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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삼촌 Dec 15. 2024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

계엄령이 선포된 그날밤(12.3)에 생긴 일

계엄령 반대집회 속 택배차량

단순한 삶이란 이런 걸까. 자고 나면 택배 하고, 일이 끝나면 쓰러지듯 잠자리에 들었다. 폭설의 여파와 김장철까지 겹쳐서 폭증한 택배물량을 처리하느라 11월부터 힘들었다. 설상가상 요즘은 오후 다섯 시만 으면 루 해가 일찍 저문다. 캄한 간에 배송을 하지 않으몸을 더 빨리 움직여 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택배 이외는 무것도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한가할 때면 머리와 가슴으로 늘 스며들던 이런저런 우울하고, 불안한 상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동이 주는 단순한 몰입이 안겨준 평온함과 고단함은 육체를 움직여서 일하는 기쁨이자 슬픔의 결실이 되었다.


'섭생'. 도덕경에서 자신의 생을 억누르면 생이 오히려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의미의 글귀이다. 대추나무에 열매를 더 많이 열리게 하기 위해서 염소를 매두거나 나무를 더 자주 두들겨준다고 한다. 대추나무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종족번식을 시키려 더 많은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여 동을 한다는 것은 단순한 몰입에 따른 심리적 안정을 지만 대가로 시련 같은 겨움통증이라는 삶의 회초리 앞에 내 삶을, 내 몸뚱이를 꺼이 내놓아야만 다. 대추나무의 일생과도 같다. 하지만, 대추나무와 달리 리는 고자 하는 매의 실체가 무엇인지 분명하다. 유감스럽게도 심장은 두근거리고, 손길은 앞으로 향하며, 새로운 목표들은 차례로 생겨나서 우리를 앞으로 이끌지만 종국에는 아킬레우스처럼 영원히 거북의 뒤를 따라가는 상황의 부조리함만을 느끼게  뿐이다.

 

무거운 짐들을 받아 들어 탑차에 가득 채운 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쯤이면 어스름했던 새벽녘 시간은 이미 중천을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했던 짐들을 모두 배송한 후 텅 빈 탑차 안에 안도와 만족감으로 대신 채우고 탑차문을 닫을 때면 잠시나마 행복해진다. 비록 내일 또 삶의 모진 회초리가 다가오 오늘 밤 잠자리에 고이 누인 우리의 팔다 위로 지긋하게  찾아오겠지만 우리는 서로를 향해 말갛 미소를 눌 뿐이다.


노동자이자 철학자인 '에릭 호퍼'는 부두에서 일하며 사색하며 쓴 일기에 자신이 일하는 부두에서 고향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고 적었다. 평생 어디를 가나 외부인, 이방인처럼 살아야 했으나 여기는 강한 소속감을 느꼈기 때문고 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른 새벽, 택배센터에 들어설 때면 기가 느껴졌다. 거친 굉음을 토해내며 상품들이 흘러가는 레일 곁에 가만히 서있을 때면 오히려 마음이 해지곤 했다. 때론 배송 중에 멀리 뒷문을 연 채 오롯하게 서있는 탑차를 바라보며 걸어가면서 감사함에 휩싸이는 이상한 경험을 하곤 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이렇게 강한 연대감으로 함께 일한다는 사실이 나로 더 이상 내  속에서 롭고 낯선 이방인으로 살지 않아도 다는 안도감 때문은 아닐까.


그동안 궁금했던 맨몸으로 택배를  의미, 삶을 몸으로 생생하게 려나간다는 의미가 호퍼가 말한 고향 같은 편안함, 이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은 아닐 싶어 진다.


그는 사람들은 꼭 필요한 생필품보다는 없어도 그만인 사치품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열심히 일한다고 했다. 독선적인 도덕주의자들은 욕하겠지만 활기찬 사회의 구성원이 보여주는 진실된 모습이고 했다. 회가 활기차게 돌아가는 이유는 사람들은 장난감에 마음을 쏟고 생필품보다는 사치품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는 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가감 없이 직다.


그는 왜 사람들이 장난감과 사치품에 마음을 더 쏟고 열심히 일한다고 했을까?

