따라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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