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 동결배아 1차
나에게 주어진 한 달이란 시간은 꿀처럼 달콤하고 너무나 자유로운 나날이었다.
"이식하려면 한 달이나 밀리겠네."
처음에는 길어진 시간에 임신 시도가 멀어진 느낌이라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아 또 다음 생리주기까지 기다려야 하는구나. 특히 난자채취 후 두 번째 생리는 예정일보다 많이 늦는다는 얘기가 있기에 생각과 몸이 늘어질 만큼 감정적으로도 영향을 제법 받았다. 한 달 후에 시도하고 임신 확인까지 하려면 시간이 더 길어지겠네.
무언가를 하거나 몸을 신경 쓰던 매일이 사라지고 진정한 자유시간이다 보니 하루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 약 안 먹는 날이지, 주사도 안 맞는구나. 삐걱거리며 시간 맞춰 정수기 앞으로 가는 나를 보며 헛웃음을 터트린 적도 있었다. 몇 달 이어갔다고 모든 행동이 습관으로 되어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이는 곧 제자리를 찾아 원래의 패턴으로 돌아왔다. 얼음이 가득 들어간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먹고 싶었던 인스턴트를 마구 먹으며 저녁은 남편과 신나는 술잔치를 벌였다. 취하는 기분이 이렇게 좋았나. 이왕 가진 자유시간을 즐기라는 남편의 말에 나는 졸인 마음을 온전하게 버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버릴 수 없었던 건 혹시나 하는 자연임신이었다. 그동안 난임센터를 준비하면서 몸을 생각하느라 좋은 시간을 보내기가 어려웠는데 이참에 시도해 볼까. 배란테스트기도 남아있겠다, 대충 어림잡아 피크가 뜨기를 바라며 시도를 했고 늦어진다는 생리만큼 배란일도 8일이나 지난 후에야 진한 두 줄을 볼 수 있었다.
"이참에 여름휴가 겸 같이 놀러 갔다 올까?"
"여름휴가? 언제?"
"7월 말 즈음에."
"잠깐만, 그때 예정일이긴 한데."
여름휴가 날짜가 확정된 남편은 해외여행을 가자고 했다. 만약 임신을 하게 되면 언제 또 갈 수 있을지 모른다며. 몸 걱정되기 전에 가는 게 좋지 않냐고 나를 부추겼다. 좋긴 하지만 내가 신경 쓰이는 건 하나, 생리 예정일이었다. 시작되면 2-3일째 되는 날 가야 했기에 해외에 있을 때 날짜가 겹칠 경우 다음 주기에 내원을 해야 하니 미뤄질 시간들이 사실 아찔했다.
지나쳐버리면 최소 한 달이란 시간이 훌쩍 가기 때문에 선뜻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배란테스트기를 해봤을 때도 8일이 미뤄지긴 했지만 내 몸이라도 예정일은 예측할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여행을 선택한 나는 남편과 일본으로 3박 4일 여름휴가를 갈 수 있었다. 희망이지만 임신 전 가는 마지막 여행이라 생각하며.
"재미있게 놀다 오자."
"응,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오자."
몇 년 만에 간 해외여행은 그야말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남편과 거리를 다니고 구경을 하고 쇼핑을 하며 저녁에는 맛있는 음식과 술 한잔을 기울이니 꿈같은 날들이었다. 임신을 했어도 좋았겠지만 이대로도 좋았다고 생각이 들 만큼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오길 잘했다, 예정일이 겹친다면 그것마저도 내가 겪을 나의 시간이겠지.
매달리기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자연적으로 흐르기를 바랐다. 이 시기도 운명이겠지 여기면서. 집으로 돌아오고 다음날 시작된 생리로 인해 자연임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알맞은 시기에 난임센터에 내원할 수 있으니까. 여전히 줄은 길었지만 미리 전화를 한 덕분에 접수하자마자 피검사를 빠르게 할 수 있었다.
"오늘은 길어지네."
진료 시간이 시작되었음에도 응급이 있는지 순서는 줄어들지 않았다. 긴 기다림 끝에 들어간 진료실에서 난소가 많이 나아졌다는 소릴 들었다.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서 신경이 쓰였지만 오늘부터 동결배아로 시험관을 시도할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드디어 하는구나.
난자채취를 할 때보다 확실히 과정은 간단했다. 열흘 정도 약을 먹고 일주일 뒤에 이식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주사는 아직인지 내가 처방받은 건 약뿐이었다. 통증은 없는 것들이지만 영양제가 늘었고 하루에 8시간 간격으로 세 번 먹어야 하는 호르몬제, 아스피린 등 먹어야 할 약이 늘었다. 결코 쉽게 볼 일이 아니었다. 약으로 배가 찰 줄이야.
몸 관리와 약 복용이 다시 시작되었지만 마음은 가뿐했고 전과 달리 자잘한 신경쓰임이 좋았다. 길다고 생각했던 한 달이란 시간이 되려 여유와 새로운 마음을 가지게 해준 것 같았다. 어쩌면 실패를 맛보고 이어진 과정이 견딜 수 있어도 나름대로 힘이 들었겠구나 싶었다.
처방받은 약을 먹으며 난임센터에 갈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졌다. 이번에는 성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