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인생도 인생이라구요.
“지원이는 뜨개질 해봤어?” 수지가 물었다.
“아..니요..”
그녀는 무언가 불안해보였다. 마치 누군가에게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실은 거짓말이 맞긴 했다. 자신이 뜨개질에 관심이 있다는 변명으로 학원을 땡땡이 쳐버렸으니까.
수지는 감이 왔다. 그녀는 경험 많은, 최소 지원이보다는 어른이었으니까.
“지원이는 꿈이 뭐야?”
“어..그..의사요..”
“정말? 너 공부하는걸 좋아하는구나. 의사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할텐데!”
“네..그..사실 이건 제 꿈이라기보다는..”
“어?”
“저희 부모님의 꿈이죠.” 그녀는 용기있게 말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지금도 좋아하고 있구요. 참을 수 없을만큼요. 공부를 할 때마다 자꾸 그림 그리고 싶고 무언가를 꼼지락 주물거리고 싶고 그래요. 처음엔 그냥 내가 사춘기라 그렇다고 생각했는데..가면 갈수록 이게 심해져요. 그렇다고 그림이나 만들기를 하면 저희 엄마 말대로 인생이 망할것 같구요..아니 물론 작가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닌데.. 작가님 같은 경우는 극소수잖아요..” 그녀는 복잡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지원아, 망한 작품이란 기준이 뭘까?”
“네? 기준은..사람들이 평가하는..거 아닌가..”
“그렇지 않아. 내가 평가하는거야. 그 사람들이 만들지도 않았는데, 내 작품이 망했는지 안 망했는지 그걸 어떻게 알아?”
“근데..작품이 미울수도 있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너는 작품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것 같아?”
“네? 어..제가 행복하니까요.”
“그래..너가 행복한 작품이고, 마음에 든다면 그건 망작이 아니라, 성공작이야.”
“그렇네요..”
“인생도 똑같아..”
“네?
“인생도 너가 행복하고 마음에 든다면 그 인생은 망한 인생이 아니라 성공한 인생이야. 너가 아무리 사람들이 보기엔 망한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너가 행복하면 된거야. 우리는 모두 행복을 위해 살아가니까.”
“….” 지원이는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지원이 다 했어? 이쁘게 완성했네!”
“아 네..ㅎㅎ”
그때, 지원이의 어머니가 공방을 뛰어들어왔다. “어서오세요..마음을 뜨다입니다..”
“뭐요?! 마음을 뜨다? 마음을 뜨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네?” 유리는 당황했다.
“우리 딸 어디있어요? 우리 딸 학원 못 가게 뭐하는 짓이에요 이게?!”
“엄마..?”
“지원아! 너 학원 안 가고 뭐하는거니.. 학원에서 전화왔어! 이..이..뜨개질인가 뭔가하는 사장이 너보고 여기 있으래? 딱 봐도 장사 못하게 생겼더만.”
수지는 멍하니 어머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머머..이 과장??? 이과장이 여기서 뭐해???? 퇴사하더니 고작 하는일이 이거에요?”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 고작 이거라니! 그리고 작가님이 엄마 직원이었어??”
“어머머.. 작가님? 얘가! 너 학원 못 가게 한 사람 보고 뭐하는 짓이니!”
“나 학원 안 갈거야!”
“뭐?! 얘가 왜이래? 사춘긴가?”
“사춘기라 그런거 아니고, 잠깐 착각한 거 아니야. 내가 그림 그리고 만드는 거 좋아해서 이러는거라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은 공부가 아니라, 미술이라고. 미술!”
“야야, 지원아 너 이런거 하면 성공할것 같아? 어? 잘 살것 같냐고. 이렇게 공방 여는 사람, 극소수야. 봐봐 이렇게 열더라도 장사가 안돼서 너 같은 순진한 애 데리고 와서 뜨개질 시키잖니..”
“내가 여기 들어온거라고. 이분들이 날 데리고 온게 아니라!! 엄마는 내 꿈을 응원하기는 하는거야?? 날 사랑하고, 존중하기는 하냐고! 정말 날 존중하고 사랑하고 날 좋은 사람, 행복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면! 한 쪽 길이 아닌 내가 원하는 길을 안내해줘야, 내가 행복한 사람이 될것 같지 않냐고!! 엄마는 대체 왜 한 쪽만 생각하는거야!”
“뭐…?얘..가?..너..너 엄마 앞에서 왜 말대답해! 어? “
“됐어! 말이 안 통하네! 나 앞으로 알바해서 미술학원 다닐거니까 그렇게 알아!”
지원이는 문을 쾅닫고 나가버렸다. “지원아!! 아휴 얘가 오늘따라 왜 이래!!” 엄마도 쫓아갔다.
다행히 지원이는 그녀가 본 만족감만큼 큰 돈을 올려두고 갔다. 10만원이었다. 학생이 이런 큰 돈은 어디서 났는지..수지는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지원이는 그날이 이후로 공방에 오지 않았다. 그저 수지는 그녀의 결말을 상상할 뿐이었다.
“유리야 나 잠깐만 바람 쎄고 올게” 수지는 말했다. 바람이 서늘했다. 수지는 지원이가 하교하는 것을 보았다. 미술도구를 들고 엄마와 함께 웃으며 어딘가를 가고 있었다. ‘지원아, 사람들이 망작이라해도 깨부수지 마렴. 그건 너가 판단하는거란다. 널 진심으로 응원해’ 수지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