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녜 부인도 결국 남들보다 더 한탄할 필요는 없었죠. 삶의 대부분을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보냈으니까요."
"너는 그게 남녀 간 사랑이 아니라는 걸 잊은 모양이구나. 상대가 딸이라는 걸."
"우리 삶에서 중요한 건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랑한다는 그 자체입니다 … 우리가 사랑 주위에 그리는 지나치게 좁은 경계선은 단지 삶에 대한 우리의 커다란 무지에서 오는 거랍니다."
요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열심히 읽고 있다.
쉬는 동안 기념비적인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회사 다닐 땐 엄두 안 났던 잃시찾 완독을 목표로 삼아보았다. 올해 안에 끝까지 다 읽진 못하더라도 더 이상 발 뺄 수는 없을 정도로 진득히 읽어놓기는 할 작정이다.
혹자가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나 읽어봄직한 책'이라고 했다는데 그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돈다. 참 재치있다 싶기도 하고 공감도 되고...
그래서인지 이 책을 붙들고 있을때마다 왠지 내가 감옥(또는 감옥에 버금가는 격리된 어떤 곳..)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복잡한 사회나 수많은 이익집단들로부터 철저히 거리를 둔 채 나만의 소중한 옥살이를 해내는 느낌이랄까..?
현재까지 민음사 기준 총 13권의 지난한 여정길에서 약 4.5권까지 도착했다. 이정도 되면 이제 나 살아생전에 완독을 하기는 해야한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건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랑한다는 그 자체입니다 … 우리가 사랑 주위에 그리는 지나치게 좁은 경계선은 단지 삶에 대한 우리의 커다란 무지에서 오는 거랍니다."
평소 내가 하던 생각과 너무 닮은 구절이라, 프루스트의 의식의 흐름 사이에서 어벙벙하게 휩쓸려가던 나는 간만에 반갑고 익숙한 얼굴을 만난 듯 하여 절로 반가움의 미소가 지어졌다.
대상, 그러니까 누구를 사랑하는지는 조금도 중요치 않다. 지금껏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사랑할 대상은 기껏해야 조금 더 뾰족한 우연이었으며 무의식적인 선택일 뿐, 대상엔 어떤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집 유리창과 사랑에 빠지는 것과 10년지기 동창과 사랑에 빠지는 것 사이에 가치의 차이는 없다. 왜냐? 사실 그 누구도 대상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신만을 사는 존재이며 타인의 심연에 가닿을 수는 없으므로. 애당초 인간은 대상의 '진짜' 모습에는 일말의 관심조차 없다. '역할'에 관심이 있을 뿐.
그러므로 사랑은 수단이다.. 목적은 글쎄, 이 짧은 생에서 조금이라도 더 큰 쾌락을 얻고자 하는 본능을 충족시키는 것? 육체의 감옥에 갇힌 채 긍정적 몰입과 지속가능한 쾌감을 찾는 나라는 동물에게 생명유지를 위해 꾸준히 던져줘야만 하는 고깃덩어리 같은 것. 그게 사랑 아닐까? 표현하고보니 썩 아름답게 들리지는 않는다만 생각해보면 참으로 멋진 상황이다. 감옥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갈구하는 단 하나가, '사랑'인 짐승이라니! 미움도 분노도 공포도 아닌 사랑... 사랑 하나면 아무리 좁은 육체의 감옥에 갇혀서라도 우주 전체를 누리며 배시시 웃는 것이 인간이라는 동물이다.
던져진 사랑을 삼킨다. 대상은 결국 먹어치워지고 우리는 부른 배를 두드린다. 대상은 그렇게 우리의 일부가 된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 누군가를 욕망하고 삼켜낸다. 결국 온전히 남는 건 나 하나 뿐이다. 대상은 내 안에 스며들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는 홀로 남겨진 나로서 무엇이 되어야 할까?
나는 늘 사랑은 '대상'의 문제가 아닌 '방법'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내가 떠올렸던 좋은 방법이라 함은 사랑을 도구로, 수단으로 하여 나 자신과 더 나아가서 내가 속해 있는 집단에 한차원 넓고 높은 시야를 부여하는 것. 하나의 대상에 대한 사랑에 머무르지 않고 비로소 확장되는 것. 용기없는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 매사에 심사숙고하는 것. 배척하지 않는 것, 포용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물론 (소위말해)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사랑이 판치는 것도 너무 좋지만 논란 투성이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전위적인 사랑의 모습들도 곳곳에 등장하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사랑에는 공식이 없다'는 사실이 조금 더 우리에게 당연하게끔 다가오지 않을까.
비오다 그친 밤 그냥 구구절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