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ithereming Jul 08. 2024

누군가의 꿈, 생각, 그리고 미소

40일 유럽여행, D+2


여기는 Maison Bertaux(in Soho)다.

야외에서 커피와 스콘을 먹고자 테라스로 나왔는데

사람들이 꽤나 지나다닌다.

그리고 바람도 꽤 분다.

사장님은 정말 친절하시다.

너무나 친절해 감사했다.

비둘기가 내 스콘을 탐낸다.

나는 눈빛으로 기강을 잡는다.

내가 꿈꿔온 순간을 지금 이루고 있다.

혼자서 카페에서 아주 맛있는 커피와 따뜻한 스콘,

함께 나온 잼앤크림은 정말 푸근한다.

나는 무엇을 원해 이 꿈을 가져왔던 걸까?

따뜻한 라떼, 그리고 빵과 함께하는 여유로움일까?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여유로움일까?

누구를 따라서일까?

누군가의 로망이기 때문일까?

새빨간 잼과 파란 테이블의 대비가

아름다워 보인다.

사람들의 신경도 개의치 않는다.

여기선 내가 누구도 될 수 있고

그 무엇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주문한 라떼와 빵을 보니 엄마 생각이 났다.

따뜻한 라떼 한 잔, 고소한 향을 풍기는 갓 나온 빵

모두 엄마의 꿈이다.

나는 지금 이 마음이면 엄마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을 한다.

매번 미루어지는 엄마의 꿈을 이루어주는

내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카페테라스 앞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비행기 아니, 그전부터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한다는 이야기와 피드백을 종종 들었다.

왜일까?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서,

나 혼자 몰라 바보가 되기 싫어서,

바보가 되어 누군가 나를 욕하는 게 싫어서,

센스 있고 싶어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갑작스러운 상황에 혼란스러움을 겪기 싫어서,

결국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는 게 두려워서.

'그냥 욕 한번 먹으면 되지!'라고도 생각해 봤다.

'그냥 바보멍청이면 되지!'라고도 생각해 봤다.

혼자가 되는 게 무서워

이런 생각들은 순식간에 침묵한다.

어릴 적 트라우마든, 인간의 생존 본능이든

나만 이러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알고 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많이 경험할수록,

많이 상처받고 상처를 주므로, 그리고 깨달을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두려움은 커진다.

두려움은 두려움을 낳고 걱정은 걱정을 낳는다.

이런 끝없는 번식에 나의 심장이 쿵쾅거린다.

20살 때 간 뉴질랜드는

나에게 아주 큰 의미가 있다.

뉴질랜드의 공기, 분위기, 어학원, 어학원의 피아노,

소파 그리고 친구들, 친구들과의 추억.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추억.

시간은 얄짤없이 흘러가기 때문에

나는 그 시간을 그리워한다.

거침없던, 대범하던, 밝고 명랑하던, 솔직하던 나는

여러 풍파에 그런 나의 성격들이 모래먼지에

덮였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나의 시선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날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나의 일기장에도 솔직할 수 없었다.

런던에 도착한 여행 첫날, 나는 일기장에 솔직하게

나의 이야기를 썼다.

나의 언어로, 솔직하게.

중구난방을 싫어하는 나지만,

중구난방의 나를 자처했다.

새로움과 도전 속으로 나를 던진다.

모든 것이 새로움이다.

지금은 과거가 되고 이미 미래 속으로 들어와있다.

매 순간이 새롭고 매 순간이 기회다.

그래서 매 순간이 도전이 된다.

내는 타인의 시선에 과민하게 반응한다면

그것도 나의 성격, 나다.

내가 바보 멍청이가 되더라도

나는 나를 지켜야 한다.

나는 늘 부족하고 늘 실수하고 넘어진다.

나는 인정한다.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누가 나를 믿어주냐'라는

말은 정답이다.

나는 내가 못마땅할지라도

평생 나는 나를 책임져야 한다.

책임을 지는 것은 쉽지 않다.

어렵다.

책임을 지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 감당해야 함을

의미한다.

나는 무엇이든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미 감당하고 있으니까.

수첩에 글을 쓰고 난 후 여유롭게 커피와 빵을

즐긴다.

가게 입구 옆 테이블에 앉은 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쳐다본다.

한 아저씨가 나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덧붙여 휴대폰을 들고 도망가지 않는다고

나를 안심시킨다.

부끄러워하며 휴대폰을 건넨다.

동양인 여자애가 낯선 외국 카페테라스에서

글을 쓰는 것을 사진으로 남겨

오래 기억하도록 추억해 주고 싶어서인지,

이 모습이 좋아 보여서인지,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걸 보아서인지

알 수 없다.

그저 나를 찍어주는 아저씨의 미소가

잊히지 않을 뿐이다.


2024.03.08.FRI



영국


St. James's Park, 런던의 봄
버킹엄 앞 & 트라팔가 광장에서


이전 02화 비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