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바뀌게 된, 인생을 바꾸게 한 계기
고백컨데 난 사실 누워있는 걸 제일 좋아한다. 움직이기 귀찮아하고, 땀이 나는 걸 싫어한다. 산행기를 쓰는 사람이 이런 얘기로 시작하면 안 믿기겠지만 진짜다. 원래는 등산을 시작할 생각은커녕 운동할 생각조차 없었다. 그러던 내 인생이 바뀌게 된 건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였다.
취직 후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면서 새벽에 나가고, 밤늦게 들어오는 생활이 시작됐다. 식사는 불규칙해지고, 자극적인 음식을 자주 먹으며 과식하니 점차 살이 찌기 시작했다. 조금 찌다가 말겠지 싶었지만 살이 빠지는 데 한계는 있을지언정 찌는 데 한계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20대 후반의 몸무게는 초반보다 무려 25kg 차이가 났다.
안 좋은 식습관은 건강에도 영향을 미쳤다. 건강검진 결과 지방간, 혈압 등 수치가 급격히 상승했고 그때 깨달았다. 지금처럼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운동하지 않으며 살면 단순히 일찍 죽고 끝나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골골거리는 상태로 병원비에 허덕이며 살겠구나. 식습관을 고치고 헬스장에서 운동하며 이를 악 물고 다이어트했다.
다이어트에 성공하니 운동이 재밌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살이 빠지고, 점차 실력이 늘어가는 게 보이니 성취감이 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헬스장 러닝머신 TV에서 ‘나 혼자 산다’를 봤다. 예능인 전현무가 겨울 한라산 등반에 도전하는 모습이었다. 눈 덮인 백록담의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산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한 것도, 등산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물론 등산을 본격적으로 하기보다는 ‘살아생전에 한 번쯤은 저 광경을 직접 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 정도였다. 당장 갈 생각을 못한 건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운동을 꾸준히 하게 되었지만 운동 능력치가 워낙 평균 미달이었기에 체력이 썩 좋지 못했다. 체력을 기르고 가야겠다며 운동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한라산 풍경은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친구와 연락하다가 등산 얘기가 나왔다. 등산을 꾸준히 했던 친구가 내게도 하라고 권유했는데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벌레가 싫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친구는 “추울 때 산에 가면 벌레가 없다”는 얘기와 함께 자신이 찍은 한겨울 백록담 사진을 보냈다. 사진을 보자 ‘나 혼자 산다’에서 봤던 광경이 떠올랐다. 내가 관심을 보이니 친구는 신나서 겨울 되면 제주도에 가자고 했고, 얼떨결에 알겠다고 답했다. 그렇게 겨울 한라산 등반 대비를 위해 등산을 시작했고, 한라산에 다녀온 후에도 꾸준히 이어서 하고 있다.
등산을 다녀온 후엔 그날 있었던 일을 쓰고, 찍은 사진을 정리했다. 하루를 기억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은 점점 길어졌고, 사진 용량도 늘어갔다. 주변에서는 혼자만 보기 아깝지 않냐며 어디에든 올려보라고 했지만 처음엔 귀담아듣지 않았다. 이 정도 하는 사람은 많으니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게 책으로 내는 게 어떠냐며 조언해 주신 분이 있다. 책을 꼭 출간하지 않더라도 노트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그럼 잊고 있던 일들도 생각나고, 왜 등산을 하게 되었는지 짚어보는 등 내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은 왠지 모르게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틈틈이 시간을 내서 정리하니 어느새 노트가 두꺼워졌다. 페이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다녀온 발자취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작가라는 이름의 새로운 길로 발을 내딛을 결심이 생겼다. 이 기록이 앞으로 내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겠다. 당장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 인생이니까. 하지만 분량은 지금에 그치지 않고, 아마도 내가 등산을 그만두기 전까지 계속 생겨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