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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삼촌 Aug 11. 2024

모든 고통이 덮이는 순간

폭염 속에 택배 하며 드는 이런저런 생각들

장마가 물러가자 젠 폭염이다.

땡볕에 아스팔트와 시멘트 도로바닥이 새하얗게 달구어졌다. 


배송을 하기 위해 서 내리는 순간 뜨거운 열기가 얼굴에 들이친다. 가벼운 심호흡을 하며 서포터의 뒷문을 열고 올라가 배송할 짐들을 정리하는 동안 온몸은 금세 땀범벅이다.


작년과 올해의 여름은 분명히 달랐다. 해마다 폭염강도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중이다. 얼음을 채워 준비한 물병들은 어느새 두 바닥을 드러내고, 렬하는 땡볕의 기세에 머리가 핑 돌았다. 서둘러 포도당 알약을 먹은  함께 일하는 아내와 아들도 챙겨 먹였다.

 

택배를 한가득 실은 손수레를 밀고 가는 동안 내리치는 열기로 인해 등짝이 따갑고 아프다.  흘리며 배송하던 아내를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할머니가 혀를 차말을 다.


에고 먹고사는 게 뭔지.

힘들어서 어떡해. 대단하네.


사람들이 외출하러 문밖을 나섰다가 화들짝 라며 다시 들어가 버린다. 그런 염을 헤치고 택배를 나르는 우리를  연민과 동정으로, 때론 하게 아래를 훑어내리는 사람들의 선들로 인 함이 잠시잠깐 스치듯 지나친다. 하지만 이내 탑차 한가득 쌓인 택배상자들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배송하다 보면 더 이상 신경 쓸  없다.


서늘하게 그늘진 세상 속에'폭염'이나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 더 힘겹게 것들이 고 있었.


먹고사는 길목마다 마주치는 각종'빌런'(악당)들이 사실은 '땡볕'보다 더 무섭고 힘겹다.  땅 속 깊숙이 지하공간 속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지하철'빌런'부터 에어컨이 빵빵하게 터져 나오는 사무실 공간 속 여기저기서 마주치는 직장'빌런', 갑질'빌런'들까지 그들은 참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맘 여리고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힌다.

  

그들은 늘 자신의 의도대로 상대를 손아귀에 쥐고 흔들려 시도한다. 상대방의 약점이나 열세를 활용해서 아주 교묘하고도 집요하게 공격해 댄다. 그런 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희열을 느끼는 사악한 그런 존재들이다.


지방의 한 일본계 외국인투자회사가 일방적으로 폐업을 했다. 십 년 이상 장기근속했던 여직원 두 명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동료들을 대표해서 폐업한 회사 지붕 위에 텐트를 치고 수개월째 목숨을 건 항의농성을 하고 있었다. 동료들이 올려주는 꽁꽁 얼린 생수병들로 찌는 무더위를 견디며 직원들의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경영진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실직은 죽음과도 같다. 급여가 들어오던 통장에 얽히고설킨 핏줄들이 까맣게 타들어가듯 말라비틀어지는 광경은 두려움을 넘어 공포 그 자체다. 돈줄이 막힌 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남에게 신세 지며 살고 싶지 않은 최소한의 자존심조차 무참하게 짓밟 짓이겨서 콩가루로 만든다. 그동안 꼬박꼬박 고용보험으로 뜯겼던 실업급여를 받으러 상담창구에 앉는 순간부터 일자리를 찾거나 은행문턱을 드나드는 과정들은 나같이 사람의 자존감을 한없이 허물어 뜨리고 끝없이 아래로 침몰 '날개 없는 추락' 자체로 만들어 버렸.


손목에 아령을 동여매고 바다에 던졌다.

고시원에서 혼자 생활하다가 지병이 생긴 60대 남성은 안타까운 죽음을 선택했다. 두 달 치 고시원 비용을 내고 책상에는 자신의 물건들을 치우게 해서 미안하다는 글과 함께 약간의 사례비를 넣은 봉투가 놓여있었다는 취재기사를 보면서 남에게 결코 신세 지며 살고 싶지 않은 그의 망이 느껴졌다.


가난한 삶은 서글프게도 것조차 실현 불가 만들었. 세상에는 가난하고 병든 인생을 쉬 해 줄 그늘진 곳은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차마 삶 속에 득실대는 이런저런 빌런들처럼 악의적으로 맘을 먹고 세상 한 귀퉁이라도 악착스레 발붙이고 살아내지도 못하는 맘 여리고 가난한 인생은 그저 손목에 아령을 동여매고 바다로 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참 서글프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이자 의사이기도 한 김승섭 교수는 "가난은 인간의 몸을 변화시킨다"라고 말한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혈중 '코르티솔 cortisol'을 높이고 그 결과 심장병, 고혈압, 당뇨 같은 만성병 발생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코르티솔을 분비하는 신체기관이 신장 위에 있는 삼각형 고깔같이 생긴 '부신 adrenal gland'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몸은 일상적으로 코르티솔을 더 자주 분비하면서 부신이 비정상적으로 커진다. 1930년대까지 그런 사실을 몰랐던 의학계는 해부학에 대부분 사용된 가난한 시신들의 몸속에 있던 부푼 부신의 크기가 정상이라고 착각을 했다. 몇몇 해부학자는 드물게 고소득 계층 사람의 몸을 해부하다가 '비정상적으로' 작은 부신을 발견하고는 부신 조직이 축소되는 질병이 있다고 보고하는 당황스러운 에피소드가 있었다.


