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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삼촌 Dec 03. 2023

허리케인이 몰아쳐도 회복하는 힘.

역할의 경계에서.

센터가 어수선하다. 새로 지사장이 바뀌었나 보다. 안전수칙이 강화되고 금지사항들이 연일 전달된다. 느 조직이든 존재하는 새로운 존재감을 알리는 한차례 소동은 택배회사도 예외 아니었다. 심드렁하니 레일 위 쏟아지는 무거운 상품을 받는 택배기사들 표정이 불편하다. 무거운 짐들이 많아 보조책상을 요긴하게 쓰는데 모두 다 치우라고 한다. 짐을 받아 주소가 잘 보이게 매직으로 다시 쓰는데 책상이 없으면 참 불편하다. 추워서 피우는 난로 등 전열기도 무조건 센터 내 보관금지라고 한다. 이 모든 게 안전을 위해서라고 한다.


택배기사는 사방이 뻥 뚫린 센터공간에서 네다섯 시간을 추위나 비바람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 무거운 짐들과 씨름하며 작업한다. 사비로 난로나 전열기를 가져와 꽁꽁 언 발과 손을 녹여가며 짐을 받고 옮긴다. 그리고 택배 하며 벌어지는 모든 사건사고는 거의 90% 이상 택배기사가 알아서 대처하고 책임져야 하는 고충을 겪는다. 이런 상황의 택배기사들에게 필요한 건 '통제'가 아니라 고충에 대한 '공감'이 아닐까 싶은데 관리자는 그러기 힘든가 보다. 내뱉는 지시 한마디에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따라줘야 직성이 풀린다.

  

사업을 하며 사장의 자리에도 있어봤고 조직의 부서장 자리에도 있어봤다. 관리하는 입장에선 늘 불안하다. 그래서 직원(아랫사람)을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보고를 그대로 믿지 말고 눈으로 직접 확인하라. 등등 나름의 불문율이 있다. 사장이나 관리자 고충도 상당하다. 나름의 카리스마나 리더십이 없으면 직원들이 쉽게 따라주지도 않는다. 이런저런 고충에 사업을 해도 직원이 없는 '1인기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렇게 관리자는 외롭고 고독한 공간에 스스로를 가둬 버리기 쉽다.


이 세상의 조직 내 분위기는 거의 유사하다. 관리자는 관리자대로 직원은 직원대로 딴 세상을 살아간다.




최근 택배기사들 사이에 한 '진상손님'이 화제다. 진상고객을 종종 경험하기는 하지만 이런 사람을 만날까 걱정이 된다. 택배를 찾으러 오는 고객분들이 가끔 있다. 하지만 택배차 안에 수많은 상품이 쌓여 있어 쉽게 찾아주기 힘들다. 힘겹게 물건을 헤집고 찾아드리면 오히려 고객이 미안해할 정도였다. 그런데 여자분이 무섭지도 않은지 저렇게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다가 화가 난다. 얼마나 택배기사를 하챦게 여겼으면 저럴까 싶어 진다.     

택배차를 뒤집어 놓은 진상고객녀.

https://tv.kakao.com/v/442785662

그냥 자신의 상품 이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것이다. 진상고객들도 직업이 있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안하무인식으로 행동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이런저런 시비에 시달리며 일하는 요즘 택배기사들을 한층 더 심란하게 하는 일들이 있다. 택배업계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쿠팡발 '단가하락'이라는 소식이다. 쿠팡에서 일하는 택배기사들이 많이 허탈해한다. 택배기사가 받는 단가는 택배가 생긴 이래로 꾸준하게 하락 중이다. 문제는 일할 사람은 많으니 나갈 사람은 나가라는 현장 분위기다. 이래저래 택배기사들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최근 택배차 아파트지상 출입거부로 화제가 되었던 수원의 아파트단지와 택배회사 간에 법정 소송 전에 돌입했다는 기사를 봤다. 입주민의 입장과 택배회사 간의 갈등을 보면서 안타까운 점은 충분히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평행선을 유지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힘들면 남도 힘들다. 내가 하기 싫으면 남도 하기 싫다.'는 생각조차 하기 싫어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우리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역할을 바꿔 힘든 점을 살펴본다면 초등학생도 진단해 낼 방안들을 왜 도출하지 못하고 법정으로 까지 가는 걸까. "빗장 쳐진 이 공간에서는 무조건 너희는 우리에게 맞춰야 해."라는 빗장공동체의 오만한 자만 앞에 어떤 해결책도 무용지물일 뿐이다.


진상고객에 울고, 단가하락에 힘들어하는 택배기사의 처우에는 전혀 관심도 없으면서 택배서비스의 편리함만 누리려는 지독한 사용자의 이기심 앞에 이래저래 택배기사는 힘겹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는 11월 한 달 동안 무거운 택배와 힘겨운 사투를 벌였다. 절인 배추, 쌀, 과일박스 등등 무거운 상품의 비중이 대폭 늘었다. 월말에 산정해 보니 상품을 약 9,000개를 배송했다. 가벼운 짐들을 나르는 타 택배회사의 일만 개를 배송하는 것과 거의 맞먹는 수준의 배송량이다. 당연히 탈이 나는 게 정상이었다. 나는 감기몸살로, 아내는 허리통증으로, 아들은 무릎이 시큰거린다고 했다. 왜 이렇게 다들 힘들어할까 했는데 월말에 수량을 체크해 보고 놀라고 말았다. 지금까지 택배를 한 이래로 가장 많은 물량을 소화한 셈이다.

