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특수기에 쏟아지는 상품들을 한참 받아내다 탑차에 올라가 짐들을 쌓는데 새파란 보자기가 눈길을 끌었다. 험난한 여정에 시달렸는지 보자기 한쪽이 풀려있었다. 풀린 파란 보자기 끈을 가만히 잡아서 묶는데 마음이 포근해진다. 내용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보자기'를 통해 보내는 이의 보듬는 마음도 함께 느껴져서 그런가 보다.
요즘은 보자기가 흔하지 않듯감싸 안고 얼싸안는다는 의미 역시퇴색해 버렸다.가위, 바위, 보 게임에서 '가위'가 우세하게 난무하는 게임판같은 세상이다.무엇이든 필요한 부분만 재단하듯 오리고 도려내려는 날서린 가윗날만 서로를 향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활짝 펼쳐진 보자기는 오지랖만 넓고 실속 없음을 상징할 뿐이다. 사람들이 실속을 찾으려 숨 가쁘게 놀리는 가위질 속에보자기는난도질당한채 지나치는 사람들 발길 아래에 누더기가 되어 이리저리 짓밟힐 뿐이다.
점점 힘들어지는경제 탓도 있겠지만 요즘 사람들은 가족에게 조차도 서로를 향한 마음을닫는다. 그저 서로 척지지 않을 만큼의 조각진 마음만 주고받는다.
최근 레일 위로 쏟아져 내리는 개유모차, 사료와 간식 등 반려동물을 위한 각종 상품들을 보면서 사람들과 자식들을 향해야 할 마음들이 온통 말 못 하는 반려견과 반려묘에게 향하는 건 아닌지 우려도 된다.
관계에 있어 사람이사람에게 주는 의미가서로에게 힘겨움과 번거로움만 안겨주는 존재로 전락하면서 반려동물보다 못한 세상이 된 것같아마냥 서글퍼진다.
최근 세종시 대학촌의 계단 없는 원룸빌라들이한동안 소란했다. 택배기사들이 1층 로비에 택배를 그냥두고 간다며 MZ세대 대학생들이 취재 나온 기자에게집중적으로성토했다.
택배란 문 앞에 배송받는 서비스인데 정당히 택배비를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서비스를 못 받는 이런 괄대를 받아야 하냐며 젊은대학생들이불만들을쏟아냈다.
MZ들은 삶의 부조리에 상당히 민감하다. 특히 자신들이 당하는 부당함에는 분노를 표출하며 격렬하게 저항한다.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차별과 불평등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어느 세대보다 더 큰상처와 고통에 시달리며 자라난 세대여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하다.유난히 가위에 집착한다.
하지만 세상은 가위만이 아닌 바위, 보도 함께 작동하는 게임의 룰이 지배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실속 없이 오지랖 넓은 보자기가 때론 MZ들이 그토록 집착하는 영악한 가위질을 번번이 좌절시키는 바위돌 같은 수많은 장벽들을 덮어내는 위력을 지녔음을 말이다.
젊은 MZ들이 돈을 지불했으니 당연히 받아야 할 나의 권리만을 도려내고 내다 버린 삶의 나머지 조각에는 또 다른 소중한 인생들이 존재했고 사연들이 서려있다.
택배기사 입장에선 택배 한두 개도 아닌 수백 개를 매일 배송하다 보면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조차도 힘겨운데 계단만 있는 연립빌라의 배송은마냥 더 힘겹다. 특히 대학기숙사나 대학촌의 경우 택배기사들이 힘겨움에 배송을 꺼리는 구역 중의 하나이다. 몇몇 영악한 대학생들은 저렴한 택배비를 고려해서 이삿짐을 택배로 보내기도 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면 급증한 큰 몰짐들과 계단으로 배송해야 하는 것과 맞물려택배기사들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피하고 싶은 힘겨운 배송지가 된다.
이런 힘겨운 배송여건을 고려해서 특정장소를 택배보관소로 지정해 주는 배려를 택배기사 입장에서는 간절히희망하지만 택배비 운운하며 고객불만 접수 등 내세우는 날 선 가위질 앞에 힘겨운 택배기사들 역시 맞서서 1층 배송을 고집하며 바위나 날카로운 가위를 내미는 갈등적 상황이 안타깝게 반복적으로 연출되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으로 늘 무거운 짐들을 배송해야 하지만 하나도 힘겹지 않게 느껴지는 신기한 배송지가 몇 군데 있었다. 그곳에는 공통적으로 무거운 짐을 배송하고 뒤돌아서려는 순간 늘 감사함을 표시하며음료수나 커피를 챙겨주는 오지랖 넓은 상가 주인 분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의외라고 싶다가 점점 보듬어 주는 그 마음에감사함이 생겨났다.
오지랖 넓게 보듬는 보자기 같은 마음씨에계단에, 똥 짐을 날라야 하는 상황 속에 생겨난바위돌 같은 마음과 불만들을 너끈하게 덮어내고 녹여냈다.보듬는 보자기가 폭력적인 바위를 덮어내고 녹여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나는 무거운 짐들을 들고 계단을 오르지만 전혀힘겹지 않았던신기한 체험을 통해 깨달았다.
나에겐 MZ세대인 두 아들이 있다.부모의 입장에선 늘보자기 같은 입장을 취하지만 착한 아들들이지만 때론 성가셔하고 귀찮아하곤 했다. 자신에게 꼭 필요하고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부분에 대해서만 받아들이려 했다. 때론 몹시도 서운하지만 우리 부부는 인생의 원리를 알만큼 나이를 먹었기에 최대한 그런 반응들을 이해하고 수긍하려 애쓴다.
사람은 늘 시간과 여지가 필요한 존재다. 우리가 우리의 부모였던 나이가 되어보니 몰랐던 사실이 많았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처럼 우리의 아들들도 그런 과정들을 고스란히 답습하며 배우는 중임을이제는알기 때문이다.
다만 자그마한 바람이 있다면 우리 아들들이 당장 필요한 조각들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았으면, 그리고 세상은 '가위'나 '바위'만큼이나 이러저러한 모든 것을 수용하고 포용하는'보자기'도 존재하며 더 큰 위력을 지녔음을 조금이라도 빨리 이해하고 깨달아 줬으면 하는 마음간절하다.
불경기라고 하지만 작년 추석 때만큼 올해도 택배물량이 참 많다. 주로 과일상자, 소고기와 생선세트 등이 주를 이뤘고 의류나 케리어 등생활용품들도 다양하게 뒤섞여 나왔다. 그리고 기업체와 학교에서 주문하는 다량의 선물세트들도 많은 몰짐으로 쏟아졌다.
하나씩 상품들을 레일에서 받아 바닥에 내려놓으니 순식간에 뒤엉켜 작은 산을이뤘다. 짐들을 배송할 구역별로정리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바쁘게 몸을 놀리며 무질서하게 뒤섞인 상품더미 속에서 상품하나하나에 '질서'를 부여했다. 가지런히 정리된 상품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평온해진다.
삶은 늘 그렇듯 무질서한 상황에 홀연히 몸을 던져 부여쥔 것들 하나하나에 기꺼이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마다 질서는 생겨났다. 질서는 평온함을 불러왔다. 그렇게 또 하나의 소소한의미를 남긴 채삶은 오늘도스쳐 지나갔다.
나는가만히풀린 택배상자 보자기 끈을 고이 다시 칭여맸다.그리고 다시금 풀리고 느슨해진 내 마음속보자기도가만히 고쳐 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