근대의학의 눈부신 탄생은 해부학 없이는 불가능했다. 김승섭 교수는 인류역사에서 인체해부는 가난한 사람들의 몸을 발판 삼아 한 걸음씩 전진해 왔다고 알려준다.

      

가난은 죽음 이후에도 사람의 몸에 차별적인 흔적을 남기며 잔인하게 지속되고 있었다. 열에 아홉은 가난하게 살수 밖에 없는 불평등한 세상 속에는 가난한 이를 위한 그늘이란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땡볕나라하게 노출된 채 일해야 하는 택배현장에서 만나는 진상'빌런'들의 정체가 의외인 경우가 참 . 그들은 20대 가녀린 여성이나 갓난아이를 키우는 앳된 새댁의 겉모습을 하고 지만  빌런 특유의 폭력성만은 선명하게 드러냈다. 나보다 열세에 있다고 여겨진 상대에게는 자신이 잘못한 상황에서도 결코 인정이나 사과란 없다. 오직  협박하거나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굴복시키려는 폭력적인 시도뿐이다. 


택배현장에서 그들의 사악함에 굴복당해 봐야 기껏 택배상품값에 해당하는 경제적 손실과 상처 난 자존심 정도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라, 시원하고 그늘진 건물 속에서 처럼 '목숨'이나 '목숨 같은 전재산'을 걸 정도의 위협이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며 빨리 잊고 다시 애쓴다.


볕에 시달리지만 남에게 신세 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음이 감사하고 가족이 함께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음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남들이 어찌 바라보든 내 몸속 부신기능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리며 제 할 일에만 집중하며 살려 노력할 이다. 


 출입구 정면 거실벽에 '밀레의 만종' 그림액자를 걸어두었다. 그림 속 부부는 땀과 피곤에 젖어 이런저런 복잡한 심정으로 들어서는 우리에게 감사와 평온한 감정을 다시 일깨워 주곤 했다. 


택배노동을 하게 되면서 나는 평화롭고 감동적인 이 그림 속에서 담긴 또 다른 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녁노을이 지는 일터에서 만종소리에 맞춰 일손을 멈추고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은 한없이 경건하고 감동스럽다. 건하게 머리 숙인 부부의 주변의 풍경들이 하나씩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황량하고 거친 경작지, 부부 곁에 놓인 쇠스랑과 한가득 짐이 실린 채 뉘어 있는 나무수레, 그리고 발아래 놓인 투박한 감자 바구니를 보면서 힘겨운 노동의 일상이 고스란히 껴졌다.


얼마나 고단하고 힘겨운 일상이었을까. 내가 택배라는 노동을 하지 않았다면 이들 부부의 노동과 가난한 삶의 고단함을, 그 가운데서 피워내는 감사함의 의미를 어떻게 공감하며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더럽다, 조잡하다, 지저분하다, 냄새난다의 핀잔을 퍼부어도 가난한 농부들의 삶 속에는  정직하게 일하며 삶에 대한 진정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화가 '밀레'도, 그를 동경했던 '빈센트 반 고흐'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가난한 시골 농부들의 모습을 통해 고통이 느껴지는 그림을 그리려고 평생을 노력했다.


내가 마침내 깨달은 건 농부들의 거칠고 투박한 모습이 담긴 그림이 더 좋다는 거야... 내 눈에는 시골 아낙이 고상한 귀부인보다 훨씬 아름다워 보인다. 때가 묻고 기운자국에 시간, 바람, 태양이 더없이 섬세하게 장식된 파란 치마와 상의 차림의 그녀들 말이야. 그녀들이 귀부인의 드레스를 걸치는 순간, 진정성은 사라져. <영혼의 그림과 편지들/빈센트 반 고흐>

 

그늘 진 곳 하나 없는 황량한 농토 위에서 땀과 흙먼지로 얼룩진 부부의 남루한 옷깃 위로 황금빛 노을과 저 멀리 뽀쪽한 성당 첨탑 종소리가 은은하게 덮이는 모습은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땡볕으로 내리쬐고, '빌런'들로부터의 상처와 가난이 주는 모든 고통들이 덮이며 사라지는 순간을 밀레는 그려내고 싶었으리라. 거칠고 힘겨운 삶의 모든 것들을 덮어내는 평온하고 감사한 기운만이 하나 가득 넘칠 때,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경건하고 유명장면으로 승화되었다.


마지막 배송지인 아파트에서 아들이 음료수와 간식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왔다. 배송을 하러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아들은 무더운 복도에서 그것들을 전해주려 서계신 할머니를 발견했다.


아. 105동 302호 할머니네.


아내는 아는 할머니였나 보다. 가족이 함께 택배를 하는 걸 아시는지 세병의 차가운 음료수가 든 비닐봉지를 열어보며 아내는 엄마가 생각난다며 가슴 뭉클해했다. 감사했다. 바쁘게 배송하느라 사람들을 제대로 바라볼 틈도 없었는데 그래도 우리를 지켜보며 관심을 베푸는 여리고 선한 마음과 손길이 있음이 참 감사했다.


사악함과 부당함에 대한 뜨거운 분노와 울화가 가슴 가득 치밀어 오를 때면 가만히 감사의 만종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감사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 마음속에 서늘하고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내는 그런 힘을 지니고 있음을 이제는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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