 

'시몬 드 보브아르'는 인간은 나무를 심고 집을 짓고 나라를 정복하고 사랑하지만, 언제나 드시 "그다음은?"이라는 질문을 본능적으로 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매 순간 항상 새로운 정열을 품고 새로운 기획 속에 몸을 기꺼이 던진다. 그러나 인생은 매 순간 멈출 것인가, 아니면 다시 출발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한계적 상황 앞에서 방향을 상실한 채 맴돌며 지치고 불행해할 뿐이다.


그녀는 이내 피로함에 빠진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불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불행을 피할 방법을 찾으며 살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저 자기 자신만을 향하며 살다.  

 

나는 존재한다.

불행은 거기 없다. 불행은 저 텅 빈 집, 저 죽은 얼굴, 저 길거리 속에 있다.

나는 편안하게 집으로 돌아가 저 활기 없는 거리를 멍하게 바라보며 말할 것이다.

"뭐가 어때서?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쟎아."

나는 무심하고 평온한 자신을 찾는다.


사랑하는 남편을  후 깊은 상실빠진 작가 '조앤 디디온'은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자신 말고는 다른 곳에는 집중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자연히 자기 연민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 경계를 영원히 넘을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또 충격을 받게 된다는 아픈 백을 .


그녀는 살아생전에 남편이 말한 재미있게 산다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나 늘 하는 일, 또는 타인의 기대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라 그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었음을, 그리고 그것은 생을 향한 사람이 가진 욕구를 의미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노라고 회고했다.


자신만의 장난감과 치품은 이런 인간이 처한 암울한 한계를 망각하기 위한 위안적 도구였음을 호퍼는 이미 간파한 걸까. 아니면 인간이란 존재는 늘 자기중심의 우주라는 한계를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서글픈 존재임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사람은 변함이 없다. 배상품에 주소를 오기하거나 잘 못쓰는 고객은 늘 한결같다. 사람들이 가진 정치적 이념도, 경험도, 신념도 어찌 보면 모두가 한결같이 자기 연민적이다. 자기 연민은 자기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고 아기처럼 손가락을 빠는 행동이고, '흑흑 불쌍한 내 신세'라는 생각에 빠지는 것이며 자기 연민을 느끼는 사람은 그 상태에 흠뻑 젖어 심지어 탐닉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두가 자기 연민적으로 살아가기에 그토록 자신만의 장난감과 사치품을 가지길 갈망하고 탐 빠지는 것은 아닐까?


밤낮 택배하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출근하기 위해 깨어난 우리는 밤사이 세상이 뒤집어진 사건이 일어났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밤사이에 계엄령이 선포된 것이다. 상실에 빠진 조앤 디디온의 말처럼 삶이란 저녁을 먹으러 자리에 앉는 순간, 내가 알던 일상적인 삶이 끝나버렸다.

 

국회의사당을 군용 헬기와 무장한 군인과 경찰들이 에워싸고, 죽음을 무릅쓰고 시민들이 결사적으로 항의하고 있었다. 급박하게 보도하는 뉴스 속에서 치열한 항의 군중 속을 힘겹게 헤쳐나가는 택배차량 한 대가 찍힌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급변하는 삶의 격랑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의미를 찾아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정권을 움켜쥐려는 정치인들,

명령을 이행하려는 군인과 경찰들,

대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시민들,

그리고 배송 마감시간을 지키려 군중사이를 힘겹게 헤쳐나가는 택배차량.

 

사람들은 일상에서, 반복되는 의식 속에서 의미를 찾듯 삶의 무수한 조각들을 각기 움켜쥔 채 눈앞에 펼쳐진 폐허의 시간을 버텨내려 하고 있었다.


마음이 시리고 아팠다.

중식이가 부르는 노래 <나는 반딧불>이 흘러나왔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깐.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깐. <중식이가 부른 [나는 반딧불(2022 Band Ver)] 가사 중에서>


반딧불들이 각자 우주에서 내려온 별인양 어두운 밤하늘을 불 밝히며 어지러이 날아다녔다.

스스로 벌레라는 사실을 알고 겸허히 빛을 내는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별인양 착각하며 불을 밝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무수한 반딧불이 각기 원하는 장난감을, 화려한 사치품을 찾아 부지런히 밤하늘 구석구석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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