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후 소회

by 정희

여행은 참 즐겁다. 일상의 짐을 모두 내려놓고, 그 순간의 경험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새로운 풍경, 맛있는 음식, 신선한 공기, 낯선 사람들… 모든 것이 좋다.


그런데 여행 후의 일상은 더 좋다. 편안하고, 안락하고, 늦잠을 자고, 시장을 다녀오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내 마음대로 해 먹을 수 있는 자유.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서 그렇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은 신선하지만,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그래서 여행 중에는 충격과 기쁨이 배가되지만, 그만큼 피로도 따라온다. 결국 아무리 짜릿한 여행도 며칠만 지나면 익숙해지고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린다.


인간은 적응이라는 훌륭한 기제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 훌륭한 '적응'이라는 기제 때문에, 오히려 환경이 너무 오래 멈춰있으면 행복감이 줄어드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환경을 바꿔줘야 한다. 이러한 역설에는 심리학적인 개념이 숨어있다.


행복을 갉아먹는 적응의 딜레마, 쾌락적응이란?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반복되는 자극에 점점 둔감해지는 현상을 ‘쾌락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고 부른다. 로또에 당첨되거나 바라던 승진을 해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그 짜릿한 기쁨은 일상적인 만족감 수준으로 돌아온다.


반대로 큰 불행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적응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결국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월이 약'이라는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인간이 고통이든 기쁨이든 모든 감정에 점차 익숙해지는 기본적인 심리적 적응 과정을 설명하는 셈이다.


즉, 인간은 변화에는 민감하지만 반복에는 둔감하다. 그래서 행복을 유지하려면 반복되는 일상 속에 새로운 자극을 주기적으로 넣어줘야 한다.


여행이 일상보다 행복할 수 없는 이유

여행은 그 자체로 매우 강력한 '긍정적 변화'를 선사한다. 낯선 환경, 새로운 얼굴, 그리고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사건들. 이런 자극은 뇌를 깨우고, 감각을 일으키며, 행복감을 끌어올린다. 동시에 적응력과 회복탄력성도 함께 자란다.

여행이 끝난 후 일상이 더 행복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낯선 자극을 경험한 뒤 다시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여행이 일시적인 자극과 흥분을 주었다면, 여행 후의 일상은 생존 본능과 맞닿은 심리적 안정감을 선물한다.


이건 단순히 ‘집이 최고’라는 감정이 아니다. 집으로 돌아온 뇌는 가장 선호하는 상태, 즉 '통제와 예측 가능성'을 되찾고 안도한다. 냉장고의 위치, 침대의 포근한 촉감, 익숙한 거리의 소음까지. 이 모든 것이 뇌에게 '이제 안전해'라는 신호를 보낸다.


뇌는 더 이상 주변을 경계하거나 분석하지 않아도 된다. 에너지를 아끼고, 휴식 모드로 전환된다. 이 상태가 바로 진정한 편안함이다. 익숙한 아침 까치들의 소리를 들으며 일어나고, 익숙한 시간에 운동 가고, 익숙한 크루들과 수다를 떨고, 창밖의 풍경을 보면서 휴식을 하는 상태, 무장해제된 상태이다.


결국, 행복을 유지하는 삶의 3가지 기술

쾌락적응을 극복하고 지속적인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심리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전략을 제안한다.


심리학자들은 감사하고, 작은 변화를 주고, 남에게 베풀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여행 짐을 풀며 무사히 돌아오게 해 준 비행기에 감사하고, 내일은 나만의 새로운 요리법으로 찹쌀파이를 만들어 댄스 크루들과 나누어 먹어 볼 생각이다.


거창한 전략이 아니더라도, 이런 소소한 마음들이야말로 반복되는 일상을 지루하지 않게 해 주는 행복의 비결이 아닐까.


여행 후의 일상이 너무 좋다. 아, 행복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떠나고, 또다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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