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달라지면 챙기는 것
어릴 적 내 별명은 '옹이'였다.
엄마 말로는, 꽤 빠르게 옹알이를 시작한 내가 아빠 품에 안겨 옹알옹알거렸다는 이유로 '옹이'가 되었다고.
뱃속의 아이가 딸보단, 아들이길 바랐다던 아빠가 날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나.
호적에 올라간 이름이 있다는 걸 유치원에 가서야 알 만큼, 가족은 물론 동네사람들 모두 그렇게 불렀다.
외갓집 역시 마찬가지였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대문을 들어설 때면 "우리 옹이 왔구나!" 라며 허허 웃으셨고,
곁에서 고주알메주알 떠드는 내게 "넌 말을 잘해서 크면 변호사가 되겠어."라며 장난기 어린 눈을 하셨다.
무뚝뚝한 성격에 말수도 적으셨지만, 내가 감기에 걸려 열이라도 나면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셨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 손에는 만병통치약인 꿀단지가 상비약처럼 들려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잠이 들기 전까지.
할아버지는 꿀단지를 곁에 두고 "크게 입 벌려라"라며 숟가락 가득 꿀을 떠 넣어주시곤 했다.
꿀 때문인지, 할아버지 정성 때문인지 대개 다음 날이면 신기하게도 열이 쏙 빠졌다.
어릴 때부터 효과를 톡톡히 경험한 나 역시 꿀을 상비약처럼 챙긴다.
매일 아침 공복에 한 수저.
피곤할 때 한 수저.
감기기운이 느껴지면 한 수저.
꿀을 먹지 않는 아이들은 멸치볶음을 할 때 꿀을 듬뿍 둘러서 반찬으로 먹이기도 한다.
이 집에 살면서 나는 아파도 외롭지 않았다.
이제 내 곁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이 없지만 집안 곳곳에 스민 그들의 자취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냐'라고.
더위가 지나가고 스산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요즘,
꿀단지와 이마를 짚던 할아버지의 따뜻한 손길이 떠올라 꿀을 수저에 듬뿍 담아 한입에 삼켰다.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어리광이라도 부리고 싶은 모양이다.
'할아버지, 저 진짜 괜찮아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