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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Jul 01. 2024

방송작가의 자부심? 빛 좋은 개살구!

  방송작가들은 99.9% (사실 거의 100%) 프리랜서이다. 업계에 대한 정보가 없는 사람들은 작가가 한 프로그램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그 방송사에 취직을 해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아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들도 간혹 있었다. 모든 프리랜서가 마찬가지지만 일을 하면 돈을 받지만 일이 없으면 당장 생활비에 쪼들리기 시작한다.      


  피디들이야 본사 직원의 경우가 많으니 대부분 월급을 받아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방송을 하던 쉬어가던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지만(물론 현재는 프리랜서 or 외주 제작사 피디들이 많기 때문에 작가나 피디나 매한가지다) 작가는 굶어 죽기 시작한다.  10여 년 전만 해도 시즌제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들고 명절 같은 때에 2~3회짜리 파일럿으로 프로그램을 띄우고 반응 좋으면 무조건 레귤러가 되었는데 최소 6개월 이상 프로그램이 유지되었기 때문에 그리 걱정할 일도 없었다. 운이 없어서 한 두 달 쉬어 가더라고 다른 프로그램에 들어가면 또 한동안 월급 걱정 없이 프로그램이 이어졌으니까.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레귤러로 돌아가는 프로그램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고 대부분 시즌제로 돌아가기 때문에 작가들이 굶어 죽기 딱 좋은 시기이다. 게다가 방송국에서는 돈이 되지 않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더 이상 제작하지 않으려 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비단 방송 작가뿐만이 아니라 방송계 전체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역대 가장 힘든 시기인 셈이다.      


  어쨌든 내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대부분 레귤러로 돌아가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작가라는 직업이 프리랜서 중에 가장 프리하지 않은 직업이라는 거였다. 프리랜서라 함은 내가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일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게 장점이고 남들 눈치 안 보고 일해도 되는 게 가장 큰 장점인데 방송작가계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방송작가는 철저히 수직적인 체계로 돌아가는데 메인 작가부터 막내 작가까지 작가세팅을 연차별로 하는 게 대부분이다. 다른 회사나 조직 사회보다야 덜할 수도 있겠지만 그 못지않게 연차별로 상하 구분이 명확하다. 정말 속된 말로 x 같은 선배를 만나도 무조건 그 말에 따라야 하고 더럽고 치사해서 프로그램을 떠나면 금세 이상한 소문이 돌고는 했다. 심지어 이 바닥은 정말 좁디좁아서 한 다리만 건너면 누가 누구와 어떻게 일했는지 알아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러니 아무리 돈을 못 받고 일이 x 같아도 그냥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도저히 버틸 수 없다면 정말 이 방송 바닥을 떠날 각오로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나 역시 이런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상황들을 너무나 많이 겪어서 방송계를 떠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도 떠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일을 해왔던 건 내 주변 지인들의 입김 때문이었다.     


  내가 여기서 얼마나 불공정한 대우를 받든말든 이 바닥을 모르는 내 지인들은 나를 ‘작가님’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중고등학교 동창들도 나를 ‘장작가’라고 부르고 다른 친구들에게 작가 친구가 있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하고 다녔다. 내가 아무리 노예보다 못한 삶을 산다고 하소연을 하고 다녀도 그들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고 그저 방송국이라는 판타지에 사로잡혀서 ‘내 친구가 방송국에서 일하는 작가야’가 그들의 자랑거리였던 것이다. 게다가 부모님마저 그 허울을 내 자식 자랑으로 하고 다니시니 내가 어찌하랴 그냥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가끔 후배 작가들과 술자리를 하다 보면 여전히 그런 허울에 사로잡혀 있는 후배들이 있다. 물론 그게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내가 일을 하는데 원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그만큼 버티다가 포기하게 되었을 때 밀려드는 상실감과 자괴감을 배로 작용하는 것이다.      


  혹시나 이런 마음으로 방송계에 발을 들이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항상 그들에게 말하고는 한다. “작가라는 직업은 그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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