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갈 때만 먼저 나가는 남편
평소엔 항상 늦장부리는 남편이 유독 시댁 갈 때만은 먼저 나간다. 나는 화장하고 옷 갈아입고 가방 챙기느라 바쁜데, 남편은 벌써 현관문을 나서고 있다.
"먼저 가!"
그러곤 혼자 주차장으로 사라진다. 20년 결혼생활에서 이런 패턴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시간이 다 되었는데 남편은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메가커피에서 주문하고 있을 테니 빨리 나와. 영화 시간 거의 다 됐어."
옷만 입고 나오면 되니 내가 먼저 나가 커피를 테이크 아웃할께 .
커피를 받아 들었는데도
밖에서 기다렸는데 남편이 보이지 않는다. 집에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시계를 보니 정말 영화 시간이 촉박하다.
"앞자리라도 잡아놔야지."
결국 혼자 문학관으로 걸어갔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마트를 같이 가도 우리는 따로 돌아다닌다.
남편은 육류 코너에서 고기만 보고, 나는 야채와 과일 코너를 어슬렁거린다. 각자 필요한 것만 담고, 계산대 앞에서 만난다.
"이거 사려고?" "응." "그래."
대화도 필요 최소한이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젊을 땐 손잡고 영화관도 가고, 마트에서도 붙어서 이거 살까 저거 살까 재잘거렸는데. 지금은 각자의 동선이 따로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섭섭하지도, 외롭지도 않다. 오히려 편하다.
서로의 페이스를 알고, 서로의 공간을 인정하게 됐달까. 굳이 모든 걸 함께 하지 않아도 결국엔 같은 곳에서 만나게 된다는 걸 안다.
이게 갱년기 부부의 현실이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온도. 하지만 이 미지근함이 나쁘지 않다.
더 이상 서로에게 열정적으로 매달리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깨달았다.
영화관에서 남편이 늦게 도착해 옆자리에 앉을 때, 마트 계산대에서 각자 담은 장바구니를 합칠 때, 우리는 여전히 '함께'다.
다만 그 방식이 20대, 30대와는 달라졌을 뿐이다.
그래도 가끔은 생각한다.
"여보, 같이 가자."
이 한 마디가 그리울 때가 있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 괜히 어색해질까 봐.
마트에서 각자 돌아다니다가도 남편이 좋아하는 과자 하나씩 담는다.
이게 지금 우리만의 애정 표현법이다.
따로 또 같이. 갱년기 부부의 새로운 동행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