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 1차 종결
피검사로 임신 확인을 하기 위해 난임센터에 내원한 나는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다 가방을 반납하고 가네, 임신이 아닌 건가."
"나도 오늘 반납해야 돼."
"아냐,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이번에는 아니야, 내 몸이 그래."
이유야 정확할 수 없지만 생각보다 한산했던 날이라 시선은 여러 주위를 둘렀다. 임신이든 아니든 걱정이 된다며 따라온 남편이 조잘거리며 말할 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아니라고, 내 몸의 증상이 그렇다고.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겪는 증상에 예민해지고 몇 번을 당해왔으니 오는 촉을 무시하긴 어려웠다.
체념을 하고도 아주 작은 일말의 기대마저 바닥을 치면서 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묻혀 한없이 가라앉았다. 내심 괜찮다고 아닌 걸 알고 가는 거니까 나는 괜찮을 거라고 여기며 가는 차 안에서 고작 발라드 한 소절 불렀을 뿐인데 울컥 눈물이 솟구쳐 나왔다. 주책이다 싶어 얼른 추스렸지만 마음은 이미 어디 내던져진 모양이었다.
진료를 보는 원장님의 시험관 시술이 많았기에 대기가 길었던 그 시간 동안 남편과 웃으면서 얘기를 나눴다. 아무렇지 않게, 마치 임신의 성공여부를 들으러 오지 않은 것처럼.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평온하게 나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렸다. 어쩌면 서로 부정적인 말을 꺼내지 않으려는 것도 있지 않았을까.
"집에서 소변 검사는 해보셨어요?"
"아니요."
"음, 임신 수치가 나오지 않았어요."
"혹시 0점대 인가요."
"네."
진료실에 들어가면서 말을 듣기도 전에 원장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완전한 확신이 들었다. 임신은 실패고 수치마저 아예 안 나왔구나. 사실 1차에서부터 된다는 확신은 없었으니 무조건 성공한다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내가 작게나마 바란 건 착상 수치였다. 임신을 해서 유지가 안되더라도 수치가 나오면 착상을 하긴 했다는 거니까.
수정이 이루어졌으니 보이는 답은 착상의 문제였다. 지금까지 내가 두 줄을 못 본 것도 결국 착상이 안돼서 그런 거고 수치 자체도 0을 넘어선 적이 없으니 아예 몸에서 착상을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험관을 하면서 되려 나의 문제라는 걸 콕 집어 알게 되어버리니 무어라 핑계 댈 거리도 없었다.
"어떻게 정확하게 다 알아?"
"내가 그랬잖아, 몸이 주는 느낌이 그렇다고."
"그래도 괜찮아. 가면서 울지마. 운전할 때 위험해."
"응, 안 울어."
우린 착잡한 마음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다독거렸다. 출근으로 인해 따로 왔기에 혼자 집으로 가는 나에게 남편은 걱정이 담긴 시선을 보내왔다. 알고 갔으니까 괜찮다고 밝게 손까지 흔들며 인사를 했지만 각자 출발하고 전화를 건 남편의 목소리를 들으니 얌전했던 눈물이 비집고 흘러나왔다.
어떠한 걸로도 포장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겉으로 말은 그래도 속은 조금이나마 기대도 희망도, 임신을 하고 나서의 상상도 있었을 테니까. 시험관이라고 한 번에 다 성공할 수는 없겠지만 인공수정을 거쳐 가다 보니 확률이 높은 시술에 좀 더 자신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편과 나는 검사상 문제가 될 건 없었으니까.
눈물은 그나마 쉽게 그쳐졌다. 울면서 운전을 하면 위험할 거라는 남편의 말도 있었지만 내가 우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 남편의 마음이 더 안 좋게 바뀔 거 같아서.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집으로 도착한 나는 씩씩한 척 밥 먹을 준비를 했다. 알았으면서 뭘 그러냐고, 너무 우울해하지 말자고 혼자 합리화를 시키면서.
"응, 언니. 이번에도 아니래, 실패야."
남편 다음으로 소식을 기다렸던 언니에게 통화를 건 나는 제법 굵은 목소릴 내었다. 눈물도 그쳤으니 괜찮은 줄 알았다, 속에 있는 내 감정을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평소처럼 임신에 대한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다 하려던 말을 멈춘 나는 덜컥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왈칵 터진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와서.
"나 너무 속상해. 속상해 죽겠어."
떠오르는 모든 말이 사라지면서 나는 연신 속상하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먹는 것부터 작은 행동하나까지 노력했고 신경을 많이 썼기에 왜 나는 안되는지, 문제도 없다는데 대체 무슨 이유로 착상이 안 되는 건지 그저 속이 상했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누가 말이라도 해주면 따르기라도 했을 텐데.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막상 벽을 마주하면 모든 게 내 탓이라는 현실이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착상이 안된다는 건 어찌 되었든 내 몸이 원인이니까. 나에게 어떤 수치가 부족하다거나 혈액 순환이 잘 안 된다거나 체력이든 자궁이든 지금은 임신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아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은 무턱대고 잘만 임신이 되던데 정작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사람한테는 왜 고통의 시련을 주는 건지. 남편과 나는 실패 이후에 대해 신중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표현은 딱히 하지 않았지만 남편도 나름대로 힘이 들었고 옆에서 나를 바라보는 과정도 여간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로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계속 유지되면서 시험관은 몸과 마음에 많은 타격을 준다는 것을 절실히 알게 되었다. 동결배아라 난자채취 때보다 과정이 수월하긴 했어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아무래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 시도를 한다면 감내해야 될 것이 많았다. 돈과 시간, 몸과 정신은 당사자의 부담이니까.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어?"
"고민이야, 바로 하는 게 나을지 아닐지."
"착상 자체가 안된다면 한약으로 몸을 정돈한 다음에 하는 건 어떨까."
"그것도 좋을 거 같아. 내 몸이 준비가 안 되었다면 아무리 좋다한들 또 실패할 테니까."
우리의 숙제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지, 다음에 이어질 단계를 정하는 것이었다. 시험관이나 한약을 먹어도 임신을 한다는 보장은 없기에 어떤 선택을 하는 게 나은지 고르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연속으로 겪으면 정신적으로 받을 감정 소모가 심할 거 같고 한약을 먹자니 몇 달이란 시간이 필요하니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생리를 시작하기 전까지 남은 시간 동안 우린 고민을 해보기로 했다. 뭘 정하든 답은 모르니까. 한편으로는 일상으로 돌아가 일을 하면서 차차 다음을 기약해 볼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연달아 달려왔으니 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연차가 있다면 일하다가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올해의 목표는 임신이었다.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줄어드는 시간을 자꾸 확인하게 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돌아보는 시야도 받아들여야 했다. 인생에 아기가 없는 팔자라도 우린 잘 살 거라고 믿으니까. 어쩌면 나중은 몰라도 지금은 자유로운 생활이 우리에겐 더 맞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목표에 도달하는 기간까지 남아있는 날짜를 확인하며 나에게 정해진 것은 없었다. 단지 올해 안에 난임을 탈출할 수 있을지 의문만 남을 뿐이고. 시간이 약이라고 우울한 건 금방 지나갈 것이다. 다음으로 뭘 결정하든 내 의견이 우선적으로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남을 탓하지도 깊은 자책감에 빠지지도 않을 테니까.
조바심이 가득했던 시험관 1차 종결로 인해 나는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로 했다.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