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지 않기 위해 펜을 들었다, 그리고 조금씩 살아졌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건 글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던 순간, 강의가 끝난 텅 빈 강의실, 혼자 먹는 점심의 고요한 시간, 문득 떠오른 오래전 기억들.
글을 쓰기 전에는 그냥 흘려보냈다. 별일 아니라고, 다 그런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떤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 한구석에 주저앉아 나를 힘들게 했다. 참는 건 익숙했지만, 이해하는 건 서툴렀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쓰기보다, 내가 나를 이해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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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저 기록이었다. 글을 쓰기 전, 나는 자꾸 무너졌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강사’라는 직업으로, ‘작가’라는 타이틀로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도망치고 싶은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 모든 역할을 버릴 수는 없었다.그래서 선택한 것이 기록이었다. 도망칠 수 없다면 적어보자.
그날의 나를 그때의 감정을 그 순간의 진심을.
이상하게도 쓸수록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사실은 힘들었다는 걸,
사실은 인정받고 싶었다는 걸,
사실은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었다는 걸
글이 대신 말해줬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나를 다시 만나고 있었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자주 울었고 자주 웃었다. 쓸수록 삶이 정리되었고, 마음이 들여다보였다. 무엇보다, ‘왜 이렇게까지 애쓰며 살았는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결국 나는 더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덜 힘들기 위해 글을 썼다. 덜 외롭기 위해, 덜 지치기 위해, 덜 무너지기 위해.
그리고 놀랍게도,그렇게 쓰던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 시작했다.
“이거, 제 이야기 같아요.”
“저도 그런 감정 느껴봤어요.”
“당신의 문장을 읽으며 제가 위로받았습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나를 위해 쓴 글로,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말하고 싶다. 글쓰기는, 삶을 다시 살아보게 하는 일이라고. 우리는 모두 매일같이 살아내느라 스스로의 감정을 밀어놓고 이해받을 기회를 잃고 진짜 목소리를 잊고 산다.
글쓰기는 그 목소리를 다시 찾게 해 준다. 글을 쓰면, 삶이 복기되고 마음이 읽히고 그저 그런 하루가 ‘살아낸 하루’가 된다.
나는 이제 글을 쓴다는 것이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내가 나를 붙잡아주는 방법’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이 말만큼은 꼭 전하고 싶다.
당신의 하루도 글이 될 수 있다고,
당신의 감정도 문장이 되어 누군가의 삶을 흔들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펜을 든다.
쓰는 일이, 살아내는 일과 닮아 있다는 걸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