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았기에. 애써 버티던 눈물이 초침에 걸렸다.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흔들렸다. 째깍째깍 소리에 맞춰서. 하얗던 침대가 회색으로 변해갔다. 화성 조각처럼. 이러다 사라지겠구나. 이렇게 끝이겠구나. 침대도, 그 애도. 결국 남는 건 지구와 지구의 나뿐이겠구나. 나는 왜 갈 수 없는 걸까.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그 애가 점점 커지는 게 느껴졌다. 우주복을 입나 보다. 침대가 점점 넓어지는 게 느껴졌다. 나갈 준비를 하나 보다. 언젠가는 떠날 그 애였다. 언젠가는 떨어질 우리였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가 오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 애에게 마지막 무전을 보냈다.
돌아올 거지?
말이 공기를 타고 날랐다. 물에 젖은 듯 무겁게, 5평 남짓한 우주를 가로질러, 금속처럼 차가운 겨울을 뚫고, 언제 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캔들을 지나, 크레이터 같은 구멍이 뚫린 그 애의 무전기에 착륙했다. 날아가는 동안 부식됐을까 겁이 났다. 집착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잘 전달됐길 바랐다. 비록 어느 sf 영화에나 나오는 진부한 대사였지만, 무엇보다 잘 표현된 5글자였기에.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사랑이라는 말이 와닿는 말. 돌아올 거라는 말만을 위한 말. 영화에 나온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을 거였다. 약속을 받아내기 전까진.
그럴 거야. 크리스마스 전에는.
그 애의 말은 빨랐다. 총알처럼 구멍을 빠져나왔다. 혜성처럼 날았다. 순식간에 내게 도착했다. 그런데 진짜 우주를 건너온 듯했다. 5평 남짓한 우주가 아니라, 진짜 우주를. 속도가 너무 빨랐던 탓일까, 말은 떨고 있었다. 마지막 경련처럼. 몸통이 길어서일까, 말은 여기저기 해지고 찢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를 위한 걸 텐데. 소중하게 말을 안았다. 비록 귀를 통과하지는 못할 거였다. 금방 죽어버릴 거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게 닿았으니. 내가 들었으니. 사라지지 않고 와줘서 고마워. 버텨줘서 고마워. 차가운 공기를 덥혀줘서 고마워. 말의 마지막 숨으로 품 안이 따뜻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말을 내보낸 그 애는 지쳐 보였다. 헬멧에 가려 표정이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그랬다. 새벽 5시. 그 애가 나갔다.
그날 이후로 하루에 한 번, 그 애가 문자를 보내줬다. 오늘은 뭘 했고, 내일은 뭘 할 건지가 담긴 문자. 대부분은 이런 형식이었다. 오늘은 집에 갔어. 내일은 학교에 가보려고. 그렇게 그 애는 집에, 학교에, 한강에 갔다. 그리고 속초에도. 한강에 간다는 문자를 받을 때까지는 애써 외면하던 생각이었다. 함께였던 장소를 간다는 생각. 정리하려 한다는 생각. 마음 한켠에 막아뒀던 불안이 파도처럼 터져 나왔다. 눈물이 모래알처럼 흩뿌려졌다. 익사 직전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한참 물을 토해냈다. 추웠다. 떨리는 손으로 문자를 보냈다. 크리스마스이브였고, 3일 만의 답장이었다.
왜?
’우리‘를 찾으려고.
그 애의 답장은 빨랐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웠다. 속초에서 우리가 한 거라곤, 짧은 대화와 이별이 전부였다. 왜 하필 그곳인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영영 우리를 찾지 못하게 될까 봐, 그 애가 바다 밑에 있는 다른 ’우리‘에게 갈까 봐. 아무것도 알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다음 날만을 기다렸다. 그 애는 약속을 지킬 거였다. 어긴 적이 없었으니. 내일이 되면 모든 걸 알 수 있을 거였다. 구태여 지금부터 힘들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제는 딱딱해진 회색 침대에 누웠다. 3일 동안 차가웠던 침대가 이제는 시렸다.
