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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시임 Nov 30. 2023

사람이 사랑하면 안돼요. zunhozoon

정말 사랑해야 할까요


화성에 가자. 그 애가 말했다. 우주선 발사 실패 소식이 연일 보도되던 때였다. 실없는 소리는. 그 애는 내 답이 못내 맘에 안 든 듯했다. 영화도 본 적 없냐며, 거기서도 살 수 있다는 그 애가 미웠다. 당장 다음 학기 등록금이 걱정이었다. 너는 아무 걱정 없겠지. 그 애는 한 번도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었다. 평범한 나와는 달리 똑똑했다. 어쩌면 영리했다는 표현이 더 맞는지도. 무슨 말이냐며 묻는 그 애를 뒤로하고 나왔다. 밤공기가 찼다. 벌써 추워지면 안 되는데. 겨울엔 아무래도 돈이 더 필요했다. 아르바이트를 늘렸다가 병원비가 더 든 게 두 달 전 일이었다. 더 아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더 아낄 수 있는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일은 고됐다. 늘 손님이 많았다. 어디서 이렇게 끝도 없이 몰려오는지, 집에 가면 쓰러지기 일쑤였다. 그러면 항상 씻고 자라는 그 애의 잔소리가 따라왔다. 사랑해. 수건을 건네주며 그 애가 말했다. 찬물로 하지 말지. 나는 두 문장의 차이를 생각했다. 구분이 가지 않았다. 피곤했다. 그 애가 덥혀 놓은 자리는 작았다. 졸음이 몰려왔다. 장판 왜 안 켰어. 이불이 두꺼워서 더워. 그럼 차라리 옷을 몇 개 벗지. 너 왔으니까 괜찮아. 그 애가 조금씩 얇아졌다. 다음 학기 장학금은 좀 힘들 것 같아, 실수했거든. 그 애는 실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걱정됐다. 괜찮아? 응, 아르바이트하면 되겠지. 너 하는 데서 같이 할까? 그래. 그 애는 곧 잠들었다. 화성에 가야 한다는 중얼거림이 들렸다.


일어나 보니 그 애가 없었다. 잠깐 나간다는 메모가 전부였다. 글을 쓰러 간 듯했다. 오랜만이었다. 예전에는 자주 썼던 것 같다. 아니, 거의 매일 썼을 거였다. 그 정도로 그 애는 글을 좋아했다. 소설, 일기, 에세이.. 가라지 않고 쓰고 읽었다. 왜 좋냐고 물으면 문장이 좋아서라고 할 뿐이었다. 낭만적이네,라고 말하자 그 애는 현실적인 거라며 웃었다. 둘 다 이해할 수 없었다. 글과 문장의 구분도, 낭만과 현실의 뜻도. 이해할 수 없는 건 하나 더 있었다. 속초 바다에 갔을 때였다. 노을진 바다가 퍽 이뻤다. 쭉 뻗은 수평선이 따뜻해 보였다. 이런 곳에 산다면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았다. 한참 상상에 빠져있던 나를 깨운 건 그 애였다. 뜬금없이 외계인이 있을 거라는 그 애. 저 바다 밑에는 외계인이 있을 거라고, 없는 게 더 이상하다고. 돌아가면 그런 글을 쓸 거라는 그 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서러워서 화가 났다. 그래서 비꼬았다.


그래서, 외계인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려고?

뭘 조심해? 외계인을?

응. 우린 걔네들이 어떤지도 모르잖아.

모르긴 몰라도, 조심해야 하는 건 걔네야. 그럼 외계어로 써야 하나?


짧은 연애는 외계인에 대한 대화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끝도 없이 치는 파도와 함께. 어차피 마지막 여행이었다. 우리는 군대와 편입으로 찢어졌다.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그 정도는 아니었다는 걸.


우리가 다시 만난 건 2년 만의 일이었다. 오랜만에 본 그 애는 달라진 게 없었다. 달라진 건 ‘처음 뵙겠습니다’에서 ‘오랜만이네’로 바뀐 인사말뿐. 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그저 한 가지 사실을, 그러니까 나는 그 애를 기다릴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 다들 안부 인사를 묻고 있는 그 자리가 싫었다. 거짓말을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다. 찜찜했다. 그래서 서둘러 나왔다. 그런데 그 애도 나왔다. 역까지 함께 걸었다.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던 내 입에서 나온 건 외계인 책은 썼냐는 말이었다. 주워 담고 싶었다. 그 애는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무슨 외계인 책이냐기에 그때의 일을 말해줬다. 그걸 기억하냐는 답이 돌아왔다. 할 말이 없었다. 그 애는 웃으며 말했다. 자기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다음 날에 그 애에게 연락이 왔다. 그 이후로 우리는 전처럼 지냈다. 말하지 않아도 그랬다. 저번처럼.


