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빨리 벗어나야 하는 늪에 대한 기억
학습지란 말 그대로 공부, 학습을 위한 종이를 일주일에 한 번씩 받아보고 학습하도록 돕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에는 구몬, 빨간펜, 재능교육 등이 주류를 이루며 학습지 시장을 이끌어 오고 있고, 회사별로 약간의 특징이 있다.
내가 일한 곳도 그 주류기업 중 하나였다. 처음엔 지인의 소개로 들어갔지만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도록 돕는 교재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학습지의 수업료는 과목당 4만 원가량이고, 그중 40퍼센트가 선생님 수입이니 한 과목당 2만 원이 안 되는 수입이라고 볼 수 있다. 월 200만 원 수입이 되려면 150과목 수업을 해야 하는데, 각 가정에 방문해서 하는 수업이다 보니 이동시간까지 고려하면 매일 시간에 쫓기며 바쁜 날들이었다. 게다가 회사에서는 뭐가 그리 불안한지, 일주일에 두 번씩 오전에 지부 출근을 요구했다.
나는 자가면역 질환을 앓고 겨우 회복되기 시작한 시점에 일을 시작하면서, 한 집 한 집 방문하는 일이 정말 힘들었고, 천방지축으로 학습 태도가 안 되어 있는 아이들을 자리에 앉히느라 진땀을 뺐다. 아무리 힘들어도 딸들의 교육비를 위해 그만둘 수는 없던 날들 속에서 매일매일 치열하게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점차 나만의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일을 시작한 지 1년쯤 되었을때엔 회원 관리도 쉬워지고, 나름 아이들도 잘 따라와 주고, 어머니들과의 대화도 즐거워지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납득할 수 없는 회사의 운영 방침에 대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월 수입 250만원에 근무시간은 풀인 직업 (그나마 퇴회하는 회원이 생기면 그 수입도 줄어든다). 회사의 정직원들은 ‘마감’이라는 이름으로 월말에 선생님들에게 실적을 닦달하고, 퇴회하는 회원이 있어도 퇴회로 잡아주지 않으며 몇 달만 그냥 둬 달라고 자연스럽게 요구한다. 그 비용은 고스란히 선생님 몫이다. (퇴사를 결정하던 그 달에 내가 대납한 회원 수업료는 70만 원이었다.)
결국 1년 반쯤 되었을 무렵, 나의 학습지 선생님 시절은 끝이 났지만, 학습지 시장의 대기업의 횡포와 싸운 짧은 기간의 기억이 오래토록 남아 있다. 그때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일들은 회사의 모든 곳에서 있는 일이였는지 아니면 내가 있던 지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였는지 알 수 없지만, 회사가 지시한 일이 아니라 해도 회사는 최소한 약자에 대한 횡포의 방관자였다 (나는 모든 채널을 통해 본사에 충분히 항의 했으니까)
세상이 모두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의 나처럼 절박하게 힘든 이들에게는 최소한의 보살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애써 모은 적은 소득을 갈취해가는 그러한 일들은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