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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시임 Dec 07. 2023

찰칵. 기리보이

거짓말


정확히는 돌아온 듯했다. 시야가 흐려 잘 보이지 않았다. 눈을 비비자 그제야 그 애를 볼 수 있었다. 어느새 색을 되찾은 그 애를. 그 애가 다가왔다. 한 걸음마다 회색빛 먼지가 떨어졌다. 투박하게 고운 조각들이었다. 지구를 체험한 그것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척도 남기지 않고. 그 애가 그렇게 될까 무서웠다. 다섯 걸음 까지는 괜찮았다. 침대 위도 그랬다. 지구와 침대 사이의 공백 덕분이었을지도. 우주복을 뚫고 체온이 느껴졌다. 저 문 뒤가 바로 화성이었던 걸까. 나는 갈 수 없었던 걸까. 아무 말도 없었다. 그 애는 하지 않았고, 나는 하지 못했다. 그저 헬멧에 새겨진 수많은 상처를 세었다. 하나같이 아름다웠다. 각각이 다 슬펐다. 긴 정적을 깬 건 그 애였다.


잠깐 집에 다녀왔어. 휴대폰이 고장 나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우주복 마이크가 고장 난 걸까. 그다음의 모든 말이 ‘사랑해’로 들렸다. 사랑해(왜 울고 있어), 사랑해(무슨 일 있어?), 사랑해(걱정시켜서 미안해), 사랑해(사랑해). 어제와는 달랐다. 정말 구분할 수 없었다. 헬멧 속 그 애의 눈동자가 보였다. 미묘하게 흔들리는 갈색 보석이. 그 순간, 눈물이 멈췄다. 팔이 저렸다. 볼에서, 코에서 액체의 유영이 느껴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꼴이 말이 아니리라. 차가운 물에 얼굴을 담갔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그 애의 우주복이 없었다. 다시 얇아진 그 애만 있었다. 그제야 그 애의 귀환이 실감 났다. 차가운 겨울로의 귀환이. 괜찮아. 그 애가 말했다. 물음푠지 온점인지 모를 어조였다.


화성에 간 줄 알았어, 그때처럼.

그때가 언제야?

네가 바다로 들어갔을 때. 외계인을 찾겠다고.


침묵. 괜찮았다. 식은 파스타를 덥혔다. 편지와 선물도 정리했다. 어쨌든 그 애가 돌아왔으니, 지금부터 다시 하면 될 일이었다. 그 애는 말없이 나를 도왔다. 우리는 말없이 조각난 파스타를 먹었다. 멈춰버린 보일러는 정적을 더 깊게 만들었다. 하려던 말마저도 얼어붙었다. 생각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그 말을 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화성에 갔을 리가 없는데. 바다에 들어갔을 리가 없는데. 한심했다. 아무 말 없이 식사를 끝냈다. 그 애가 선물을 뜯었다. 만년필과 노트. 두 달의 고민 끝에 산 선물이었다. 글을, 책을 좋아하는 그 애를 생각하다 산 선물이었다. 그 애의 미소가 그걸 증명했다. 그러나 다음 말은 뜻밖이었다.


너라면 그럴 줄 알았어.


한참을 생각했다. 별로라는 뜻일까, 마음에 든다는 뜻일까.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웃었으니 됐다며 애써 생각했다. 그 애가 만년필과 노트를 낡은 가방에 넣었다. 지퍼가 고장 났는지 잘 닫히지 않았다. 한참을 애써도 그랬다. 속의 낡은 것들을 감추지 못하는 가방이 미웠다. 아니면, 닫지 않아도 낡은 것들은 빠져나올 힘이 없으니 괜찮다고 생각한 걸까. 그건 그거대로 미웠다. 차마 도와준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낑낑대던 그 애가 멋쩍은 듯 웃었다. 결국 반쯤 열린 가방을 든 채로. 나도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딱 닫히지 않은 만큼만의 웃음이었다.


꽃은, 꽂아둘 곳이 없을까?

그냥 뒤집어서 벽에 붙여 놓자. 다들 그렇게 하던데.

그건 싫어. 죽잖아.


그 애는 그렇게 말하곤 페트병을 잘랐다. 깨끗이 씻은 페트병에 꽃을 꽂았다. 그리곤 말없이 꽃을 바라봤다. 아침에는 생기 있던 꽃이, 벌써 시들어가고 있었다. 어차피 오래 못 갈 것 같았다. 일순간 그 애와 꽃이 겹쳐 보였다.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달빛에 비춘 그 애의 얼굴은 처음 만났을 때와 같았기에. 페트병과 꽃은 방 한가운데에 놓였다. 화양연화 포스터 바로 아래에. 한참을 더 바라보던 그 애가 침대로 향했다. 가로 1.1m, 세로 2m가 채 안 되는 우리만의 지구로. 늘 그 애만큼만은 따뜻했던 그곳으로.


오랜만에 말이 많았다. 그 애도, 나도. 그 애는 바다와 화성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궁금해했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가 궁금했다. 그 애는 아르바이트가 힘들진 않는지를 궁금해했다. 나는 글과 문장의 차이가 궁금했다. 그 애는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을 궁금해했고, 나는 그 애의 글을 궁금해했다. 그 애는 다음 학기 등록금은 어떻게 할 건지를 궁금해했고, 나는 언제까지 함께 살 수 있을지를 궁금해했다. 답변은 ’글쎄’로 시작해 ‘것 같아’로 끝났다. 우리는 서로를 몰랐고, 스스로도 몰랐다. 그래도 괜찮았을 거였다. 질문이 끝나지 않았다면. 그 애가 너무 빨리 알아차리지 않았다면.


조만간 돌아가려고.


헤어지자는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침대와 지구의 공백이 사라져 가는 게 느껴졌다. (계속)


결국 또 못 끝냈습니다. 죄송합니다. 애정이 가는 만큼, 자꾸만 늘어지게 됩니다. 그래도 다음 편에는 꼭 끝내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기리보이의 ‘찰칵’이라는 곡을 들고 왔습니다. 인디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곡입니다. 분위기랑 잘 맞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 이야기에는 악역이 없습니다. ‘찰칵’ 한 구절로 이만 줄입니다.


반짝이는 순간 우린 남남이니까
반짝이는 사랑은 순간 반짝인 거야
너를 놓아주니 너는 더 반짝이구나
왜 우린 남남일 때가 더 소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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