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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외 Nov 16. 2023

졸업. 브로콜리너마저

고마운 그 애에게. 언젠가 네 눈에 다시 내가 비추길,


내 재능은 타협이었다. 좋게 말하면 양보, 나쁘게 말하면 포기. 그런 애매한 명목으로 많은 걸 누렸다. 적당한 행복, 적당한 불행, 적당한 성취감과 적당한 낙담을. 무엇이든 과한 감정은 힘들었기에 그랬다. 인생에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그래도 그런대로 살았다. 신기루 같은 행복도 보일 때가 있었기에. 가까이 다가가면 사라질까,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곤 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태어났을 때부터 이랬길 빌었다. 이런 성격은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송합니다’가 유행하던 시절이었고, 공무원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재능이 발휘된 거였다. 안타깝지도 않게.


졸업장만을 위한 대학 생활은 삭막했다. 청춘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주 밤을 새웠다. 아침엔 항상 시야가 좁았다. 좁은 시야에는 참 작은 것만 보였다. 작은 방에 더 작은 거울, 작은 거울에 더 작은 나, 작은 나에는 더 작은. 그런 작은 것들은 너무 작아 나를 지치게 했다. 그래서 자주 계단을 내려왔다. 내려오며 일부로 휘청거렸다. 발과 계단 사이의 공백을, 넘어질 것 같은 순간을 사랑했기에. 팔과 다리에,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게 좋았다. 버텼을 때의 안도감도 그랬다. 잠깐이라도 행복에 다가갔다는 생각에. 그러다 한 번은 크게 넘어졌다. 하고 싶은 게 생겼어. 들뜬 친구의 전화를 받은 날이었다. 엘리베이터로 200층을 올라간 날이었다. 신발이 미끄러웠던 탓인지,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다음날의 시야는 유독 좁았다. 방도, 거울도 유독 그랬다. 그리고.


그렇게 지냈다. 밤을 새우거나 계단을 내려오며, 또는 하루에 두 가지를 다 하며. 그러다 반 강제로 대학교 모임에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좁은 시야에도 다 담기는 그 애를 만났다. 정말 이상하리 만큼 딱 맞았다. 신기해서 자꾸 눈에 담았다. 그럴 때면 그 애로 가득 차, 다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술 한잔에 그 애를 담다 보니 어느새 어지러웠다. 갑자기 그 애가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일순간 그 애의 눈만이 담겼다. 까만 블랙홀에 파리한 왜성이 비쳐 보였다. 같은 학번이라며, 잘 지내자는 그 애에게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대답하지 못했을지도. 그날 그 애는 딱 맞는 뒷모습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 후로 나는 그 애를 잘 찾게 됐다. 강의실에서도, 대학가에서도. 무언가 눈에 담기는 게 있다 싶으면 그 애였기에. 우리는 가끔 어울렸고, 그런 날은 환경을 생각했다. 지구가 아파요, 전기를 아낍시다. 연체했던 양심 고지서가 날아왔다. 그래서 일찍 잠들었다. 거울이 컸다.


우리는 중간고사가 끝나고도 만났다. 강의가 이렇고 시험이 저렇고, 취기가 올랐다. 그 애에게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궁금했다. 그 애도 내 친구처럼 하고 싶은 일이 있을까. 검게 반짝이는 눈은 어떤 꿈을 꿀까. 청춘은 어떤 꿈을 꿀까. 그 애는 방송 관련 일을 희망했다. 열심히 준비하려고. 왜성이 작아지는 게 보였다. 그날은 계단을 타지 않았다. 대신 걸었다. 혹시 개미라도 밟을까 조심하며 걸었다. 혹시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힐까 천천히 걸었다. 혹시 내가 다칠까, 나를 들킬까, 웅크린 채 걸었다. 생각했다. 부끄러웠다. 부러웠다.  


그래서 도망쳤다. 계단과 그 애로부터, 부끄러움과 부러움으로부터. 그래도 가끔 왜성을 떠올렸다. 점점 더 커지는, 계속 커져 이내 블랙홀과 맞먹는 왜성을. 같은 중력으로 서로를 끌어당기는 두 천체의 찬란한 충돌을 상상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었다. 부서지고 싶었다. 붕괴로 시작될 그날을 위해서였다. 그래서 미친 듯이 찾았다. 충돌의 부싯돌은 중학교 생활기록부에 있었다. 하지만 글자가 재능에 박혀 꼼짝 하지 않았다. 단어는 말들에 묶여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부셔야 했다. 충돌을 위해선 붕괴가, 붕괴를 위해선 파괴가 필요했다. 몇 달을 애쓰느라 신발이 자꾸 해졌다. 그러다 그 애의 유학 소식을 들었다. 시야가 좁고 어두웠다. 수험서가 타는 연기 때문이었다. 잉크가 녹는 악취 때문이었다. 다시 계단을 타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 애를 사랑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부서진 재능과 말들은 형틀로 재조립됐다. 무겁고 부드러운, 답답하고 포근한 형틀. 가끔 목이 옥죄어질 땐, 정신이 어지러웠다. 시야도 검게 변했다. 어쩔 수 없이 휘청휘청 걸었다. 두려웠다. 그래도 걸었다. 내가 쉴 계단이 없었기에. 그러다 보면 가끔 신기루 같던 행복에 이르렀다. 가쁜 숨을 내쉬며 누웠다. 하늘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공백 같은 별 하나도 함께. 언젠가 저 별이 이만큼 커질 거야. 이제 나는 그 공백을 사랑했다. 그렇게 휘청거리며 계속 걸어간다. 가끔 눕고, 가끔 쉬며. 검은색과 공백이 충돌하기를 바라며.



청춘과 사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생각합니다. 사랑을 하는 모두는 청춘이고, 청춘은 응당 뭐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스스로의 모습은 사랑하고 있겠지요. 하지만 알 수 있듯이, 사랑에는 좋고 나쁨의 구분이 없습니다. 그저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그 방향을 좋은 쪽으로 향하게 하는 게, 청춘의 무거운 사명이자 기회 아닐까요. 어디에 있더라도 사랑할 수 있기를, 그래서 행복할 수 있기를.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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