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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가는 날
약이 똑 떨어졌다
by
공삼빠
Dec 1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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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벌써 약이 하나밖에 안 남았네."
찬장을 열어보니, 약 하루치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 귀찮다. 어쩌겠나 내 몸은 약이 필요로 하는 것을...
병원 가는 길.
도로에도 차가 없고, 병원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싸~
간호사: 맨 끝방에서 대기하실게요.
맨 끝방으로 가니, 방문이 열려있고, 대기에 내 이름만 있다.
아 들어가면 되나 보다 하고 들어갔다.
눈이 마주쳤는데, 뭔가 잘 못됨을 느꼈다.
의사 선생님(이하 쌤) : ....
나: ...밖에서 기다릴까요?
쌤: 네 밖에서 잠시 기다리세요.
나: 네...
아 민망해라, 다행히 금방 이름이 불려 들어갔다.
쌤: 요즘 어떠세요?
나: 방학이 다가와서 걱정이에요.
쌤: 어떤 부분이 걱정이시죠?
나: 방학이 되면 첫찌랑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되는데 부담스러워요.
이제 쌍둥이들도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하네요.
나: 증상(우울증, 공황장애)은 최근에는 심하지는 않았어요. 죽고 싶다는 생각도 조금 줄고요.
쌤: 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세요?
나: 잘 모르겠어요.
쌤: 허무하고 그러신가요?
나: 네, 이 정도 살았으면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긴 해요.
쌤: 우울증 약을 늘리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나: 네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의사 앞에서도 여전히 '죽고 싶다'라는 말을 하기 전에는 멈칫한다.
이 단어를 말하는 거부감은 잘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약을 늘리는 것은 부담스럽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진짜 우울증은 약을 늘릴 정도는 아니다.
쌤: 요즘 성취감을 느끼는 일이 있나요?
나: (자신 있게)네, 요즘 온라인에 글쓰기를 하고 있어요.
쌤: 소설, 아니면 에세이요?
나: 에세이요.
(브런치요..라고 말하고 싶다. 브런치에 대해 알리고 싶다. 구독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
쌤: 글을 쓰는 것이 치료에 많은 도움이
돼요. 잘해보세요.
나: 네
글쓰기가 마음치유에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었지만, 의사 선생님께 들으니, 좀 새롭다.
이왕 칭찬받은 김에 평소에도 고민하고, 글을
쓰면서 고민되었던 것을 물어보았다.
나:
사람을 만나면 공황 오기 전보다 피로도가 강한데, 일반적인 경우인가요?
쌤: 일반적이기보다는 내향성인 분들은 상호작용을 함에 있어서 에너지를 더 많이 쓰게
되요.
나: 내향성이긴 한데 사람 만나는 것을 워낙 좋아했었어요.
전에도 피로감을 안 느낀 것은 아닌데 정도 차이가 너무 심해서요.
초반에는 공황이 심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피로감은 비슷해요.
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기도 해요.
어떤 때는 괜찮아질 수도 있어요.
내가 물어보긴 했지만, 잘 믿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내 안에 작은 희망을 품게 한다.
집에 와서 약봉지를 넣으려고 찬장을 열었다.
처방전 하나가 툭 떨어졌다.
2020년 3월에 받은 처방전인데 약이 3알 반이 적혀 있었다.
(처음은 훨씬 많이 먹었는데 잘 기억 안 난다.)
지금은 반알(우울증), 반알(공황장애)을 먹고 있다.
그것도 자기 전에 한 번이다.
(사람 많은 곳 갈 때는 늘 상비약을 챙겨가긴 한다.)
예전 처방전을 보니 위안이 되는 것 같다.
그래 나는 나아지고 있어.
조금
퇴보 할 수도 있고, 구덩이에 빠질 수도 있지만.
나아가고 있어.
언젠가 사람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 안될 수도 있어.
셀프로 위로를 해 본다.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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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도시에서 시골라이프, 삼남매(아들, 딸 쌍둥이)를 얻은 아빠입니다. 즐거운 일상과 고민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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