눈을 떴을 때, 그 애가 있었다. 작은 그 애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면서. 그 애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를 찾았다고, 어디에도 없던 우리를 마침내 찾았다고. 내가 물었다. 우리가 누군데. 그 애가 짤막하게 말했다. 너랑 나. 그리고 덧붙였다. 헤어지자, 우리는 너무 달라졌고, 너랑 나는 너무 닮아졌어. 그래서 그래. 그 애는 내가 말할 틈도 없이 말을 이어갔다.
너랑 나는 왜 닮아버렸을까. 달랐고, 다를 수 있었는데. 우리는 왜 달라졌을까. 같았을 수 있었는데. 예전에는 자주 죽고 싶었어. 엉망진창이었거든. 모든 게 다 불안했어. 그래서 기를 쓰고 열심히 살았지. 그러면 실수하더라도 한 번은 봐줄 수도 있잖아. 딱 너를 만나기 전까지 그렇게 살았어. 그런데 너를 만난 후로는, 죽고 싶진 않았어. 가끔 도망가고 싶었을 뿐. 시끄럽게 웅웅대는 세상을 잠깐은 꺼놓을 수 있었으니까. 넌 항상 내게 낭만적이라고 했지만, 그건 너였어. 넌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네가 나를 닮아버렸나 봐. 네가 죽고 싶을 때가 있나 봐. 내가 그렇게 만든 걸까. 아니면 현실이 그렇게 만든 걸까. 너랑 나는 왜 행복할 수 없을까. 우리는 왜 영원할 수 없을까. 네가 죽고 싶어 하는 것 같은 날이면, 나는 항상 도망치고 싶었어. 너랑 같이. 그런데 이제 그것도 안 돼. 너무 늦었어. 나를 닮게 해서 미안해. 너를 닮아버려서 미안해.
그 말을 끝으로 그 애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몇 벌 안 되는 낡은 옷들과 책들을, 그리고 낡은 가방까지. 그 작은 몸에 하나씩 둘러매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제야 진짜 화성에 가는 걸 텐데, 우주복이 보이지 않았다. 작은 그 애 그대로였다. 작은 눈물을 흘리는 작은 그 애.
그 뒤로 나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애의 처음이자 마지막 진심이 느껴졌기에. 외계인은, 화성은 처음부터 없었기에. 문을 나가는 그 애를 바라보며, 우리가 탈출용 우주선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누가 탈출하고, 누가 침몰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떠나가는 그 애는 죽고 싶어 보였고, 남겨지는 나는 아마 슬퍼 보였을 테니까.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무엇도 지키지 못한 채. 낭만적이었던 나와, 현실적이었던 그 애 모두. 삶은 낭만적이기엔 고단했고, 현실적이기엔 애절했다. 그날 5평짜리 좁은 방에는 고작 등록금 따위를 이기지 못한, 큰맘 먹고 산 와인이 뒹굴었다. 그리고 그 애에게 전하지 못한 한마디, 어쩌면 우리를 살게 했을 그 한마디도. 그래도 오늘은, 메리 크리스마스.
이번 글을 통해 제 부족함을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부끄러운 글입니다. 그래도 시작한 얘기는 끝맺어야 하니, 어떻게든 써봤습니다. 죄송합니다. 또, 이번에는 가사가 없는 노래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인디 밴드도 아니고요. ‘인디’를 제목으로 달아놓고, 뻔뻔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도 이 곡을 쓰고 싶었습니다. 이것도 죄송합니다. 그래도 곧 크리스마스니까요. 어쨌든 곧 크리스마스니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여러분은 꼭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곡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입니다.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곡이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곧 그분의 영화도 개봉한다는데, 어쩌면 브런치에 후기를 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