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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삼촌 Jan 07. 2024

택배기사도 좋은 직업이 될 수 있을까요?

직업의 경계에서.

2023년 마지막 은 잎새 같던 그날도 눈이 내렸다. 우리는 깨비 속에서 택배를 하며 한 해를 마무리해야 했다. 택배 한 지 4년 만에 가장 높은 매출을 달성했다. 흔히들 택배 천만 원은 쉽게 번다고 여기 실제  금액을 받고 보니 신기다. 금까지 받아온 월급 중에 가장 많 받은 것 같다. 한 해 동안 가족이 함께 고생한 결과라고 생각하니 뿌듯하고 감사다.

택배를 마치고 서로를 격려하며 식사를 했다. 지만 빨갛게 불타는 숯불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가족이 돌아가며 아프고 힘겨워했던 과정들 떠르면서 사람은 살기 위해 먹는 걸까, 먹기 위해 사는 걸까라는 생각 저절다.

택배를 하며 겪었던 고충들. https://brunch.co.kr/@243999d2320047f/109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분야로 30년 가까이 먹고살았다. 50대에 전업을 결심했을 때 과연 이 직업의 울타리를 벗어나 생존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낯선 직업의 경계에서 노심초사하 나는 한 마리의 무기력한 햇병아리에 불과했다. 


과연 먹고살 수 있을까.

현재의 가족들 생계와 우리 노후를 준비할 여건을 마련할 수 있을까.


직업의 귀천여부를 떠나 오로지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움켜쥔 직업 속에서 자존 명예 사치스러운 겉치레일 뿐이다.  사장님, 대표님, 상무님, 선생님 등등 존칭을 들으며 돈 벌던 시절을 뒤로하고 4년간 눈, 비와 바람, 더위와 추위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 노지에서 일하며 남들에게 아저씨, 형님, 택배요 등의 호칭으로 불리며 일했다.


오직 생존뿐이었다. 그저 닥치고 생존하기 위해 일할 뿐이다.


하지만 난 4년간  빚도 갚고 새 아파트도 장만하고, 우리의 노후 막내아들의 생업에 대한 희망적인 결실 이뤄지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하면서도 가슴 한편에는 과연 옳은 선택을 한 걸까 싶어지는 회의 감 여전히 존재다. 왜일까.


사람 단순히 먹기 위해 사는 그런 존재 아니었다.

이유곰곰이 생각하던 과정에서 나는 내 속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직업에 대한 속물스런 선입견을 발견했다. 남들 눈에 보기 좋게 보이는 직업에 대한 욕망꿈틀거리 전히 뙤아리를 틀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돈의 역사>를 지은 저자 홍춘욱 박사의 인터뷰를 우연히 봤다. 그는 최근 대한민국 순자산 현황통계를 바탕으로 흥미롭게도 금수저, 은수저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언급했다.  따르면 금수저는 순자산기준 30억 이상, 은수저가 10억 이상, 동수저는 2억 이상이라고 다. 빚 없이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를 보유하면 최소 은수저인 셈이다. 40세 이상까지 부모를 지원해줘야 하는 처지라면 여지없이 흙수저 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은수저까지가 상위 10%,  동수저가 상위 20%를 차지한다. 나머지 80% 자연히  흙수저 인생이 된다는 의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 밖에 가난하다는 사실에 놀라고 부의 편중이 심화된 현실을 살고 있다는 사실 앞에 씁쓸해지지만 어쩌겠는가.  


이 대목에서 좋은 직업에 대한 기준도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위 10%인 금수저, 은수저들이 선호하는 직업선택의 기준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현실적으로 적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의 존경과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일하는 여건의 직업들은 이미 소수의 계층이 독차지할 가능성이 높고 그 주변에는 이런저런  폐쇄된 경계들이 우뚝 서 있다.


싫든좋든 은퇴가 다가오는 시기지만 편안히 노후를 맞이하기보다는 더 일해야 하는 처지라면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직업보다는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측면이 훨씬 더 좋은 직업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금수저, 은수저 인생처럼 살기 힘들다면 행복한 흙수저 인생이나 최소 동수저 인생을 따라잡는 인생전략이 현실적으로 더 좋은 선택다.


하지만 말이다.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는 건 참 비참한 일이다. 살기 위해 일할 때 무슨 일이든 일할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직업이라면 대통령도 좋은 직업이 될 수 없다. 살아가기 위해 선택 직업 떤 직업도 좋은 직업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다른 이의 시선과는 상관 다. 나의 삶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낼 수 있는 직업이라면 나에겐 은 직업이 되는 셈이다. 나의 성향에 맞기까지 하다면 금상첨화다.


내 인생을 송두리 채 소모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제공해 주는 일이라면 험하고 힘든 일도 좋은 직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택배라는 직업을 통해  책 읽고, 글 쓰고, 음악 하고, 가족과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챙기는 시간적 여유를 누린다. 여전히 택배는 험하고 힘든 일이지만 나에게 좋은 직업이 된다 생각 나름의 이유이다.