 

가족이 함께 했으니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택배를 하면서 언젠가부터 가족사이에 역할이 사라져 버린 것 같다. 가장인 나는 늘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가족은 나름 그런 가장의 통제하에 눈에 보이지 않는 위계로 치장된 경계가 존재했다. 하지만 택배를 하면서 수직적 관계가 수평적 관계로 변하면서 급격하게 그런 경계들이 무너져버렸다고 해야 할까. 일하면서 아내와 아들에게 비난도 듣고 잔소리도 많이 들었다. 일이 급할 땐 아버지가 먼저, 아들이 나중에 그런 게 없다. 알아서 상황에 맞춰 신속히 먼저 움직이고 나머지는 보조해 줘야 했다. 역할이란 닥친 상황에 잘 대처하기 위해 한 몸으로 움직이도록 서로 돕는 것이었다.

    

루는 아내가 허리통증이 너무 심해 하루를 쉬었다. 아들과 둘이서 처음으로 까대기부터 배송까지 물량이 가장 많은 화요일을 함께 보냈다. 셋이 하다가 둘이 배송하는데 너무 힘들었다. 셋이 함께 하는 '수월함'의 가치를 새삼 깨달았다. 아들은 새벽에 까대기를 해보면서 엄마아빠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겠다며 새삼 우리 노고를 알아준다. 나는 이렇게 챙겨주는 가족이 없다면 택배를 할 수 있었을까 싶다. 하지만 아내와 아들은 내가 제일 불쌍하다고 한다. 가장이라 쉴 수도 없고 제일 힘들다면서 아들은 자신은 가장을 할 자신이 없다고 한다. 아내도 아들도 요즘의 내가 가장 친근하고 더 좋다고 한다.


양복이 아닌 먼지투성인 택배조끼를 걸친 내 모습이 간혹 아파트 엘리베이터의 거울을 통해 비춰보이면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또 다른 누군가를 보는 듯 낯설었다. 가족 간의 거리감은 외모나 번듯한 지위보다 경계를 허무는 '다가섬'에 있었다. 나 스스로도 가족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말, 손길에 소중함과 애정이  무의식적으로 스며 있음을 느끼곤 한다. 이런 것을 교감하며 정이 깊어지고 그렇게 서로 더 가까이 다가선다. 가족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욱 강하게 연대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것이 월별 높은 배송 실적으로 연결되어 나타났다.

  

역할이란 통제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하나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 필요한 것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의 미시시피 주 걸프포트에 위치한 112년 전통의 <핸콕 뱅크> 본사를 덮쳤다. 사흘 만에 컴퓨터에 저장된 데이터를 복구하고 업무를 재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핸콕 뱅크의 103개 지점 중 90개 지점이 사라지거나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전 지역은 전기공급이 중단되었고 상당수의 고객들은 신분증과 수표장을 분실했다. 신용카드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기에 재난의 상황에서 모두에게 현금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하지만 핸콕 뱅크를 비롯한 현지의 모든 은행 역시 파괴되어 현금을 구할 길이 없었다.


이런 재난 한가운데서 핸콕 뱅크 경영진은 만들어진지 한세기도 넘는 핸콕 뱅크 설립헌장을 다시 한번 보았다. 설립 헌장에는 오직 사람에게 봉사하고 지역사회를 돌봐야 한다는 내용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윤'이라는 단어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았다.


핸콕 직원들은 40개 지점 앞에 컴퓨터도 없이 늘어섰다. 임시로 설치한 책상이나 가판대 위에서 핸콕직원들은 종이에 성명과 주소, 사회보장번호를 기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2백 달러의 현금을 나눠줬다. 꼭 핸콕 고객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현금을 나눠줬다. 핸콕이 나눠준 현금의 대부분은 무너져 내린 카지노 잔해 밑에서 찾아낸 돈이었다. 직원들이 찾아낸 돈을  세척하고 다리미질해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핸콕은 포스트잇에 적은 차용증을 받고 무려 4천2백만 달러를 현지주민에게 나눠줬다. 이런 활동으로 몇 달 동안 마비상태에 빠질 뻔한 지역경제를 살리는데 도움이 되었다.  핸콕이 보여준 믿기 힘들 정도의 신뢰는 엄청난 이익이 되어 되돌아왔다. 이후 몇 달 동안 1만 3천 개에 달하는 신규계좌가 개설되었으며 재난 초기에 나눠준 대출금액의 99.5%를 3년 만에 회수하였다.


'이윤'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대명사와 같은 은행조차도 역할에서 이기심을 제거했을 때 재난 앞에서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줬다. 사람들은 일생을 살아가며 무수한 역할을 거쳐간다. 역할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바뀐다. 아무리 빗장을 치고 견고하게 성벽을 쳐도 인생의 순리를 거스릴 수는 없다.


가정이나 사회의 크고 작은 역할에서 이기심을 덜어내고 관계를 조정하려는 겸손한 시도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무수한 역할 간 장벽들 앞에서 무너져 내리려 할 때마다 다시금 회복할 수 있는 소중한 힘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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