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여행

by 정희

오래된 부산의 정취를 찾아

장마가 시작되기 직전, 부산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도시’라는 낭만적인 수식어, 부산. 예전에는 해운대의 번잡하고 깔끔한 신도심 호텔에 머물렀지만, 이번에는 부산만의 깊은 옛 정취가 그리웠다.

그래서 이번엔 원도심의 숨은 공간을 택했다.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호텔은 깨끗하고 조용했으며, 언덕에 있어서 전망까지 좋았다. 무엇보다도 그곳은 부산 근대사의 상징적인 섬, 영도(影島)와 가까웠다.


영도에서 발견한 부모님의 애환

영도는 바다, 역사, 그리고 독특한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이다. 예부터 말이 너무 빨라 그림자조차 끊어진다는 절영도(絶影島)에서 이름이 유래했을 만큼 역사가 깊다.

영도대교는 1934년 국내 최초의 도개교였다. 단순한 다리가 아니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헤어진 가족과의 기적 같은 만남을 기약하던 약속의 장소였다.

어렸을 때, 실향민이셨던 부모님에게서 영도다리 밑에서 겪었던 애환에 대해 종종 얘기하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특히 어머니께서는 전쟁 통에 그곳에서 성냥을 파셨고 했다. "장사를 얼마나 잘했는지" 자랑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도 이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도개 행사는 그 시절의 아픔과 희망, 부산 현대사의 상징성을 이어가고 있다. 아쉽게도 나는 시간을 맞추지 못해 직접 보지는 못했다.

숙소에서 한참을 걸어 중구 도심을 벗어나 영도대교를 통과했다. 이윽고 조선소 특유의 풍경이 펼쳐지는 영도 대평동에 도착했다. 일제강점기부터 조선 산업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수리 조선소가 밀집해 있다.


큰 배들이 정박하고 선박들이 드나드는 역동적인 현장 속에서, 조선소 공장을 개조해 만든 카페에 들어섰다. 층고가 높고 인더스트리얼한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바라본 것은 에메랄드빛 바다가 아니었다. 거대한 배들과 그 옆에서 이루어지는 수리 작업 현장, 치열한 항구의 속살이었다.


배의 녹과 이물질을 망치로 제거하던 '깡깡이' 아지매들의 삶터. 영도의 묵직한 정취는 바다 옆에 발을 딛고 치열하게 삶을 일구어 온 그들의 땀 냄새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해운대, 낭만적인 길의 종점에서 시작된 혼란

다음 날, 우리는 해운대로 향했다. 해변 산책로는 해운대 해변에서 서쪽 끝의 웨스틴 조선 부산 호텔까지 평탄하게 이어지는 아름답고 깔끔한 길이었다. 이곳은 신도시 부산의 깔끔한 매력을 보여주는 듯했다.


다음 여행 코스로 자갈치 시장으로 향했다. 구도심으로 들어서자 길은 갑자기 복잡하고 난해해졌다. 내비게이션을 켜고도 몇 번이나 같은 길을 지나치는 '길치' 체험을 반복했다.


부산은 정말 길이 복잡하다. 산지가 많고 평지가 좁은 독특한 지형 탓에 도로망이 격자형이 아닌 지형을 따라 불규칙하게 형성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 수도 역할을 하며 평지가 좁은 지역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주거지와 도로가 뒤섞여 복잡성이 가중되었다. 바다와 산에 막혀 교통 효율을 높이는 것이 늘 큰 숙제였다. 이 때문에 광안대교, 부산항대교 같은 해상 교량을 비롯해 수많은 터널 및 고가도로가 필수적으로 건설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부산의 길이 위험하고 이해하기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다.


하지만 이 복잡함, 좁은 평지에 밀집된 삶의 풍경, 그리고 갑자기 나타나는 거대한 고가도로와 바다 조망...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해운대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전쟁과 항구의 역사 속에서 온몸으로 급하게 성장해야 했던 부산 원도심의 진짜 DNA가 아닐까. 이 복잡함과 급격한 성장의 흔적은 영도의 깡깡이 마을이나 감천문화마을처럼 독특한 문화적 원형질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이다.


결국, 우리는 미로 같은 길 위에서 부산의 생생한 속살과 마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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