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삼빠 May 09. 2023

유부초밥

오뚜기 3회 푸드 에세이 공모전 투고 기록


나의 어릴 적 소풍 도시락은 언제나 김밥이었다. 엄마는 새벽 일찍부터 김밥을 준비하셨다. 잠결에 눈을 비비며, 슬며시 옆으로 다가가 하나씩 날름날름 받아먹었다. 그렇게 소풍에서 준비해 온 친구들 도시락 대부분은 김밥이었다. 그런데 한 친구의 도시락에는 처음 보는 것이 담겨있었다. 우선 껍데기가 검은색이 아니었다. 마치 황금빛 같은 갈색이었다. 속에 담긴 것이 햄, 시금치, 단무지가 아닌 알록달록한 가루가 밥에 알알이 박혀 있었다. ‘꼴깍’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돌고 눈이 동그라졌다.  

“너 그게 뭐야?”

“이거, 유부초밥이야.”

“나 하나만.”

친구에게 하나 얻어먹은 나는 김밥이 아닌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부는 짭조름하고 부드러웠다. 안에 들어있는 알알이 박혀있는 무언가는 입에서 톡톡 튀는 듯했다. 아침에는 분명 엄마가 싸주신 김밥에 신이 났는데, 새로운 메뉴 등장에 나의 김밥이 잠시 초라해 보였다. 집에 가자마자 엄마에게 유부초밥을 만들어달라고 말해야지 다짐했다. 하지만 집에서 먹은 기억이 없는 것 보면, 말을 못 했거나 해주시지 않았던 것 같다. 

 유부초밥과 첫 만남은 강렬하였지만, 이 음식과의 인연은 가끔 친구에게 얻어먹는 것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대학생 때 사귀던 여자 친구는 나와 놀러 갈 때 가끔 도시락을 싸 오곤 하였다. 한 번은 내 기억에만 존재하던 유부초밥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친구에게 얻어먹기만 했던 유부초밥이 오직 나를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도시락을 싸 오는 것 자체도 감동이었지만, 이 어려운 유부초밥을 나를 위해 준비해 주어서 감동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부초밥이 김밥보다 만들기 어려운 줄 알았다. 요리에 대해서 눈곱만큼도 모르던 때이다. 추억 속에만 존재했던 유부초밥과 다시 마주하니 감동적이었다. 난 이 여자를 붙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유부초밥을 도시락으로 준비해 주던 여자친구와 결혼한 나는 유부초밥과 많이 친해졌다. 같이 여행 가서 아침 식사로 먹기도 하고, 가끔 집에서도 해 먹었다. 아내가 유부초밥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 그저 신기했다. 밥알을 순식간에 손에서 돌돌 말아 유부에 넣는 모습은 유부초밥 장인의 모습이었다. 

“와~ 어쩜 그렇게 잘 만들어?”

“쉬워, 하다 보면 늘어.”

나에게 비닐장갑을 건네주었다. 얼떨결에 유부초밥을 직접 만들게 되었다. 내가 하니 잘 뭉쳐지지도 않았고, 밥의 크기나 모양이 이상하였다. 아내의 유부초밥과 내 유부초밥은 딱 봐도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있는 모양새였다. 한 번 엉망으로 했으니 안 시키겠지? 생각했지만, 아내는 뱉은 말을 실천하였다. 틈틈이 나는 유부초밥을 만들기 위해 밥알을 뭉쳐야 했다. 처음에는 아내에게 하나하나 물어가면서 만들던 것이 언젠가부터 혼자서 만들게 되었다.    

세 아이의 아빠가 되고 시간은 흘러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직장인에서 주부가 되어있었다. 눈을 뜨고 오늘 아침은 무엇을 먹이지? 고민하다가 얼마 전에 사놓은 유부초밥이 생각났다. 밥을 적당량 양푼그릇에 담고, 오색빛깔 야채 토핑을 넣어서 섞어준다.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유부의 몸통을 연 다음 한 손으로 밥을 돌돌 말아서 넣는다. 빠르게 싸면서 아이들을 부르기 시작한다. 

“애들아 밥 먹어!”

한 명씩 눈을 비비면서 나오면, 잠을 깨라고 입에 쏙 넣어준다. 아이들은 볼에 한가득 들어간 유부초밥을 오물거리며 자리에 하나둘 앉기 시작한다. 내가 유부초밥을 이렇게 쉽게 만들어 먹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어린 시절 흠모의 대상이었던 이 유부초밥을 우리 아이들은 편히 먹는 모습을 보며 새삼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이 아빠는 이게 그렇게 마음껏 먹고 싶었단다. 

아이들이 내가 만들어 주는 유부초밥을 받아먹는 모습을 보며 삼 남매가 아빠에게 유부초밥을 만들어 주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아빠, 유부초밥 했어, 밥 먹어.”

“응, 고마워.”

아들의 부름소리에 나는 상에 앉아서 비닐장갑을 끼고 유부초밥을 싸고 있는 삼 남매를 바라본다. 아들은 큼지막하게 싸고, 둘째, 셋째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서로의 것을 비교하면서 만들고 있다. ‘내가 빨리 만들지?’ ‘내가 만든 것이 더 모양이 이뻐.’ 하며 싸우는 모습이 마치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즐거운 상상을 하며, 우리 아이들은 어떤 음식을 특별하게 기억할까? 내가 차려준 음식을 특별하게 기억할까? 그 소망을 담아 유부초밥을 아이들 입에 넣어준다. 




이번 오뚜기 푸드 에세이에 기고했던 글이다. 

본상은 아니더라도 장려상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합격자 명단에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실패의 상처는 남는 것 같다.

다시 마음을 다독이고 힘을 내야지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아이들 아픈 일들이 겹치며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다. 

억지로 기운을 짜내는 것이 아닌, 즐거운 마음으로 '으싸으싸!' 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잔인하지만 맛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