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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시아 Sep 06. 2021

서른이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

벌써 9월이다.

12월 끝자락에 태어나서 열흘도 채 되지 않아 두 살이 되어버린 나.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느껴질 때마다 한 살을 거저먹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생긴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은 늘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물었다.

딱히 하고 싶은 것은 없었지만 어른들이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던 나는 이런저런 직업을 말하곤 했다.

누구도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라고 물어보지 않았고, 스스로도 생각해본 적 없던 그 질문을 서른 살 끝자락에서 해보며 내 삶을 돌아본다.



수능을 마치고 맞이한 스무 살의 첫 해.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하지만 나이를 기입하는 칸에 적는 숫자만 달라졌을 뿐, 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사회가 나에게 스스로를 책임질 나이라고 말할 때면, '내가 진짜 어른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난 여전히 불안정했고 가족이나 친구들의 손을 놓으면 혼자 서있지 못하는 반쪽짜리 어른이었다.


네발자전거에서 두발자전거로 넘어가는 과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미성년자라는 보조바퀴를 떼고, 성인이 되어 굴리는 나의 첫 자전거.

처음에는 부모님이 내 자전거의 뒤쪽을 잡아주며 말한다.

‘너의 뒤에는 우리가 있으니 안심하고 타도 좋아.’

겁이 많은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부모님은 내가 무너지지 않을 힘이 되어줄 뿐,

방향이나 속도는 오롯이 내가 결정한다.


부모님의 손이 내 자전거를 놓았을 때는 내가 결혼했을 때일까.

지금은 남편과 사이좋게 2인용 자전거를 굴리고 있다.

넘어질까 봐 조마조마하며 자전거를 타던 때와 다르게 자연을 보며 감탄할 수 있고, 지나가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유로움도 생겼다.

급하게 달리지 않아도 되고, 잠깐 농땡이를 피워도 괜찮다. 내 속도에 발을 맞추어 페달을 밟는 남편 덕분에 내 자전거는 멈추지 않고 신나게 나아간다.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것 중 가장 큰 축복은
내 부모님의 딸로 태어난 것이고,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 중 최고의 선택은
남편과 결혼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내 손을 놓지 않는 한, 내 자전거는 절대 넘어지지도 망가지지도 않는다.

정말 큰 축복이고, 감사한 일이다.




다시 나의 30년을 돌아본다.


부모님의 품 안에 있던 시절, 나는 늘 ‘착한’ 사람이고 싶었다.

착한 딸, 착한 학생, 모두에게 친절한 착한 사람.

'너 진짜 나쁘다'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고 나에 대한 평가 대부분은 '착하다'였으니,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나름 성공한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착하다'는 평가가 따르는 삶은 피곤하고 지친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 아니다.


왜 나는 착한 사람이고 싶었을까.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은 공부를 잘했고, 어딜 가나 잘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다. 동생에 비해 나는 그저 그런 평범한 아이였다.

부모님은 차별 없이 대하셨지만,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동생보다 못한 누나로 치부됐다.

어려서부터 느끼던 열등감은 다채로운 나의 성격을 ‘착하다’는 틀에 욱여넣으며 많은 것을 애써 참게 했다.

주목받는 아이는 되지 못했지만, 눈 밖에 나는 아이가 되지 않고 싶었던 ‘아이답지 않은 아이’의 삶.

나는 그저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었나 보다.


내가 ‘착한 사람’이 아니라 ‘착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란 것은 남편과 연애하며 알게 되었다.

남편은 나에게 ‘너무 애쓰며 산다’고 말하곤 했다.

주변에 대한 관심도 좋지만, 나 자신을 먼저 살피고 보듬어주는 것이 더 먼저 아니겠냐고.

처음에는 남편의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누군가를 챙겨주면서 얻는 미묘한 충만감을 남편은 모른다고 생각했으므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만나는 만큼 상처 받고 또 상처 받다 보니 남편의 말이 다시 다가왔다.

내 선의는 순수하지 않았고, 나는 늘 너무 애쓰며 살고 있었다.

내 마음을 가득 담은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면서 그들도 나에게 동일한 애정을 쏟길 바랐다.

마음의 크기가 동일할 수 없다는 것을 자주 잊어버리는 나는 늘 상처 받는 쪽이었다. 내가 주는 애정이 부족해서였다고 오히려 자책했다.

성한 곳이 없는 안쓰러운 내 마음을 마주한 뒤, 난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나씩 그만두고 있다.


이렇게 내 삶을 돌아볼수록 내가 위선적인 삶을 살아온 것만 같아 자괴감이 든다.

아직도 나는 나를 잘 모르겠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추구하는 방향을 설정해두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다 보면 그 길의 끝에 내가 원하는 삶이 있지 않을까.


음,

내 마음에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나 스스로도 놀랄 때가 있곤 했다.

하지만 ‘이대로도 괜찮을까?’하며 결국 내 감정을 뭉그러뜨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제 그러지 않아야겠다.

내 마음을 투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까지 바라지 않는다. (60살 정도 되면 가능하려나...)

그저 내 마음을 내가 인정해주는 것. 그것부터 시작이다.

속상한 마음도, 시기와 질투하는 마음도 내 마음이다. 부정적인 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내가 느끼는 감정 하나 품지 못하면서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쓰는 것은 빈 속을 긁어내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타인을 위해 쓰는 마음은 내 마음이 충만하게 차올랐을 때, 그때 해도 늦지 않다. 내 마음의 1순위는 나여야 한다.

너무 늦게 알았지만, 남은 인생이 더 많으니 괜찮다.


내 마음의 많은 부분을 남편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도 그만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남편에게 자주 물어봤다.

남편은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 부부 아니겠냐며 그런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맞다.

남편의 존재만으로도 안정이 찾아오는 나처럼,

남편도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나의 어떤 부분으로 좋은 영향을 받고 있을 것이다.

미안해하지 않고, 한결같은 그가 내편이라는 사실에 더 감사하고 사랑해야지.



내 삶에 불만도 없었고, 딱히 바라는 것도 없어서 한 번도 써보지 않았던 버킷리스트를 써봐야겠다.

남은  인생을 어떤 것으로 채우면서 살고 싶은지.


우선 버킷리스트 1번.

내 마음에 솔직해지기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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