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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Mar 29. 2023

별스럽지 않은 날의 퉁퉁 불은 오뎅꼬지

제3화

[이 글은 현재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를 연대기로 정리하는 시리즈 글입니다. 브런치와 네이버 카페 강한 영어학원 만들기에 업로드합니다.]


1화 영어 이름으로 제니퍼를 정했는데 철자를 모르겠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199

2화 내가 수업 시간에 최초로 ‘외운’ 영어 문장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1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아 빈도가 줄었지만, 함께 살던 10대와 20대의 나는 엄마와 자주 대화했다. 


그 날도 평범한 하루였다. 


나는 대학생이었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여느 때처럼 엄마와 거실 티비 앞에 작은 상을 펴고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쇼파를 등받이 삼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야식을 먹고 있었다. 


이건 우리의 루틴과도 같은 일이었다. 


다시 말해, 별스럽지 않은 날이라는 뜻이다. 


우연히 대화의 주제가 학창시절로 넘어왔고, 학원 이야기가 자연스레 머리를 들고 올라왔다. 


엄마: “너 그때 다녔던 OO프라자 영어 어학원 기억나지?”


나: “응. 당연히 기억나지.”


엄마: “이제 와서 얘기하는데, 그때 집안 형편이 좀 어려워서 원장님한테 무턱대고 찾아 갔어. 


네가 학원을 계속 다니고 싶어 하는데, 형편 때문에 어떻게 좀 학원비를 깎아주실 수 있겠느냐고. 


그 때 원장님이, 너는 학원 전단지 표지모델로 쓰고 싶을 만큼 영어를 너무 좋아하고 또 열심히 하니까, 걱정 말고 그냥 보내라고 하시더라. 


아직도 감사해.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넌 꼭 원장님한테 고마운 마음 가지고 살아.” 





글을 쓰는 지금도 이 이야기를 듣던 때를 생각하면 어김없이 눈은 촉촉해지고 입은 거꾸로 뒤집어 놓은 콘초 과자 모양이 된다. 


지금도 이런데 그 당시는 어땠을까.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첫째, 다른 집 애들은 학원 좀 가라고 몇 개씩 등록해줘도 학원 째고 숙제 안 하고 놀러 다니기 바쁜데. 학원 보내 달라고 떼쓰는 작은 딸을 보면서 기특한 마음보다 당장의 생활비에 대한 걱정을 먼저 했을 엄마 때문에. 



둘째, 자식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부모님의 마음을 글로는 배웠지만 그걸 실제로 보고 듣게 된다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큰 부채감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 때문에. 



셋째, 학생을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 보지 않고, 가난한 집 학생을 무시하지 않고 배우고자 하는 학생의 마음과 어떻게든 가르치고 싶다는 어미의 마음을 알아봐 준 원장님 때문에. 




다음날 아침, 족히 세 시간은 끓여낸 것처럼 퉁퉁 불은 오뎅꼬지처럼 변한 눈두덩이를 가지고 어떻게 학교에 갔는지 알 길이 없다.





<다음 편에 계속>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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