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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삼촌 Dec 17. 2023

생각의 소용돌이

생각의 경계에서(1)

이번 주는 비와 눈바람, 강추위 속에 택배를 하느라 녹초가 되었다. 오늘은 바람이 유난히 거칠다.  탑칸에 올라가 짐을 정리하는데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새하얗게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헤치며 짐을 실은 대차를 끌고 가는데 꿈결을 걷는 느낌이다.


불현듯 오래전 군대에서 이등병 때 주말사역병으로 뽑혀 석탄창고를 정리하러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석탄창고 한켠으로 몰린 석탄더미를 삽으로 퍼 나르는데 열린 창고 문틈으로 스며든 여러 갈래 빛줄기를 따라 석탄가루가 반짝이며 흩날리는 모습은 난생처음 경험하는 광경이었다. 탄광에서 일하는 느낌은 이럴 거라고 생각했었다.


오늘 나는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택배를 하는 동안 나의 내면도 이런저런 생각들로 거칠게 요동치며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어떤 노력도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그 상황을 견디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없다. 설사 어쩔 수 없는 희생을 감수할 만큼 마음이 강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노력하면 벗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버텨내게 만든다.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폰 테크>       

삶이 주는 시련 같은 상황들은 늘 제멋대로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연약해진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이 생겨나곤 한다. 하지만 눈자락을 흩날리며 배송하느라 오가는 가족을 바라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요즘은 아들이 탑차 문짝에 아파트 동별 배송개수 체크표를 만들어 붙여놓았다. 빼먹고 배송 못한 상품이 줄어드니 확실하게 배송시간도 빠르다. 배송하랴 수량체크하랴 열정적인 아들을 보노라면 힘든 상황에 대한 자신감이 되살아난다. 


최근에 아들이 화물운송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적성검사를 통과했다. 아들이 운전만 익숙해지면 우리 가족택배에도 새로운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서로 교대로 일하거나 물량분담도 용이해서 이모저모 택배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무엇보다 아들 스스로 음악을 하며 홀로서기를 할 경제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한결 더 든든해진다.   

택배를 마치고 들어선 집안은 너무나 감사하고 포근하다. 집안에서 편안히 내다본 창밖은 새하얀 설국을 담은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창 곁에서 감상하던 아내가 가벼운 탄성을 질렸다. 어린 고라니 한 마리가 눈길을 서성이고 있었다. 아마 먹을 걸 찾아 여기까지 내려온 게 아닐까 하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집의 경계 안과 밖에서 우리의 생각은 달라졌다. 창 밖에서는 눈길을 헤매는 고라니와 같은 처지로, 창 안에서는 고라니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생각하는 관점으로 바뀐다. 어찌 보면 삶의 경계 안과 밖에서 일관성을 상실한 채 작동하는 생각의 행태 때문에 우리는 오늘의 힘겨운 상황들을 이리저리 헤치고 나올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생각들은 삶의 다양한 경계들을 변곡점 삼아 이리저리 변화하고 있었다. (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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