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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도 봄은 옵니다.

by 코나페소아

새벽에 아내와 같이 센타로 가는 길에 이런저런 대화 중에 신혼시절 둘째를 임신했을 때 많이 힘들고 우울했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들어보니 임신 10개월째 접어들 무렵에 미혼인 나의 여동생과 잠시 함께 생활한 적이 있었다. 아내는 그때 여동생만 감싸고 자신의 힘든 상황에 대해서 무신경했던 내가 많이 원망스러웠다고 한다. 그때에 나는 여동생이 많이 안쓰러웠다. 아내가 뭐라고 하면 괜히 여동생을 탓하며 불평하는 것 같아 애써 무시하곤 했었는데 많이 상처받고 힘들었나 보다.


이십 년도 지난 지금 아내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임신과 시올케의 뒤치다꺼리를 함께 하느라 힘들었을 상황을 듣노라니 뒤늦은 미안함과 자책감이 든다. 그때 왜 아내가 많이 힘들겠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못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아내에겐 남편인 나밖에 없는데 그때의 나는 아내 넘어 바깥세상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큰아들이 엄마에게 들뜬 목소리로 연락해 왔다. IT개발자들에게 꿈같이 여기는 직장에서 스카우트제의가 들어왔다는 거였다. 연봉도 지금의 두 배라서 너무 흥분된다는 거였다. 하지만 담담히 대답하는 아내의 반응에 아들은 이내 불만을 토로했다.


"엄마는 내가 흥분되고 기쁜 순간 같이 기뻐해주면 안 돼? 늘 그렇게 걱정이고 담담하게 말을 하는 거야?"


아내는 차분히 기뻐하지만 아직 상황이 결정된 것이 아니니 신중했으면 좋겠다고 다독였다. 통화가 끝난 후 아내는 남편에게는 속에 담긴 서운함을 털어놓았다. 큰아들은 오랜만에 전화를 해도 늘 엄마아빠의 안부를 묻기보다는 자기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어떤 성과를 이루고 있는지만 잔뜩 늘어놓고는 통화를 끊어서 많이 서운하다는 것이다. 스스로 성과를 이루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대견하고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가족이라는 존재를 마치 응원단이나 자신을 위한 지원단체처럼 여기는 것 같은 모습들을 아내 곁에서 듣고 보게 되니 서운해하는 아내의 심정이 충분히 공감이 된다.


젊은 날의 나와 아들은 밖에서 아내를 바라봤다면 아내는 안에서 나와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파트단지 주변에 노부부가 하는 뻥튀기 차량이 있는데 아내가 종종 즐겨 사 온다. 우연히 사서 먹어보니 뻥튀기가 참 맛있었다. 그 후로 단골이 되었는데 오늘은 나와계셔서 아내가 사 왔는데 할머니가 반가이 맞으며 시적인 표현이 담긴 말을 거 네시 더란다.


"힘들어도 봄은 오고, 추워도 봄은 오네요."

봄을 반기는 노부부 사이가 여간 정겨워 보이지 않더란다.


그러고 보니 완연한 봄이다.

배송하는 아파트단지 내 화단에 샛노란 개나리가 피워났다. 아직 바람이 차고 쌀쌀하지만 봄은 여지없이 우리 곁을 찾아왔다. 힘들어도 봄은 오고 추워도 봄은 왔다. 그래서 늘 우리는 충동 같은 설렘을 가지고 봄을 맞이하나보다.

봄은 스프링(Spring)처럼 늘 충동을 자극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봄을 가장 좋아하는 나는 그래서 충동적인가 보다. 늘 실현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방식에 관심이 많고 리스크가 따르더라도 도전하려는 성향을 가진 다소 몽상가적이다. 반면에 아내는 결과가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에 관심을 가지고 특히 안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신중하고 계산적인 유형이다.


우리는 이런 상반적인 성향으로 부부가 되고 가족을 이루고 산다. 한쪽은 피해자이고 한쪽은 가해자로 평생을 고통과 자책으로 살라고 인생이 이렇게 잔인하게 엮어놓은 걸까?


나와 정반대의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중요한 이유는 미래세대에게 적응력이 높은 중도적 특징을 물려주기 위해서 일수도 있다. 그래서 인생은 충동적인 사람과 계산적인 사람을 적절하게 섞어놓았다고 한다.


<제2의 말콤글레드웰>이란 별명을 가진 '닉 테슬러'는 충동적이거나 신중한 사람은 굳이 자신의 타고난 성향을 버리려 애쓰지 말고 서로 균형을 이루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조언한다. 여기서 <균형>이란 상황에 맞는 성향을 적절하게 내세울 줄 아는 조화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택배를 가족이 함께 하면서 초기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로의 역할분담이 되면서 한 몸처럼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돌발적인 상황에서 신속한 판단과 실행은 내 몫으로, 꼼꼼함으로 상황을 체크하는 건 아내와 아들이 서로 보완하며 점점 더 효율적으로 한 팀으로 연결되어 가는 느낌이다.


균형을 잘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정하고 상대의 의견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악어와 악어새처럼 충동과 신중함이 균형을 이루고 서로 보완관계가 된다면 누구나 제역량을 발휘하며 인생을 풍요롭게 설계가능하다. <닉 테슬러>


우리 가족이 성숙하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기까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충동적이고 신중한 서로 다른 성향과 시각차이가 존재하지만 우리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한 단계 더 성숙한 부부이고 가족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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