다큐프로에서 강원도 외딴 곰배골에서 30년을 산 50대 여성 자연인 사연을 시청했다. 30년 전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쌍둥이 세 자녀를 데리고 살기 위해 찾아간 그곳에서, 산나물을 재배하는 농부가 되었다. 평생을 가정주부로 살던 자신에게 농부라는 직업적 타이틀이 주어졌을 때 남다르게 자부심 생겨났다는 그녀의 고백을 들으면서 직업이 주는 정체성 금전적 의미만큼 크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택배는 직업을 통해서 얻은 몇 가지 교훈있다.


첫 번째로 작고 사소한 것의 소중함이다.

는 천 원 단위, 택배기사가 받는 수수료는 백 원 단위다. 푼돈들이 꾸준히 모이고 모여 월말에 수백만 원이, 천만 원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하면서 적고 사소한 것에 대한 가치를 새삼 깨달았다. 돈뿐 아니라 삶 속에서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께 말이다. 자연히 행복감이 늘어난다.


그다음은 <STEP BY STEP, ONE BY ONE.>이다.

작은 푼돈이 모이고 모여 큰돈이 되는 것처럼, 그 과정에서 하나하나씩 모으는 속도의 진부함이 지닌 의미를 새롭게 깨달았다. 늘 속전속결, 큰 것 한방을 선호하던 습관들이 무너져 내렸다. 탑차 안에 수많은 짐들을 쌓을 때면 조급한 마음이 들곤 했다. 서둘러 쌓은 짐들은 쉽게 무너져버려 멘털도 함께 무너지고 오히려 배송시간을 더 어나게 만들었다. 차분하게 한 짐씩, 있어야 할 위치를 찾아 놓고 차곡차곡 쌓다 보면 어느새 탑차 안에 짐들이 단단하고 빼곡하게 가득 들어차곤 했다.

 

택배는 서두르면 늘 사고가 난다. 오배송이나 차량사고 든 꼭 문제가 생긴다. 늘 한 번에 하나씩, 꼭꼭 다지듯 한과정을 거치고 다음 단계로 가야 한다. 걱정보다는 먼저 하나씩 시도하고 움직이는 것이 유용하다. 택배 하는 동안에는 수없이 많은 변수들이 돌발적으로 발생한다. 힘겹지만 한 번에 한 가지씩 차분히 대응하며 배송하다 보면 언제나처럼 탑차 안은 텅 비어지곤 했다.


언제나 텅 비어진 탑차를 보면서 택배기사는 몹시 행복해진다. 채우려 애쓰며 살았던 과거와는 달리 말이다.  

  

끝으로 <ALL FOR ONE, ONE FOR ALL>이다.

택배를 하는 우리 가족은 삼총사가 되어버렸다. 가족이 함께 일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셋이 하나가 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따로 놀아서는 죽도 밥도 안된다. 크고 작은 갈등의 과정은 피할 수 없다.


그동안 의식하지 못한 서로의 모난 성격이나 습관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는 사실과, 하나보다는 셋이 함께 할 때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동시에 깨달았다. 함께하면서 발견한 좋은 점과 나쁜 점에 대한 결론은 택배를 가족이 함께 하는 것이 유익하는다는 생각으로 집중하면서 단점을 고쳐나가는 방향으로 서서히 하나가 되어갔다. 진정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각자를 소중하게 존중하는 법을 서로 힘겹게 배워야만 했다. 특히 가부장적인 가족문화에 물들었던 나에게는 크나큰 도전이고 시련과도 같은 수련의 과정이 요구되었다.


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는 무수히 나를 내려놓는 과정이 필요했고 가족들이 서로 포용하는 희생이 요구되었다. 이렇게 힘들지만 함께 하려는 가장 큰 이유가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단순한 삶이 필요했다. 관계에 있어서도 가면을 쓴 채 대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택배기사의 삶은 지극히 단순한 삶이다. 비대면배송이 활성화되면서 서로 대면할 일 없이 거의 홀로 일하는 직업이기에 좋았다. 옷도 브랜드가 있거나 격식 있게 챙겨 입으려 애쓰지 않아도 좋았다. 


모든 관계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을 추구하지만 사람은 죽음 같은 외로움은 곁에 있는 사람의 체온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세상을 살기 힘든 이유는 돈이나 명예가 없어서 힘들기보다는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어서이다. 가족은 유일한 휴식처와 같은 관계가 되어줬다. 화상을 입은 피부처럼 작고 민감한 충격에도 소스라치며 격하게 반응하는 상처 난 가슴과 영혼을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가 가족이었다. 수많은 대화와 포옹 속에 가족이라는 가치를 끈끈한 인연의 끈을 단단하게 만들어 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족이 함께 함으로써 택배는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살아가기 위해 하는 일이라는 가치선명하게 부각시켜 주었때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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