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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인 Aug 22. 2023

작명단상

  누군가의 이름을 짓는 일은 정말 멋진 일이다. 특히 자신의 아이 또는 손자나 손녀의 이름을 짓는 일은 가슴 설레고 행복할뿐더러 가장 보람 있는 일이다. 이름을 주는 것이야말로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뱃속의 아이한테도 이름을 지어 부른다. 태명을 들어보면 모두 정겹고 사랑스럽다. 이런 태명이야 자유롭고 편하게 짓더라도 실제 호적에 올리는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몇 날 며칠 심지어는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재치 있고 놀기 좋아하는 고향 친구가 있었다. 내심 아들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딸을 낳았다. 친구들이 덕담하면서 딸이 판치는 세상이니 상심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친구 대답이 걸작이었다. 

 “오늘 아침에 웬 놈의 까치가 그렇게 울더니 와이프가 애를 쑥 낳았어, 이름은 당연히 까치라고 할껴~” 

순간 눈을 껌뻑거리던 다른 친구들이 모두 뒤로 자빠졌다. 그 친구 성이 조 씨였다. 그때부터 별명이 까치였던 그 예쁘장하던 아이도 지금은 어른이 되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아이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동양철학적 관점과 항렬자와 같은 가문의 전통을 전혀 무시할 수도 없다. 내가 손녀 이름을 지을 때 물려받은 항렬자가 꿈 ‘몽’ 자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집 강아지 몽실이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너무 이쁘거나 귀여운 어감의 이름은 어릴 때야 그렇다 쳐도 어른이 되어서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부르기 쉽고 쓰기도 까다롭지 않으면서 누구한테도 기억될만한 좋은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외국어로도 별 문제가 없어야 하니 살펴볼 것이 한두 가지 아니다. 하지만 아이의 이름 짓는 일이 애 낳는 것보다는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행복한 고민이요 신나는 고통이다. 


  내가 아들 이름을 지을 때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아버지한테 상의하니 ‘네 새끼는 네가 하라’는 것이다. 서운하기도 하고 맞는 말씀이기도 했다. 아직 목도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한없이 들여다보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아이의 기세가 태산 같고 성질이 급해 보이니 물처럼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름에 물 흐르듯 살라는 뜻을 넣으니 그럴듯했다. 둘째 때는 고민이랄 것도 없었다. 해불양수(海不讓水)라고 했던가, 세상의 모든 물이 흘러 바다로 가니 그 뜻만 있으면 되었다. 지금도 아들 둘이 내가 지은 이름에 만족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쉽게 개명을 해 대는 세상에 아직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감사한 일이다. 


  어느 땐가 학부 강의 시간에 학생들끼리 인사를 하도록 했더니 한 여학생이 자기의 이름을 소개하던 게 인상적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이름을 지어 주셨는데 이러저러한 연유와 뜻이 담겨 있고 중국어나 영어로도 이런 뜻이 있어서 너무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은 이름을 쓸 때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기분도 좋아지고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 구절이 있다. 어쩌다 보니 아들 둘의 이름을 지었고 손자 손녀 이름까지 지어 내 가슴에 피어나는 꽃이 되었다. 나 역시 그 여학생의 할아버지 못지않게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부르는 이름들이 모두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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