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에서 선생님이 되기까지-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마구 설레다 못해, 심장이 쿵닥거릴 정도로 행복한 나는 원래 공무원이었다.
행정공무원은 순환보직으로 단순한 업무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은데, 무엇이든 되고 싶던 그 시절의 나에게는 단순한 일상의 반복이 마치 감옥처럼 답답하게 느껴지곤 했다.
언제부턴가 나만의 무지개빛 미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꿈을 꾸며 살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20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정말 더 이상 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겠다고 생각된 어느 날, 나는 모두의 부러움을 사며 사표를 던졌다.
내가 근무하던 그 사무실에서는 새로운 기대로 눈이 빛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풍족하지 않은 월급을 쪼개 저축하고 주택자금 대출을 갚으며 그냥저냥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기에, 동료들은 내가 뭔가 좋은 수가 있어서 사표를 낸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아무런 대책도 없었고, 열심히 하면 또다시 내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나 자신에 대한 막연한 믿음에 저지른 일이고 무기력한 나를 살리기 위한 몸부림이였던 것 같다.
세상은 정말 차갑고 부당한 곳이었고, 나는 매일 진심이 되돌아오지 않아 억울한 날들을 보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무렵, 학습지 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아직은 돈을 벌어야 하는 내게 최저임금 이상을 보장한다는 말이 달콤하게 들렸고, 덥석 사인을 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발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절망에 또 절망이 덮쳐오던 날들, 대학원까지 공부했고 정교사 자격증도 있는 나였지만, 그들에게 나는 삶의 끝에 이른 영업사원에 불과했다.
나를 구해줄 무언가가 필요하던 그때, 문득 생각했다.
‘그래, 열심히 사랑하고 섬세하게 관리해 주자. 탁월하게 잘하게 되면 어쩌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놀랍게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열정을 다하자, 상처받은 자존감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아이들이 먼저 내 진심에 응답해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학부모들도 내 마음을 알아주기 시작했다. 어느새 엄마들의 육아 고민을 공유하고 스승의 날과명절엔 두둑이 선물을 받아 안고 돌아오곤 했으니까.
그런데 내 인생은 거기서 해피엔딩을 허용하지 않았다.
회사는 이제 어느 정도 수입이 되자, 암암리에 가짜 회원을 만들거나 그만둔 회원의 회비 대납을 통한 실적 부풀리기를 종용하기 시작했다.
각종 채널을 통해 회사 관리부서에 항의하고, 노조 사무실을 찾아가고, 지부의 관리자와 싸우다 지친 나는 지인이 운영하는 반포동의 수학 전문 학원으로 옮기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교실을 맡아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 것이다.
돌이켜 보면 건강상의 이유로 힘들 때도 있었고, 회사의 부당함과 싸울 때는 참 고단했지만, '선생님!, 선생님!' 하며 따르는 아이들과 깔깔 웃으며 신나게 두어시간 공부를 하고 나면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이 오늘의 행복을 위한 발판이였던 것 같아
힘든 속에서 나를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선생님으로 성장해온 내 모습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