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 대기 중인 교차로. 줄지어선 차량들의 맨 앞, 신호등에 가장 가까운 자리에는 언제나 검은색 배달 오토바이들이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아파트, 빌라, 원룸 할 것 없이 여러 공동주택의 현관에는 비상 깜빡이를 켠 배달 오토바이가 주차되어 있다.
엘리베이터에는 누군가가 시킨 치킨과 피자가 헨젤과 그레텔이 빵조각으로 흔적을 남기듯 맛있는 냄새가 남겨져 있다. 우리는 배달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짜장면, 피자, 치킨이 배달의 전부였던 시대가 있었다. 짜장면은 보통 중국집의 전속 배달원이 배달을 했다. 여기저기 찌그러진 철가방의 옆면에는 붉은색 페인트로 직접 쓴 듯한 궁서체의 '만리장성'이 쓰여 있었고, 커다란 탕수육 접시는 항상 맨 아래칸에 담겨 철가방 문의 바깥 틈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요새 찾아보기 힘든 '전속' 오토바이
치킨은 사모님이 튀기고 사장님이 배달을 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천둥벌거숭이 초등학생 때는 치킨이 오면 신이 나서 내복 차림으로 현관에 나갔었다. 사춘기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치킨 벨소리가 들리면 후다닥 방으로 숨어 들어갔다. 매번 바뀌는 배달부가 아닌 안면 있는 치킨 사장님에게 괜히 부끄러움을 느낀 것 같다.
지금은 간혹 배달이 안 잡히는 때에 사장님이 직접 오는 경우가 있지만 보통은 배달대행업체의 라이더가 배달을 전담한다. 같은 라이더를 다시 만날 확률? 아마 꽤나 낮을 것이다. 다시 만난다 해도 요즘의 라이더는 헬멧을 쓴 채로 음식을 건네주는 경우도 많고, 이미 어플로 계산을 마친 터라 1초 만에 음식을 주고 떠나니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배달 음식의 종류도 셀 수 없이 많아졌다. 직접 식당에 찾아가 먹기도 힘들었던 제3세계 음식들은 이제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집까지 배달을 온다. 배달의 빈도도 잦아졌다. 우리 집은 아빠의 월급날이나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온 날처럼 조금 특별한 날에만 치킨을 먹었었다. 요즘 사람들은 배달의민족에서 월 5회 주문한 사람에게 부여하는 VIP 등급이 아닌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 정도다.
각종 음식을 싣고 달리는 배달 오토바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뜨끈한 음식의 열기에 노곤해진 비닐봉지와 눅눅해진 영수증 속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탕수육과 고추잡채가 달린다. 내 집 마련에 성공해 집들이를 하는 사람의 기쁨을 싣고 달린다. 1인 제육 도시락이 달린다. 혼밥이 익숙해진 사람의 평온한 쓸쓸함을 싣고 달린다. 초밥세트가 달린다. 밥 먹는 시간을 아껴 야근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는 직장인의 희망을 안고 달린다.
배달 음식은 환상곡과 닮아있다. 환상곡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한 낭만적인 곡을 뜻한다. 배달 음식은 종류도 다양하고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사연도 다양하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제각기의 멜로디와 리듬으로 환상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일지도 모른다.웅장한 소리들의 향연 속에서 내가 내는 소리는 너무나도 작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 기억했으면 한다. 오케스트라의 아주 작은 소리라도 커다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위대한 조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작은 소리들의 분투인 것을.맞춰진 퍼즐 같은 획일화된 사람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자유롭고 낭만적인 곡을 연주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