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 없는 어느 날의 기록
저녁을 먹고 따뜻한 페퍼민트 차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상쾌한 민트향이 코끝에 느껴지고, 입안이 시원했다. 딸아이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좀 위로해 줘. 엄청 속상해.’ ‘무슨 일인데’라고 물었다. ‘오늘 차 사고가 났다는데, 다른 차를 피하려다가 주차되어 있는 차의 백미러를 스쳤다’라고 했다. 마침 차 안에 운전자가 있어, 나와서 보더니, ‘백미러가 살짝 접힌 것 같다며, 별일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전화번호를 달라.’는 내용이었다.
전화번호를 주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너무나 덜덜 떨려서 다시 운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며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숨이 턱 막혀 페퍼민트의 시원함조차 느껴지지 않았지만, 아무 일도 아닌 척하며, ‘운전하면 그런 일은, 특히 초보에게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래도 큰 사고가 아니어서 다행이네.’라고 했다.
'저녁은 먹었어'라고 물었더니, '아니.' '치킨 시켜 먹어. 배가 든든하면 덜 무서워'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살짝 접힌 백미러처럼 아이의 마음도 접혀 있었겠구나'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손이 문에 찧여 손톱이 빠지고 피가 흐를 때도, 시험에 떨어져 눈물을 보일 때도, 나는 내 안의 폭풍을 잠재우는 법을 먼저 배워야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인 내가 당황하여 큰일이 난 것처럼 하면 아이는 더 놀란다는 것을 안다. 짐짓 아무 일도 아닌 척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왔다. 하지만 핸드폰 너머 아이의 놀란 목소리에 차 안에 홀로 앉아, 가슴을 진정시켰을 아이의 모습이 그려졌다.
며칠 전에는 아들아이에게 전화했더니, ‘힘들다’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심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기분이었지만, ‘시간 나면 집에 와. 엄마가 너 좋아하는 등갈비 해줄게.’라고 최대한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를 골라내어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이가 먼저 말하기 전에 자세하게 묻는 것은 아이를 더 힘들게 할까 생각되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
전화를 끊고 나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미 식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