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반대 집회군중 속 택배차, 그리고 센강의 낚시꾼.
택배를 오래 하다 보니 종종 드는 생각들이 있다. 세상에는 아직까지 선량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힘겨웠던 고객과의 갈등사건들을 찬찬히 되짚어보면 문제의 원인이 상당수 나의 실수나 성급한 판단에 기인했음을 뒤늦게 깨닫곤 했다. 상당수의 고객들은 선량한 이웃처럼 힘겨움과 시간에 눌려 터져 나온 택배기사의 크고 작은 실수들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받아줬다.
진상고객이나 악의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아주 드물게 출현했건만, 나는 왜 대다수 사람들의 친절보다 가끔 마주하는 진상고객들의 악의적인 행동이나 말투에서 더 크게 상처를 받거나 힘들어했을까. 사람들의 선한 말과 손길보다 악의적인 이들의 그것에 다섯 배는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고통스러웠을까.
오랜 시간 가족들과 함께 택배를 하면서, 뒤늦게서야 가슴속에 숨겨진 나의 심장이 사람들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빈약하고 작다는 사실을 아프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스러운 그녀를 내 가슴에 품으면 둘도 없는 나의 아내, 내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갓 태어난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이젠 나도 어엿한 가장이자 아버지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이들을 가까이하려 다가설수록 그들의 영혼이 가진 빛과 그림자를 선명하게 발견하게 되고, 그 순간부터 그것들을 온전히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정이 인생의 과제로 펼쳐진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살아있는 존재들은 잔해물을 남긴다. 펄떡이는 심장이 담아내지 못하는 것들은 고스란히 밖으로 삶의 잔재물로 흘려보낸다.
함께 한다는 것은 그들과 그들이 흘려보내는 그것들조차 모두 포함해서 담아낸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나의 현실은 사랑하는 가족들조차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내 심장의 한계는 비수처럼 날카로운 자책이 되어 늘 나를 아프게 했다.
<비극의 법칙>이 있다. 2000년 전 고대 그리스인 극작가들은 사람들이 비극을 담아낼 심장의 용량을 이미 알았다. 그들은 비극의 길이를 두, 세 시간으로 제한했다. 현명한 그들은 비극이 길어질수록, 한층 더 자극적일수록 사람들의 연민은 줄어든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행복만을 담아낼 작은 심장을 지녔다. 우리의 심장은 너무 작아서 일정량 이상의 불행을 결코 감당하지 못한다라는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들은 한줄기 위로로 다가왔다.
2차 세계대전, 경제대공황 등 1920년대의 어두운 시절을 살았던 그는 사람이 지닌 공감능력과 심장이 지닌 상관관계에 대해 통찰적인 글과 역사적 사건을 소개했다. 그는 프랑스혁명사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던 중 이상한 자료를 하나 발견한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후 파란만장했던 4년간의 시간이 흐른 뒤 온 국민의 염원대로 '루이 16세'는 드디어 콩코르드 광장과 단두대에서 처형이 되었다. 프랑스 국민 모두가 열광적인 함성을 드높이던 역사적인 그날 그곳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던 센강의 낚시터에는 수많은 낚시꾼들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오는 콩코르드 광장을 향해서는 그들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센강의 낚시꾼. 역사적인 순간에 이기적인 무관심을 보인 그들의 모습은 강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전쟁과 경제대공항등 암울했던 시절을 살아야 했던 작가 '츠바이크'의 시야에는 다르게 보였다.
2차 세계대전 중에 폭탄이 비처럼 쏟아지는 참호 곁의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의 모습이 찍힌 흑백사진을 집어든 작가 '츠바이크'는 암울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역사가 아니라 언제나 자신의 삶을 산다고 했다.
그는 "역사적 사건이 벌어지는 바로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사건을 경험하고 참여하기보다는 오히려 잊으려고 애쓴다"는 사실은 역사적 진실이며 이는 솔직한 고백이라고 담담히 표현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는 언뜻 부끄러운 고백처럼 들리지만 이는 부당한 비난이라며 강하게 항의한다.
공감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런 '역사적 시대'에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지기에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감당할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선한 의지가 없어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연민의 힘은 발휘될 때마다 점점 더 많이 소멸된다. 사람들은 이런 소수의 불운에 매번 함께 괴로워하며 상상하고 공감할 수도 없고 그러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슈테판 츠바이크/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세 번째 대통령 탄핵,
세월호 참사, 성수대교 붕괴, 이태원참사, 무안공항 항공기사고,
IMF, 코로나사태, 우크라이나 등 국제전쟁, 장기적인 내수경기침체 등등
'츠바이크'의 진단처럼 우리들도 지금 목숨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는 공감능력까지 죽이는 이 엄청난 고통의 시대를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주변의 재앙이 길어질수록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의 가슴속에는 더 이상 모든 일에 연민을 느낄 여력이 더는 남아 있지 않는 것이라는 그의 탄식이 가슴에 무겁게 와닿는다.
하지만 그는 희망적인 사실 하나를 들려준다.
자연은 인생에게 어떠한 중단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평범하지 않은 사건들이 사방에서 벌어져도 일상의 생활은 평범하게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센강의 낚시꾼처럼 이기적인 무관심처럼 보일지언정 인생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자연의 의지에 대한 순응하는 인생들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익명의 소시민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무력하고 무의미한 존재인지 깨달았을 테고
해석하기도 힘든 정치적인 사건에 무의미하게 몰두하기보다는
차라리 자기 일에 조용하고 사적이며 눈에 띄지 않는 일상생활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을 터이다.
이는 자연의 의지에 순종하는 것이다.
자연은 사람들 일부가 무참하게 파괴되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은 끈기 있게 인내하며 일상생활을 이어나가길 요구한다.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인 것이다.
힘없는 소시민은 직장생활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택배일에도 늘 침묵을 요구받는 상황은 변화가 없다.
시대는 '워라밸'과 '주 4일 근무시대'를 향하고 있지만 택배기사들은 거꾸로 '주 7일'을 배송해야 하는 기가 막힌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언제나 늘 그렇듯 침묵, 뚫을 수 없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삶의 지속성에 그저 몸을 내맡기려 할 뿐이다.
센강의 낚시꾼들.
그리고 계엄령 반대를 외치던 군중들을 헤치며 배송 중이던 택배차 사진이 떠오른다.
가수 정미조가 부르는 노랫말이 가슴에 슬며시 파고든다.
고단한 하루 끝에 떨구는 눈물
난 어디를 향해가는 걸까.
아플 만큼 아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가 봐.
이제는 너무 멀어진 꿈들.
이 오랜 슬픔이 그치기는 할까.
언젠가 한 번쯤, 따스한 햇살이 내릴까.
나는 내가 되고 별은 영원히 빛나고 잠들지 않는 꿈을 꾸려는
나에게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금 잔잔하게 다가온다.
바보 같은 나는 내가 될 수 없단 걸
눈을 뜨고야 그걸 알게 됐죠.
어떤 날 어떤 시간 어떤 곳에서
나의 작은 세상은 웃어줄까.
<어른 / 정미조 & 박성일>
그러고 보니 인생이란 턱없이 작은 자신의 심장을 가지고 주변의 사람들과 세상을 담아내려 성장통을 겪으며 끊임없이 인고하는 과정, 그 자체가 아닐까. 그래서일까 나의 자그마한 심장은 마치 내 몸의 일부가 아닌 듯 늘 나를 아프게 한다.
나의 이 작은 심장으로, 편히 누릴 작은 세상은 어디에 있을까. 어른이 되어 이 땅을 살아간다는 의미란 이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