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고 여겨도 쉽지 않구나
이식을 하고 며칠이 지나면서 나는 서서히 체념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꽝이구나."
사람마다 느끼는 임신 증상은 다르다고 한다. 주된 증상이 있는 사람이 흔한 반면에 아무 증상도 없는 사람이 있다거나 그 외에 평소와 다른 느낌을 받는다거나. 정확한 결과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서야 알 수 있다지만 대부분 임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증상으로 임신을 구분하는 편이다. 확신을 가지려고 피검사를 하기 전에 임신테스트기로 미리 확인을 하는 거고.
무수한 증상을 겪었던 나도 생리증후군을 일종의 '임신 전 증상놀이'로 착각한 적이 많았다. 이 찌릿함과 배의 묵직함, 증가하는 식욕, 춥고 더운 온도차. 이건 혹시 임신의 전조 증상일까. 남편은 절대 모를 작은 증상 변화에 예민해지고 조심스러워지고 나도 모르게 오르는 기대감에 마치 임신을 한 것처럼 행동을 한 적도 있었다.
생리가 터지기 전까지 혹시 모를 어떤 마음 하나 때문에 내내 심란한 기분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가끔 임신테스트기로 실패를 확인할 때면 쏟았던 신경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한없이 우울감을 만들어냈다. 지금까지 임신 준비를 하면서 정말 많이 느꼈던 것이고 이번 시험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늘은 왜 배가 콕콕 거리는 증상이 없지."
동결배아 이식 시술을 받은 직후에는 배가 묵직하면서 팽창된 느낌이 있었다. 거기에 콕콕 거리는 건 기본이고 없던 열감까지 생겼으니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착상이 진행되고 있는 건 아닐까. 감기로 인해 기침을 하도 해대서 배가 땅기기에 기대감은 저버렸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마음을 놓기란 어려웠다.
몸보신에 좋다는 추어탕을 연달아 먹으면서 착상에 도움이 된다는 포도즙을 아침마다 챙겨 먹었다. 기침 덜 하기 위해 꿀차를 마시고, 찬물은 무조건 금지였다. 찾아보면 이게 다 확증된 것들이 아니라고 하지만 조금이라도 확률을 높여보기 위한, 솔직히 내 마음이 편하자고 하는 발악일지도 모르겠다. 착상에 스트레스가 제일 안 좋다던데 사실 모든 상황에 나는 이미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걸지도.
남편과 대화를 하며 기대하지 말고 실망하지 말자며 임신이 아니더라도 괜찮다는 말을 연신 주고받았기에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혹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남편에게도 보였으니까. 같은 모습을 비춰주고 싶었다. 임신이 되지 않아도 나는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처음과 달리 덜해지는 증상과 곧 생리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자 피검사를 앞둔 나에게 무력감이 찾아왔다. 입맛이 없어지고 툭하면 눈물이 나고 뭘 하면서도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다. 청소를 하거나, 밥을 먹거나, 게임을 하면서도 그저 그냥 그랬다. 겉으로 힘들다, 맛있다, 재밌다를 남발할 뿐.
"계속 누워만 있고 싶다."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으면 있던 기력도 떨어지고 몸은 축 늘어진다. 그걸 알기에 평소 루틴대로 행동하고 있지만 임신이 아닌 걸 알면서도 주사나 약을 임의로 중단하면 안 되기에 시간마다 통증을 알게 되는 내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이것마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구나.
호르몬 영향 때문인지 감정은 예민해지고 사소한 몸의 증상은 더욱 짙게 느껴졌다. 솟아나는 우울감에 생각은 많아지고 밤에 잠도 설치고 맞춰둔 알람에 따라 움직이는 내가 싫었다. 받는 감정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계속 임신 준비를 해왔던 탓인지 이런 상황이 지겹게 느껴질 정도로 나는 지친 상태였다.
"다 포기해버리고 싶다."
혼자 남아있을 땐 이 말을 주절거리곤 했다. 차라리 돈을 벌어서 좋아하는 걸 맘껏 먹고 사고 즐기며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여기에 얽매여서 조바심에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남들이 뭐라 하든 재밌게 살면 되지 않을까. 온갖 잡생각이 다 들면서 가시 박힌 장미 덩굴에 묶인 듯 스스로를 부정적인 나락에 빠트렸다.
그러면서도 임신을 하면 너무 좋을 텐데. 나랑 남편을 닮은 아이라니 얼마나 소중할까. 계속 시도해 보는 게 좋은 걸까. 어떠한 결론을 내리기가 힘들 정도로 반복되는 생각은 점점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한 번 가진 생각은 여러 번 되뇌는 편이라 꿈에서마저 좋지 못한 일들을 겪는 것도 수두룩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모든 게 임신을 미친 듯이 하고 싶어서 이러는 건가 싶기도 했다. 바라고 바라다가 안 되는 걸 너무나 많이 겪어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체념을 하고 무기력감이 왔고 포기 상태에 이른 내가 피검사를 하는 전날까지 생각한 건 딱 하나였다.
"어차피 검사해도 꽝일 걸, 그냥 생리나 빨리 터졌으면 좋겠다."
지독한 호르몬 영향에서 제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야 다시 활기찬 나로 돌아올 수 있을 거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