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제일 중요한 시기에
열흘동안 약은 빠짐없이 챙겨 먹었고 일상은 무탈히 흘러갔다, 남편이 감기에 걸리기 전까지는.
"얼굴에 열봐, 뜨끈해. 많이 아파?"
"코로나 아닐까, 검사해 봐야 되나."
남편과 나는 감기에 걸리는 일이 많이 없었다. 특히 나는 더더욱. 우린 코로나도 한 번도 걸리지 않았기에 증상도 겪은 적이 없었다. 대체로 어떻다는 것만 듣고 알았지. 임신을 생각하며 마지막 캠핑을 다녀오자고 했던 남편은 즐겁게 놀고 온 다음날 감기기운이 있다고 했다.
목이 칼칼하면서 간질거린다고 감기가 오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지만 약국에서 약만 사 왔을 뿐 우린 개의치 않았다. 남편은 그저 시험관을 하고 있으니 날 걱정해서 미리 약을 먹어둔다는 것이었고 나는 남편이 워낙 땀을 흘리고 에어컨을 쐬니 냉방병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정말 가볍게.
하루가 지나고 남편의 증상은 점차 심해졌다. 열이 많이 올라 온몸이 뜨끈거렸고 기침과 늘어지는 몸에 병원을 권했지만 시간이 없다기에 일단 집에 있는 자가키트로 검사를 해보니 다행히 음성이었다. 초반에는 안 나온다고 했기에 혹시 몰라 한 번 더 체크가 필요하긴 했다.
"출근 전에 병원에 가는 건 어때? 코로나 검사도 해보고."
"응, 그래야겠어."
병원에서 한 재검사는 똑같이 음성이었다. 다행이었고 걱정은 없었다. 다만 남편은 철저히 선을 그었다. 같이 물을 못 마시게 하고 나의 낙인 뽀뽀도 못하게 하고. 왜 그러는지는 알았지만 나는 사실 걱정이 없었다. 워낙 감기에 잘 걸리지 않을뿐더러 남편이 걸려도 옮긴 적이 없었으니.
하지만 건강했던 지난 과거를 스스로 과대평가한 모양이었다. 괜찮다고 넉살을 부린 태도와 달리 덥석 감기가 옮은 나는 아침부터 목이 칼칼하고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때만 해도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에어컨을 틀어서 그런 거겠지 하고. 증상이 심해지면 병원부터 가라는 남편의 말은 귀에 들리지 않았다.
감기 증상이 있기 하루 전, 난임센터에서 내막이 잘 자라고 있다며 이식을 진행해도 좋다는 말을 듣고 나는 신나 있었다. 그동안 약을 잘 챙겨 먹긴 했으니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당일부터 이식 후 임신 확인 피검사를 하는 날까지 맞아야할 주사와 질정을 보며 주사 지옥에 들어섰고 돌주사는 여전히 아팠다.
그래도 괜찮았다. 주사는 처음이 아니었고 감기도 심한 증상이 아니었으니. 자잘한 기침과 몸이 약간 다운되는 거 말고는 열도 거의 없었기에 자신 있었다. 아, 이번에도 쉽게 넘어가겠지. 안타깝게도 나의 안일한 생각이었다. 하루가 지나고부터 증상은 조금씩 발현되기 시작했다.
"병원 안 가도 되겠어?"
"약 먹으면 될 거 같은데."
이식을 사흘 앞둔 주말, 내 증상은 심각하지 않은 감기였다. 목으로 시작해서 콧물, 코막힘, 재채기, 그리고 기침. 약 먹으면 그때는 괜찮아지기에 병원은 생각하지 않았다. 금방 낫겠지 싶어서. 이식 하루 전에 확실히 해둘 겸 내원을 하라고 해서 피검사와 초음파를 마친 나는 안내를 해주는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제가 코로나는 아니고 가벼운 감기인데 오늘까지 약을 먹어도 되나요?"
"어떤 약이에요?"
"약국 약인데 아직 증상이 있어서 오늘까지는 약을 먹어야 될 거 같아서요."
"일단 오늘만 드시고 내일은 이식을 하니까 이후로는 약 드시면 안 돼요."
약을 마저 먹은 그날은 나아진 듯한 낌새를 보였다. 문제는 기침이었다. 다른 증상은 거의 없어졌으니까. 밤부터 시작된 잦은 기침으로 남편도 잠을 못 자고 나도 못 자게 만들었다. 겨우 선잠으로 밤을 보내고 나는 그리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이식을 하고 나면 컨디션 관리가 중요하다고 하기에 몸을 관리했어야 하지만 감기에 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던 나는 뒤늦게 후회가 몰려왔다. 그냥 처음부터 병원이나 갈걸.
그동안 따듯한 물이랑 꿀물도 먹고, 기침이 심했던 날은 밤새 물을 먹으며 마르지 않게 목을 축였다. 어찌 된 영문인지 소용은 없었다. 증상이 나아졌으면 기침도 그래야 하는데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건 체념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감기로 인해 반은 실패고 반은 성공했다는 후기에 그나마 마음을 달랬다.
이식 당일 아침, 기침이 심한 채로 난임센터에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바랐다. 제발 이식할 때만은 기침하지 않게 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