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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thereming Jul 01. 2024

비행

40일 유럽여행, D+1

비행기는 이륙 전 활주로를 천천히 달린다.

활주로를 달리다 날아오르기 전 잠시 멈춘다.

신호가 오면 뒤도 옆도 보지 않고 힘차게 달린다.

달린다, 날아오를 때까지 전력 질주로 달린다.

비행기가 어느새 공중에 뜬다.

조금 떴다고 방심하지 않는다.

끝까지 엔진을 가속한다.

하얀 구름이 시야를 가린다.

구름 위로 오를 때까지 날아간다.

그리고 구름 위로 올라온다.

비행기 아래로 구름이, 구름 아래로 땅들이 보인다.

비행기는 평온해진다.




오랜만의 해외여행이다.

비행기에 타는 건 6년 만의 일이다.

출국 전 캐리어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

어떻게 싸야 하는지는

물론 공항에서 하는 체크인, 수하물 부치기,

기내 반입 물품 확인 등

모든 것이 처음인 것 마냥 정신없고 어렵기만 하다.

아침 일찍 부모님 차를 타고

인천공항으로향한다.

인천공항은 참 넓었다.

그리고 어색했다.

체크인 확인을 여러 번 한걸 보면

나는 틀림없이 여행 초보다.

20살 때 혼자 뉴질랜드에 갔던 나는 온데간데없다.

첫 여행지인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직항이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경유라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이미 20살 때 경유를 해보았지만,

이미 그 기억은 리셋되었다.

체크인을 마친 후,

부모님과 인사를 하고 보안검색대로 향한다.

그리고 보안검색대에서

나의 소중한 생필품이 버려졌다.

전날 밤, 최종적으로 짐을 정리해서 캐리어를 쌌다.

한 보따리씩 가지고 다니는 봇짐러로서

이미 내 수하물은 만원이었고,

기내 수하물에 위탁수하물 캐리어에 들어가지 못한

샴푸, 트리트먼트, 클렌저, 스킨이 들어갔다.

보안검색대 밖으로 나가

이것들을 부모님께 드리기엔 시간이 촉박하다.

벌써부터 선택을 해야한다.

나는 도전보다는 안전을 선택하며

소중한 생필품을 말끔히 포기한다.

그리고 면세점에서 스킨을 산다.

비행기를 기다린다.

비행기를 타고 창가에 앉았다

 조금 딜레이 된 비행기가 드디어 이륙한다.

비행기는 대한항공이었다.

10살 때 처음 타본 뉴질랜드행 대한항공은

나에게 따뜻한 기억이 가득했다.

대한항공 승무원들은 미소 가득한 다정한 분들로

나에게 기억되어 있다.

승무원께 대한항공 수첩을 받고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던 어린 나는

항상 수첩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걸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따뜻했던 기억을 회상하며

비행을 시작한다.

모든 창문 커버가 닫힌다.

비행이 지루했는지 간혹 몇몇 사람들이 창밖을

보려 창문 커버를 살짝 연다.

비행기 안으로 강렬한 빛 한줄기가 들어오자

화들짝 놀라 이내 창문 커버를 닫기를 반복한다.

비행기에 처음 들어왔을 때 느꼈던 사람들의 설렘,

기대, 새로움, 들뜸, 기분 좋은 대화들은

어느새 이런 기분에도 적응이 되었는지

기내 안은 수면제를 탄 듯 조용하기만 하다.

드디어, 마지막 기내식이 나오고 착륙 준비를 한다.

이미 나는 창문으로 영국 땅을 살짝 보았다.

자동차들이 장난감 마냥

시골 마을을 지나가는 걸 본다.

이렇게만 보니

한국 시골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느낀다.

비행기가 땅으로 내려간다.

구름 위를 유유자적하던 비행기는

구름을 뚫고 땅을 향해 간다.

갑자기 다시 긴장한다.

비행기 바퀴가 유럽 땅을 밟는다.

기장은 영국의 기온, 날씨 등을 이야기하며

행복한 여행을 빌어준다.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았지만

여기가 외국이라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느낀다.

여기는 영국이다.

먹구름 가득한 영국이라고 들었건만,

오후 5시의 따뜻한 노을로 반겨주는 영국이다.

2024.03.07.T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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