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지 말고 터져버려도 괜찮아
여름이면 옥수수를 큰 냄비 한가득 준비한다. 뉴슈가를 넣고 은근하게 쪄지기를 기다리면 맛있게 옥수수가 쪄진다. 앉은 자리에서 3개는 기본이다. 준비과정에서 옥수수수염은 특히 잘 제거해줘야 한다. 삶기 전에 꼼꼼히 떼어주지 않으면 입안으로 들어오는 수염이 꽤 귀찮기 때문이다. 분명 저녁도 든든하게 먹었는데, 계속 먹게 되는 옥수수는 잔잔한 매력이 있다. 먹다가 배불러질 시점이 오면 한 알씩 톡톡 떼어먹는다. 이 한 알이 얼마나 배를 채워주겠어, 라고 생각하면 벌써 옥수수 한 줄이 동나버린다.
옥수수 자체를 먹는 것만으로도 맛있기에 옥수수를 쉽게 보면 큰일 난다. 옥수수의 변신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콘 치즈, 콘 튀김, 옥수수가 들어간 코울슬로. 어떻게 먹어도 맛나다. 그리고 팝콘까지. 말린 옥수수를 고온에 튀겨내면 옥수수가 금방 펄쩍 뛰며 팝콘으로 변한다. 옥수수를 열 받게 하면 팝콘이 된다. 아주 큰일 난다.
작년에 한 프로젝트 때문에 만난 친구가 있었다. 조용하고 침착했다. 그렇다고 소극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을 재밌게 하는 말도 하고, 자신의 의견도 곧잘 이야기했다.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했지만, 없으면 티가 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순두부같이 말랑말랑한 사람이 화내면 무섭다는 말 들어본 적 있는가? 나는 실제로 본 적이 있다.
프로젝트가 으레 그렇듯 소통이 제일 중요하다. 회의를 통해 수정사항이 생기면 모든 사람이 수정 사항을 반영해야 한다. 반영이 되지 않으면 서로 다른 정보로 혼선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새로 만든 문서에 반영된 내용으로 수정했다. 그런데 다른 파일을 가지고 있던 한 사원이 태클을 건 것이다. 수정이 되지 않은 파일이었다고, 다른 사람들이 가득 쳐다보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 친구는 그 상황에도 조용하고 침착했다. 오히려 주변에서 화를 내주며 그 친구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대신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누군가가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았다. 수정했다고, 본인이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역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그분이 다시 펄쩍 뛰기 시작했다. 말을 더듬으며 파일 이름을 제대로 만들었다면 헷갈리지 않을 일이었다며, 다시 그 친구에게 화살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 친구가 입을 열었다. 작은 거 하나 체크 못 하면서 말이 많으시네요, 라고. 그 친구를 표현하며 조용하고, 침착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순간에는 싸늘한 목소리와 차가운 표정의 모습이었다. 단순한 침착한 표정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 순간 모두 느꼈을 것이다. 그 말 이후로 우리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 상황이 종결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때 느꼈다. 조용한 사람이 화내면 무섭다? 무섭다.
기대했던 것 같은 대폭팔의 상황은 없었다. 아주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상황도 아니다. 그렇게 화를 내고 힘을 쓰면 본인의 에너지만 소모된다. 감정은 은근하게 지속되다 터진다. 그 작은 한 마디가 아무것도 아니게 보일지라도 당사자에게는 거대한 폭발일지도 모른다. 100개의 옥수수 알맹이가 다 같은 순간에 터지지 않듯이, 터지는 순간도, 터지는 모양도, 터지는 속도도 다 다르다. 그렇지만 확실한 건 언젠가는 터진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