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되는 게 없네
극심한 생리통과 요란했던 생리전 증후군을 겪으면서 나는 괜찮은 줄 알았다. 이것만 지나면, 모든 게 다 제자리로 가겠지.
"아직 난소가 부어있어요."
"아...그래요?"
"다음 주기에 생리하면 오세요."
월요일이라 사람은 많았고 긴 대기도 상관없었다. 이번에는 이식을 할 수 있겠지, 내 상태도 괜찮아졌겠지 하는 기대감이 있었기에. 전날에 언니네랑 일박 이일로 놀러 갔다 온 날이어서 조금 들떠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식하게 되면 어떤 과정인지 언니와 형부에게 신나게 떠들고 왔으니.
그래서 당연히 이식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을 줄 알았다. 복수는 잘 빠졌겠다 싶어서. 난소가 부었던 건 그리 걱정한 부분은 아니었다. 평균적인 기간에 생리도 했으니까. 채취하고 열흘이 넘었는데 전과 같이 돌아오지 않겠냐는 스스로의 안심이 실망을 불러온 셈이었다.
기운이 축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다음 주기면 또 한 달 후가 되어버리니까. 몇 달을 여기에 매달려 있는 건지. 과정만 있었지 결과를 보기까지 길게 이어지는 기간에 적극적인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차라리 아예 미뤘으면 일이라도 구하면 되는데 미루자니 올해 안에 임신이 하고 싶었다. 이식을 한다고 해도 바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으니.
"난소가 부어있어서 다음 생리할 때 오래."
남편은 이번 주기엔 못 할 확률이 높겠다고 생각을 했었다면서 괜찮다고 나를 위로했다. 기다리는 동안 몸을 더 건강하게, 따듯하게 만들면 된다고. 으쌰으쌰 하고 싶은 마음은 동감이었다. 다만 전처럼 의욕이 사라진 건 어쩔 수 없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 텀이 기니까.
남편에게 이제 자유 시간이라며 좋다고는 했지만 마음은 복잡 미묘했다. 이게 좋은 건지, 아닌 건지. 벌써 하반긴데 임신은 할 수나 있는 걸까. 시험관으로 인해 시간만 딜레이 되는 거면 어쩌지. 이러다 한 해를 훌쩍 넘기고 많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거면 어떡하지. 도저히 긍정적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올해 초부터 집에서 머무는 신세가 되었고 남편이 뭐라고 한 적은 없지만 백조가 된 순간부터 내심 마음이 불안했었다. 앞으로 여유 있게 잘 살아가려면 맞벌이가 맞는데. 그럼에도 나름 마음을 놓았던 건 임신 준비 때문이었다. 뭐라도 내가 하는 느낌이 들어서.
이번에 생긴 자유 시간도 몸을 위한 잠깐의 공백 기간이라고 생각을 해봤지만 속내는 전혀 편하지 않았다. 병원을 갈 일이 없을뿐더러 진짜 집에만 있는 거니까. 아무리 집안일을 한다고 해도 가정을 위한 경제력에 보탬이 될 수 없다는 사실처럼 현실은 아무것도 안 하고 노는 백조가 된 것 같았다.
남편 덕분에 즐겁기도 했다. 못 먹었던 술을 줄기차게 마시며 맛있는 걸 먹고 산책도 쉬엄쉬엄 하면서 불편했던 몸도 편해지니 움직이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출근한 남편을 배웅하고 나면 덩그러니 놓여있는 기분이 들었다. 하루종일 내가 할 일을 열심히 해도 남는 건 무기력한 감정뿐이었다.
"복수 차더라도 이식할 걸 그랬나 봐."
"아니야, 복수 차서 이틀에 한 번씩 병원 간다고 생각해 봐. 난 싫어."
이미 늦어버렸지만 서서히 지난 시간의 후회가 몰려왔다. 이럴 거면 감안하고 이식받을 걸. 임신이 된다는 확신은 없어도 내가 뭐라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을 텐데. 거기다가 만 나이 제한으로 동결 배아는 한 개만 이식을 받을 수 있었다. 복수 상관없이 그냥 이식을 받았다면 신선 배아로는 두 개까지 가능한 일이었다.
쌍둥이를 원하는 나로서는 이런저런 후회가 들 수밖에 없었다. 마음대로 되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를 넣어도 분열하면 일란성 쌍둥이가 생길 수 있다고는 하지만 확률도 높지 않고 드문 일이라고 했다. 이식 생각을 하다 보니 미련이 남았고 텅 비어버린 시간은 아까웠다.
방법은 없었다. 어차피 다음 주기가 되어야 하고, 백조로 집에 있어야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마음 편하게, 남편과 즐겁게, 몸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좋은 생각을 하면 불안정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나아진다고 했다. 나는 무언갈 해야만 하는 집착을 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편하게 비워진 마음, 나는 자유의 몸으로 쉼이 가득한 하루를 신나게 보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