그 뒤로 몇 달, 외계인은 새까맣게 잊은 듯 한 그 애였다. 그런데 이제는 화성이라니, 종잡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가끔 불안했다. 마지막이 될까 봐. 그러나 그렇진 않으리라 믿었다. 그때와는 달랐으니까. 예전엔 이상한 얘기만 했다면, 요즘은 가끔만 이상했다. 가끔에는 ‘그런 날’이 포함됐다. 찬물로 샤워하는 날. 꼭 껴안고 자게 되는 날. 미역국을 먹어야 하는 날. 겨울이 되고 ‘그런 날’이 늘어난 게 원인인 듯했다. 아니면 장학금을 못 받게 돼서 그런 걸 수도. 어쨌든 뭔가를 해야 했다. 그 애를 화성에서 때 놓을 무언가를. 지금이 기회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급하다며, 한 번만 더 나와달라던 점장의 말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 애도 글을 쓰러 나갔으니 밤늦게나 돌아오리라. 원래 크리스마스에 하려 했지만, 당겨도 괜찮을 거였다.


먼저 재빠르게 청소를 했다. 6평 남짓한 원룸인데도 정리할 게 많았다. 옷장은 작았고, 냉장고는 컸다. 대충 끝내고 재료를 사러 갔다. 오후 5시. 30분만 걸으면 할인마트가 있었지만 거기까지 갈 시간이 없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토마토소스와 면을 샀다. 와인 한 병도. 그 애는 소주가 제일 좋다 했지만,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으리라 믿었다. 케이크와 초도 샀다. 돌아오는 길엔 지갑도, 발걸음도 가벼웠다. 오후 6시. 도착해서는 편지를 썼다. 예전에는 자주 써 줬던 손편지였다. 그런데 마음이 바빠서인지 생각만큼 잘 써지지 않았다. 오후 7시. 선물을 포장하고 집을 꾸몄다. 그 애가 좋아하는 꽃도 함께. 오후 7시 반.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었다. 요리를 시작했다. 뜨거운 물에 면을 풀었다. 늘어진 면은 행복해 보였다. 오랜만에 그 애와 찜질방에 가도 좋을 것 같았다. 오후 8시, 이제 곧 그 애가 올 거였다. 아르바이트를 가기 전에는 항상 돌아와 배웅해 줬으니.


오후 11시. 그 애는 오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늘어졌던 면이 뚝뚝 끊어졌다. 파도, 이번엔 면. 또 너무 늦었나 보다. 그 애는 화성으로 갈 채비를 했나 보다. 눈물이 났다. 뚝뚝 끊어지며. 성급하다는 생각은 화성에 끌려갔다. 꽃도, 편지도 함께. 무기력이 몸을 안았다. 기다릴 수밖에 없으리라. 그 애가 안전히 돌아올 때까지. 다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때까지. 침대에 어제의 그 애가 그려졌다. 회색으로. 화성에 가야 해. 잿빛 목소리가 웅얼거렸다. 그 작은 소리가 내 귀를 막았다. 새벽 1시. 그 애가 돌아왔다. (계속)


이번 이야기는 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습니다. 사랑과 낭만과 현실은 쉽게 쪼개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갈수록 추워지는 요즘입니다. 모두들 감기 조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읽어주심에도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제 브런치 북과 정반대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듣다 보면 같은 말을 하는 곡이 소개합니다. 모든 게 베일에 싸인 zunhozoon님의 ‘사람이 사랑하면 안돼요’입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곡입니다. 이번 글과도 잘 어울리고요. 가사 한 구절과 함께 글을 마칩니다.


그대를 보고 있으면 왠지 나와는 너무도 달라서
그 입술에 귀 기울여 들어보려 해도
반대쪽으로 흘러내려요
사람이 사랑하면 안 돼요
매번 내 모든 걸 앗아가요
내 무덤은 내가 파야 잃을 게 없으니
더는 사람이 사랑하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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