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을 사랑했나 봅니다. 얼굴도 모르는 당신을. 아는 건 이름밖에 없어도 그랬나 봅니다. 아마 당신도 저와 똑같이 태어났겠지요. 열 달, 어쩌면 아홉 달이거나 열한 달일 수도 있을 겁니다. 어쨌든 그 정도의 시간을 견디고 빼꼼, 얼굴을 내밀었겠지요. 우렁찬 울음을 내었나요. 아니면 가녀린 울음을 내었나요. 두려움이 앞서던가요. 설렘이 앞서던가요. 저는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당신은 기억할지도 모릅니다. 나와서는 어땠을까요. 저처럼 매일 새벽마다 울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얌전했을 지도 있겠지요. 저는 젖이 아니라 분유를 먹었습니다. 동생이 일찍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가끔 아플 때면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모유를 많이 못 먹어 덜 자란 것 같다는 생각을. 당신은 어땠습니까. 동생은 있는지요. 저는 여전히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테지만 궁금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습니다. 책은 무엇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지만, 또 그만큼 생각을 비워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후자가 좋아 책을 읽었습니다. 저 자신도 잊을 정도로 열심히 읽었지요. 그래도 한 번씩은 잊을 수 없는 게 생겼습니다. 죽어라 긁어내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는 게. 그건 힘들었습니다. 거기에 빌붙은 저를 지울 수 없어서였을 겁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고는 술을 마셨습니다. 술은 무엇이든 지우는 데에는 기막힌 재주가 있으니까요. 기쁜 날엔 기뻐서, 슬픈 날엔 슬퍼서 매일같이 지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머리가 터엉 비어있는 게 익숙했습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곧 지워질 지하철이었고, 곧 잊힐 기분이었습니다. 내릴 때가 다가와서야 당신을 봤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언젠가 만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내릴 곳을 지나처 버렸습니다. 왜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아마 힘들어서 그랬을 겁니다. 내릴 힘이 없어서. 스크린 도어가 닫히는 걸 멍한 눈으로 바라봤습니다.
왜 이걸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탓이겠지요. 책이 쓸모를 잃은 탓일 겁니다.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러나 자꾸 당신이 떠오르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자꾸만 눈앞에 그려지는 풍경도 모르겠습니다. 밤이고, 눈이 내립니다. 깜빡이는 신호등과 리어카 하나, 그리고 당신이 있습니다. 눈이 점점 더 많이 내립니다. 반사할 빛이 없어 자꾸만 까매집니다. 까만 눈이 온 세상 빛을 다 흡수합니다. 이렇게 쉽게 바뀔 일일까요. 눈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표지판에는 흐릿하게 ‘제주’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점점 줌 아웃됩니다. 눈의 시점으로 바뀝니다. 하늘에서 그 거리를 지켜봅니다. 옆에서는 다른 눈들이 몸을 떨며 추락합니다. 겁에 질린 체. 곧 녹아버릴 생을 원망하며. 나는 더 올라갑니다. 눈의 시점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럼 나는 누구인 걸까요. 예전에 지도에서 봤던 제주도가 보입니다. 제주. 저는 태어나서 제주를 두 번 가봤습니다. 두 번 다 겨울이었지요. 그리고 두 번 다 눈이 내렸습니다. 그 기억 때문일까요. 아니면 불투명한 기억의 파편이 당신으로 인해 재구성된 걸까요.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자꾸만 그려지는 제주가 어디인지도. 여기가 어디인지도. 당신이 누구인지도. 내가 누구인지도.
그날 당신을 만난 게 축복이었을까요. 분명 축복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강한 자만이 할 수 있는 건가 봅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사랑하는 법을 잊었나 봅니다. 약자라서요. 열려있는 지하철 문 밖으로 걸어 나갈 힘조차 없는 약자라서, 끈질기게 붙은 무엇 하나 긁어내지 못하는 약자라서. 그리고, 그래서, 울었나 봅니다. 두 정거장을 지나쳐, 제주도를 생각하며 걸어오던 길에서. 그때는 눈물이 나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사실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날 일이 힘들었던 건 아닐까요. 늘 달고 사는 편두통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해봤습니다. 그러나 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하나 확실한 건, 그날 이후로 꺾인 꽃만 봐도 눈물이 난다는 겁니다. 꽃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고양이가, 껌 파는 노인이, tv 속 아픈 아이들이, 휴대폰 속 당신과 거울 속 내가, 끈덕지게 따라붙습니다. 그림자처럼.
그러나 나는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울다가 지쳐 글을 씁니다. 글을 쓰는 것도 ‘할 수 있는 일’에 포함시켜도 되는 걸까요. 모르겠지만 씁니다. 당신을 사랑했다는 기억을 남기기 위해서. 당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남기기 위해서. 아, 당신을 더 궁금해했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큰 회사에서는 당신에게 상을 줬다고 합니다. 저는 상 같은 건 못 주니 늦었지만 글이라도 남깁니다. 사랑하는 법을 다시 일깨워준 당신을 위해. 꺾인 꽃이 부디 무사히 꽃가루를 다 날리기를. 쓰레기통을 뒤지던 고양이가 배를 채웠기를. 껌 파는 노인의 손이 가볍기를. tv 속 아픈 아이들이 얼른 낫기를. 휴대폰 속 당신이 지금은 부디 행복하기를. 거울 속 내가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할 수 있기를.
사랑에는 많은 형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건, 희생이 아닐까 합니다. 이 글을 한 청년에게 바칩니다. 슬픈 세상에서, 슬퍼하면서라도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록 이런 세상이지만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너무 늦게 안만큼, 더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세상에 남겨진 슬픔만큼, 사랑도 남겨졌을 테니까요.
비행기 안이야 슬퍼 슬퍼
음악은 왜 이리 슬퍼 슬퍼
바깥보다 실내를 비추우는
검은 창가석에 앉아 나는
슬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